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도 지사의 '미 점령군' 발언도 그런 '불편한 진실'을 담고 있다. 미군이 일제 패망 후 한반도 38도선 이남에 점령군으로 입성했다는 것은 객관적 사실이다. 미군은 1945년 9월 발표한 '맥아더 포고령'에서 점령(occupy) 목적을 분명히 했다. 뿐만 아니라 일제 부역자들을 미 군정에 중용함으로써 한국민의 의사를 무시했다. 이 지사가 "(친일 청산을 못하고) 깨끗하게 나라가 출발하지 못했다"고 한 배경이다.
따지고 보면 '미 군정'(Military Government)이라는 이름 자체가 점령군 역할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미 군정은 김구 등 임시정부 요인들의 귀국도 '개인 자격' 약속을 받고서야 뒤늦게 허용했다. 중국 충칭에서 상하이로 이동한 것은 1945년 9월이지만 정작 고국 땅을 밟은 것은 그로부터 두 달 뒤였다. 이는 정규 역사교육을 통해서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해 12월의 찬탁·반탁 충돌은 더 뼈저린 사건이다. 이 사태는 소련이 신탁통치를 주장하고 미국은 반대했다는 동아일보의 오보로 촉발됐지만 사실은 정반대였다. 그러나 진실이 밝혀질 즈음에는 이미 극심한 분열과 대립으로 민족역량이 소진된 뒤였고 분단의 비극을 막을 수 없었다. 이처럼 1948년 정부 수립 전까지의 미군이 점령군이 아니라면 도대체 뭐라 불러야 할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 정치는 또 다른 영역이다. 해방 전후사는 정치인에게 여전히 민감한 문제이고, 자칫 치명타를 입을 수 있기에 가능한 피해가는 게 상책이다. 그런 점에서 선거판 초반의 역사 공방은 매우 낯선 풍경이다. 일각에선 방역과 민생이 급한데 백해무익한 논란이라며 양측 모두를 힐난하고 있다. 이념대립을 촉발해 선거판을 퇴행시키고 한미관계에도 부정적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여야 1위 후보끼리 기왕에 한판 붙었다면 어떻게든 끝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어차피 두 후보의 역사관은 언제가 됐듯 검증이 필요했다. 다만 맥락을 무시한 말꼬리 잡기나 객관적 사실을 떠난 이념 공세는 철저히 배격돼야 한다. 후보 간 유불리를 떠나 선거라는 공간을 통해 불편한 역사적 진실을 직시할 수 있다면 한국 사회의 내공이 보다 깊어질 것이다. 한국은 이제 그럴 자격이 충분하고 한미관계의 업그레이드를 위해서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