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줄이면 경제 망해"…경제계 오랜 '우려' 진실은

[주52시간 3주년②]'인건비 폭탄' 경고→경제성장률 4~5%대
"노동시간 2.9%↓ 생산성 1.5%↑"…지난해 성장률 OECD 3위
'급격한 근로단축→경제 악화' 경고도…"연기한다고 달라지나"
"中企 타격 불가피"…업종별 유연적용·생산성 향상지원 '필수'

※오는 7월 1일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주 52시간 근무제가 적용된다. 지난 2018년 7월 300인 이상 사업장을 시작으로 3년 만에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모든 노동자들이 한 주에 52시간을 넘겨 일할 수 없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과로 사회'를 끝내겠다며 법정 최대 근로시간을 주당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공약을 내세웠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나누면 고용률과 국민들의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는 셈법이었다. 재계는 "경제가 망할 수 있다"며 속도조절론을 주장했다. 노동자들은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어도 월급은 깎이지 않는다는 말을 반신반의하면서도 환영했다. 그리고 3년, 많은 말들이 '거짓말'로 드러났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근로시간 줄이면 일자리가 생긴다?
②"근로시간 줄이면 경제 망해"…경제계 오랜 '우려' 진실은
(계속)


지난 2002년 10월 대한상공회의소와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 5단체가 '주 5일제' 도입에 반대하며 주요 일간지에 실은 광고. 온라인커뮤니티 캡처
'"삶의 질" 높이려다 "삶의 터전" 잃습니다. 주5일 근무제, 정부 입법예고안대로 시행하면 경제가 죽습니다. "삶의 터전" 지키는 주 5일 근무제가 되어야 합니다.'

지난 2002년 10월 대한상공회의소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등 경제 5단체가 주요 일간지에 실은 광고다. 주 5일 근무제(주 40시간제)를 앞둔 진통 속에 재계가 내놓은 반대 입장은 영세사업장(5~49인 규모)의 주 52시간제 '전면시행'을 목전에 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시행시기가 너무 촉박하다"거나 "중소기업을 살려야 한다"는 근거는 약 20년의 격차에도 판박이다.

근로제 변경의 굵직한 변곡점마다 '지금 근로시간을 줄이면 경제가 망한다'며 맞서온 재계의 논리는 익숙한 레퍼토리다. CBS노컷뉴스는 기시감을 부르는 이 오랜 우려의 속사정을 들여다봤다.

◇주 5일 시행→경제성장률 4~5%25대 유지…코로나 시국서도 나름 '선방'

19년 전 재계는 '실 근로시간'이 주당 50시간인 상황에서 법정 근로시간을 40시간으로 급격히 단축하면 그 괴리에 따른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경련은 '주 5일 근무제, 무엇이 문제인가'(2002) 보고서에서 "법정근로시간을 단축해 주5일 근무제가 도입되더라도 근로자들의 실 근로시간 감소효과는 매우 미미할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실 근로시간이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긴 것은 기업과 근로자 간의 상호필요에 따른 구조적 현상이므로 단순히 법정근로시간 단축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경총은 기업체가 추가로 부담해야 할 인건비가 연간 19조원에 이를 것이라 추산했다. 전경련은 노동의존도가 높은 중소기업들은 경영 자체가 불가능해질 것이라 경고했다. 근로시간 단축이 생산성 향상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생산성 상승에 따라 근로시간이 줄어드는 것이라며 주 5일제의 전제 자체를 부정하기도 했다.

이같은 반발로 주 5일제는 2003년 8월 법안 통과 이후 2011년에서야 20인 미만 사업장까지 적용되는 등 시행에만 무려 8년이 걸렸다. 전경련은 "실근로시간이 줄어들 가능성이 없는데도 주 5일제를 도입한다면 기업은 인건비 상승으로, 근로자는 실질소득 감소로 서로 손해 보는(loose-loose) 게임이 될 뿐"이라며 "우리의 현실적 여건에서 주 5일제 이후에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정책 '필패(必敗)'를 단언했다. 하지만 현재 주 5일제는 업계의 표준으로 무리 없이 자리잡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 2017년 11월 발표한 '근로시간 단축이 노동생산성에 미치는 영향'. KDI는 주 40시간 근무제(주 5일제) 시행 이후 노동생산성이 1.5% 증가했다고 밝혔다. KDI는 "노동생산성 향상이 주 40시간 근무제에 후행하므로 주 40시간제가 노동생산성 향상을 야기했다는 해석을 뒷받침한다"고 분석했다. KDI 제공
통계가 보여준 결과도 재계의 걱정과는 사뭇 달랐다. 지난 2017년 11월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놓은 '근로시간 단축이 노동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10인 이상 제조업체 1만 1690곳을 조사한 결과 1인당 근로시간은 약 2.9%(연간 70시간) 줄었고, 노동생산성(1인당 실질 부가가치 산출)은 1.5%가 늘었다.

