하지만 확진자 개인에게 책임을 묻기보다 '아프면 쉴 권리'부터 제대로 보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역당국은 대규모 집단감염이 발생한 강남구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서 역학조사를 벌인 결과, 확진된 직원 일부는 증상이 나타난 뒤에도 계속 출근해 탈의실 등 공용공간까지 함께 사용했다고 지난 6일 밝혔다.
이처럼 코로나19 의심증상이 있는 노동자가 출근했다가 대규모 감염 사태 우려를 낳은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광주 신세계백화점 집단감염 역시 한 점원이 기침 등 의심증상을 보였지만 사흘 가량 출근해 고객을 맞았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또 지난달 강원 춘천 롯데마트와 서울 구로 콜센터에서도 코로나19 초기 증상을 보인직원이 검사 대신 출근을 선택했다가 뒤늦게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에 대해 중앙방역대책본부 이상원 역학조사분석단장은 지난 4월 "각 지표환자들이 의심증상이 발생한 이후에도 등교·출근을 지속해 감염 규모를 키우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사업주 입장에서는 억울하다는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다. 사업장 내 방역수칙을 지키더라도 직원이 증상을 숨긴 채 출근한다면 이를 막기도 쉽지 않고, 일단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면 영업이 정지되고 손님들이 떠나가는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심 증상이 있는데도 출근을 강행한 책임을 오로지 노동자 개인의 잘못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지난 3월 가톨릭대학교 정혜선 교수가 발표한 '직장인의 코로나19 3차 유행 및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대한 인식도 조사'에서 코로나19 의심증상으로 출근을 못할 때 유급휴가를 받은 경우는 42% 뿐, 나머지는 결근이나 무급휴가 처리되거나 개인 연차를 사용해야 했다.
또 지난 4월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가 실시했던 코로나19 관련 인식조사에서도 증상이 있는데도 출근·등교를 해봤다는 응답자 중 48.1%(중복응답 허용)는 증상이 심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답했지만, 40.7%는 직장·학교 지침에 따라 출근·등교해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현행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에 따르면 노동자가 감염병에 걸려 입원·격리됐을 때 사업주가 정부로부터 관련 비용을 받았다면 반드시 유급휴가를 주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유급 휴가를 주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마당에 코로나19 증상이 의심된다는 이유만으로 눈치보지 않고 휴가를 내기는 더 어려운 일이다.
이 때문에 노동·복지 전문가들은 노동자가 아플 때 병가를 충분히 사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거나, 정부가 휴가를 낸 노동자의 소득을 보조하는 상병수당을 법제화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상병수당이 없는 나라는 미국, 스위스, 이스라엘과 한국 뿐이다. 하지만 스위스와 이스라엘은 반드시 유급병가를 쓸 수 있도록 규제하고 있고, 미국은 '무급' 병가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어 사실상 한국만 '아프면 쉴 권리'가 냉대받고 있다.
정부도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상병수당 도입을 공약했던만큼, 지난 4월부터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 내년부터 시범사업을 시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재정 확보 등 어려움이 많아 논의의 속도를 내기 어려운데다, 당장 현재진행형인 코로나19 사태 동안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일과건강 한인임 사무처장은 "장기적으로는 상병수당 도입해야 하지만, 위기적 상황 속에 제도 도입에 시간이 걸린다면 당장 긴급 행정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증상이 있으면 반드시 출근하지 않도록 하고, 이를 어긴 기업에도 패널티를 주는 수준의 행정명령을 내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공공기관은 증상이 있으면 출근하지 않도록 하고, 확진자가 발생하면 근무한 해당 층 전체를 소거시켰는데 민간사업장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며 "특히 대형마트, 백화점처럼 시민들의 집합성이 높고 하청·입점업체 노동자가 많은 공간은 해당 전체 공간을 관리감독하는 자에게 방역의 총체적 책임을 지도록 하고 정부의 행정력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