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김해시에서 일제 잔재가 최근 잇따라 발견되면서 지자체의 청산 의지가 시험대에 올랐다.
김해시가 일제 잔재 청산과 관련한 여러 사업을 발표한 만큼 이번에 내놓을 해법에 따라 친일 문제 해결에 대한 진정성 여부가 판가름날 전망이다.
5일 김해시 등에 따르면 김해시민체육공원에서 친일파 모윤숙 시인과 박시춘 작곡가의 작품 비석이 최근 발견됐다.
모윤숙 시인과 박시춘 작곡가는 지난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낸 4천여 명의 친일파가 담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다. 이들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돼있다.
이들 작품 비석은 지난 2003년 대한민국 무공수훈자회 김해시지회에서 김해호국무공수훈자전공비를 건립하면서 함께 세워졌다.
경남 밀양 출신 박시춘 노래비에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작곡한 '전우야 잘 자라'가 새겨져 있다. 친일인명사전에 따르면 박시춘 작곡가는 일제강점기 일본의 침략 전쟁을 찬양하는 군국가요를 13곡 정도 작곡한 것으로 확인된 명실상부한 친일파다.
옆에 세워진 함경남도 원산 출신 모윤석 시비에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쓴 것으로 알려진 반공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가 새겨져 있다. 그녀는 1940년대 일제 침략 전쟁을 찬양하는 시 '지원병에게', '어린 날개-히로오카(廣岡) 소년항공병에게' 등의 작품을 써내며 친일을 하다 해방 이후 이같은 반공시를 써내며 반공주의자로 변신했다.
문제는 김해시에서 이런 친일 잔재 문제에 대해 적극적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번 작품 비석도 2003년부터 현재까지 18년간 이어져왔는데도 이제껏 별다른 조치는 없었다. 시 자체적으로 일제 잔재에 대한 전수조사도 이뤄진 바 없다.
시는 다만 지난 3월 일본식 지명을 정비하고 공적 장부에 남은 일본식 이름을 없애는 '일제 잔재 청산' 작업을 벌이고 있다며 공표한 것에 비춰보면 일정 정도 청산 의지는 있어 보인다. 김해시의회에서도 지난달 24일 전수 조사 등을 위해 일제 잔재 청산 조례안을 통과시켰다는 점도 시와 의회가 함께 의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분석된다.
친일 잔재 문제는 지자체의 의지에 따라 성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거제에서는 지난 2019년 김백일 장군 동상 옆에 시민단체가 단죄비를 세웠는데, 거제시는 단죄비와 동상 모두 철거하지 않으면서 일제 청산 문제에 대한 철학을 간접적으로 밝히고 있다.
김백일은 항일독립군 토벌에 참여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돼있는 친일파인데 교육용으로 활용하기 위해 거제시가 동상과 단죄비를 모두 그대로 두고 있다는 평가다. 꼭 청산으로 친일 잔재를 제거하는 것만이 아니라 옆에 단죄비를 세워 대비함으로써 교육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김영진 경남도의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거제에서 김백일 단죄비를 동상 옆에 나란히 설치하면서 좋은 교육 효과를 냈다"며 "김해시도 그 비석 옆에 설치하면 비슷한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시는 일단 이 문제와 관련해 신중하게 접근한다는 입장이다. 허성곤 김해시장은 최근 김해시청 기자간담회에서 "청산에 대한 찬반 의견이 있으니 양쪽의 견해를 다 들어보고 신중히 검토해 결정할 것"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