KDI 박윤수·박우람 연구위원은 "주 5일제 도입 이전(2002년 기준)에 이미 평균 정규근로시간이 40시간 미만이어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낮은 업종에서는 아무런 효과가 관찰되지 않은 반면 정규근로시간이 40시간 이상이어서 주 40시간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업종에서는 2.1%의 노동생산성 증대 효과가 관찰됐다"고 밝혔다.

지난 2003년 3.1%였던 경제성장률도 주 5일제가 시작된 2004년 5.2%, 2005년 4.3%, 2006년 5.3%, 2007년 5.8% 등 4~5%대를 꾸준히 유지했다. 특히 2006년에는 전경련이 법정근로시간 단축의 조건으로 제시한 '1인당 국내총생산(GDP) 2만 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지난 2018년부터 도입된 주 52시간제와 관련해서도 경제단체들은 생산 차질 및 인건비 증가 등 부정적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이들은 탄력근로제와 비상상황 시 연장근로를 위한 예외조항 신설 등 보완책을 요구하기도 했다. 다만, 3년이 지난 지금 국내 경제위기는 주 52시간제의 여파보다는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한 불황이 더 큰 원인이라는 분석이 중론이다.

올 2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지난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0%로 '마이너스'를 기록했지만 중국(2.3%), 노르웨이(-0.8%)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OECD가 "회원국 GDP가 지난해 연간 -4.9% 감소했다. 1962년 이래 최대감소 폭"이라고 밝힌 점을 감안하면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나름 '선방'했다고 볼 수 있는 수치다. OECD는 지난해 말 경제전망에서도 "한국은 효과적 방역조치로 인해 회원국 중 GDP 위축이 가장 작은 국가"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OECD는 지난달 말에도 한국의 올해 성장률을 3개월 만에 3.3%에서 3.8%로 올려잡았다. 바클레이즈,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BoA-ML), 골드만삭스, JP모건 등의 세계적 투자은행(IB)들도 금년 성장률을 3.8%로 내다봤다.

연합뉴스
◇"저임금·장시간 노동 시대 끝났다" vs "中企 충격 고려해야"

고용노동부(노동부)는 재계의 우려에도 지난 16일 '더 이상의 계도기간은 없다'며 주 52시간제 시행 유예는 없다고 못박았다. 학계에서는 이같은 입장과 함께 코로나19로 직격타를 맞은 중소기업계의 특수성을 고려해 완충지대를 둬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좋은경제연구소 한성안 소장은 "역사적으로 봐도 노동시간은 단축되고 임금은 인상되는 방향으로 자본주의가 발전해왔다. 기업은 혁신적 기업과 전통적 기업으로 이원화해볼 수 있는데, 후자는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통해서만 버틸 수 있어서 이런 기업들이 계속 반대하는 것"이라며 "경제가 진보한다는 건 생산성이 떨어지는 기업들이 퇴출되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계기업들을 어떻게 품어야 할지 등의 문제가 있지만, 우리 사회가 저임금·장시간 노동이란 전략으로 경제발전을 기대해야 할 시절은 지났다. 그건 시대착오적 향수"라며 "기술 발전을 통해 이 부분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게 (경제 발전의) 객관적 조건"이라고 부연했다.

물론 주 52시간제가 에누리 없이 시행될 경우 국내 경제에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예측도 있었다.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KERI)은 지난 2018년 7월 "노동생산성이 향상되지 않고 자본가동률이 늘어나지 않는다면 소득재분배는 악화되고 소득격차는 확대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근로시간 특례업종이 26개에서 △육상운송업(노선버스 제외) △수상운송업 △항공운송업 △기타운송서비스 △보건업 등 5개로 축소된 점, 탄력근로제를 노사협약으로 연장할 수 있는 상한선이 3개월이란 점도 짚으며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특정 시점과 기간에 집중근로가 필요한 업종의 가동률과 생산감소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바라봤다.

전체 근로자의 8할 이상인 중소기업의 적용 준비는 미비하단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중기중앙회가 이달 10~11일 뿌리산업·조선업종 207사를 조사한 결과 44%는 여전히 주 52시간제를 시행할 상황이 아니라고 답변하기도 했다.

KERI 조경엽 선임연구위원은 "우리 산업구조 자체상 주 52시간 넘게 일하는 사람들이 중소기업 이하에 많이 근무하고 있다. 대기업과는 달리 중소기업은 상당히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임금체계는 '고용보호'가 강해 고용주 입장에서 나머지 시간을 새로운 고용으로 채우기는 너무 어렵다"며 "우리는 선진국에 비해 생산성이 낮아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일을 더 해야 하는 상황이다. 생산성 향상은 안 되는데 시간마저 줄이면 상당한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숙명여대 경제학부 신세돈 교수 또한 "벤처 스타트업이나 형편이 어려운 업체는 주 52시간제를 하려면 인력을 더 뽑아야 한다. '채용을 늘려 (인력을) 혹사하지 말자'는 게 입법 목적이지만 영세기업은 그럴 형편이 안 된다"며 "벤처 쪽은 고도의 기술자들이 많아 구하기도 쉽지 않다. (주 52시간제가) 연착륙하려면, 1년이라도 (계도기간을)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애매한 시행 연기가 제도 여건을 더 낫게 만들리란 보장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노동연구원 김승택 부원장은 "보완 시도도 없이 처음부터 적용시기를 내년으로 한다고 사정이 변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근로자에게 불리한 일이 생긴다든지, 사업자에게도 피치 못할 근거가 있다면 특별연장근로를 (활용)하고 이를 완화할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충격이 큰 업종은 일단 (주) 60시간까지 허용하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관건은 '연착륙' 위한 제도적 지원…"생산성 향상 위한 노력도"

결국 주 52시간제 연착륙의 관건은 중소기업들의 수용성이다. 정부 차원의 적절한 지원과 함께 궁극적으로 기업들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뒷받침도 요구된다.

앞서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 2018년 2월 주 52시간제 이후 12만 5000명~18만 명의 고용 창출이 가능하다고 예상하면서도 임금감소액의 90%를 보전한다 가정하면 매달 약 1094억의 재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했다. 정책처 김상우 경제분석관은 "초과근로시간이 실제보다 적게 집계되는 경향이 있고 연장근로시간 제한이 적용되는 근로자가 과소추정될 수 있어 고용창출 효과는 보수적인 추정결과"라며 "기업은 생산성 향상을 통한 임금 인상으로 임금총액 저하를 완화해야 하고 정부의 지원방안 검토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업체 규모와 업종에 따라 융통성 있는 적용을 고려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대 경제학부 김소영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주 52시간제를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 최저임금을 받는 저임금 노동자들은 근로시간을 60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면 임금이 내려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한 "노동시간이 52시간이 되더라도 소득이 줄지 않으려면 생산성이 높아야 하는데 임금만 올라가면 비용만 더 드는 상황이 되고 기업도 고용을 안 하게 된다. 기업도 생산을 많이 해야 노동자에게 급여를 줄 수 있는 여력이 되기 때문에 생산성을 올려 임금을 자발적으로 더 주게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 노민선 미래전략연구단장은 "코로나 이전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였다면 최근엔 중소기업 내 양극화도 심해졌다"며 "수출 관련 기업이나 반도체·조선 등 최근 물량이 많은 업종은 단기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고, 뿌리산업은 외국인 근로자 의존도가 높은데 현재는 현장에서 인력을 뽑고 싶어도 쉽지 않은 환경"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어떤 업종은 52시간제를 해도 충분히 소화가능하지만 (상대적으로) 어려운 업종도 있다. 업종별로 맞춤지원정책을 강화할 필요가 있고, 고용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국대 경제학과 김태기 교수는 "생산성을 높이려면 가장 빨리 할 수 있는 게 '스마트 팩토리' 같은 부분이다. IT 기술을 얼마나 활용하느냐에 따라 생산성이 확 달라진다"며 "중소기업들은 이런 중요성을 잘 모르는 만큼 정부가 정책적으로 생산성 향상에 도움을 줘야 한다. 지금은 운영자금 위주로 지원이 나가는데 설비 시설자금 쪽으로 돌리는 등 중기 지원도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별기업이 보유한 숙련된 노하우가 체계적으로 전수될 수 있도록 매뉴얼 제작 등도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노동부는 5~49인 사업장의 95%에 해당하는 5~29인 기업은 내년 말까지 노사협의로 최대 60시간까지 추가 연장근로가 가능하단 점, 인력난을 겪는 뿌리기업 등에 대한 외국인력 우선배정 등을 들어 제도 시행에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관측했다. '중소기업 혁신바우처'와 스마트공장 구축·고도화 지원 등도 이뤄진다.

노동부 관계자는 "중소벤처기업부 등 유관부처와 여러 지원방안을 진행하고 있다. 다양한 보완입법도 마련됐기 때문에 이제는 현장에 안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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