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 전세대란 재연?…'서울 아파트 전세매물 급감'

서울의 한 대단지 아파트. 박종민 기자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불안하다. 시장에 나온 전세매물이 1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 탓이다. 22일 아파트 정보업체 아실과 부동산 시장에 따르면 이날 기준 서울의 전세매물은 2만 1349건으로, 두 달 전(2만 3488건) 대비 10%가량 급감했다. 1년 전(4만 4천 건)과 비교하면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비사업 이주 수요로 인해 전셋값 상승 폭이 확대되고 있다. 6~9월 입주물량도 감소해 전세시장 수급 불균형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전세 매물이 급감한 상황에서 가을 이사 철을 대비한 수요까지 가세할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해질 수도 있다. 전·월세 상한제 도입 등 임대차법 개정이 촉발한 작년 하반기 '전세 대란'에 버금가는 '2차 전세 쇼크'가 올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전셋값 불안은 역설적이게도 정부와 여당이 세입자 보호를 위해 내놓은 임대차3법에 기인한 바가 크다. 임대차 3법으로 촉발된 전셋값 상승세는 보유세 강화로 더욱 강한 추진력을 얻었다. 올해 아파트 공시 가격 급등의 여파로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 등 보유세 부담이 커진 집주인들이 전세를 월세로 돌리면서 전세 매물이 줄고 있다. 정부가 양도세 감면 혜택을 줄이고 집주인들의 실(實)거주 의무를 강화하는 것도 전셋집 감소 원인으로 꼽힌다.

전셋집 부족 현상은 당연히 전셋값 급등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한국부동산원 통계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은 지난 2019년 7월 첫째주 이후 103주 연속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4월 이후 안정세를 보였던 서울 전셋값은 전월세신고제 도입을 앞둔 지난달 이후 다시 상승폭이 커지고 있다. 지난주에만 0.11% 올라 4주 연속 상승폭을 확대하고 있다.

재건축 이주 수요가 급증하는 것도 전셋값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서초구에서는 반포주공 1·2·4 주구(2120가구)를 비롯해 신반포 18·21차 등 올해 하반기 지역 내 재건축 이주 수요만 5천여 가구에 달한다. 서초구 일대 전셋값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오르고 있다.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퍼스티지' 전용 135㎡ 전세는 이달 33억 원에 계약돼 올해 1월보다 10억 원이 뛰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주(지난 14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0.11%(전주 대비) 올랐다. 특히 재건축 이주 수요가 급증한 서초구 일대 전셋값이 상승을 이끌었다. 서초구 전셋값은 0.56% 올라 주간 상승 폭으로는 2015년 3월 이후 약 6년 만에 최고치다. 한 달 전(지난달 10일 기준) 전셋값 상승률(0.04%)과 비교하면 가히 폭등 수준이다.


서초구의 전셋값 폭등은 주변 지역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동작구(0.20%), 송파구(0.15%), 강동구(0.14%), 강남구(0.10%) 등 전셋값도 오름폭이 커지고 있다.

서울 동작구 흑석동 '아크로리버하임' 전용면적 84㎡ 12층이 이달 초 13억 원에 전세 계약을 맺었다. 일주일 전 같은 면적 4층 전세 실거래가(10억 5천만 원)보다 2억 5천만 원 오른 가격이다. 마포구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는 전체 3885가구 중 전세 매물이 11건에 불과하다. 이 아파트 전용 84㎡의 전셋값은 작년 7월 임대차법 개정 전엔 8억 원대였지만 지난달 말엔 11억 7천만 원에 거래됐다.

인근 B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전세품귀는 지난해 임대차법 개정 이후 지속되고 있다"면서 "최근 들어 강남권 재건축 단지들의 이주(移住) 수요까지 겹치면서 전세 매물을 찾기거 더 힘들어지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전세 매물 부족으로 촉발된 전셋값 급등이 결국 매매가격까지 밀어 올려 작년 하반기 부동산 시장의 대란이 재연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공급이 줄면서 아파트 전셋값이 가파르게 오르자 차라리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자는 패닉바잉으로 매맷값도 덩달아 오르는 형국이다.

특히 3040의 영끌 빚투가 재건축 아파트 단지로 쏠리면서 서울 집값을 밀어 올리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6월 둘째 주(14일 기준) 노원구 아파트값은 0.25% 올라 서울에서 상승률 수위를 달렸다. 서초구는 0.19%, 송파구는 0.16%, 강남구와 마포구, 동작구는 각각 0.15% 상승했다. 이들 지역은 4·7재보궐선거 이후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를 내건 이른바 '오세훈 프리미엄'으로 개발 기대감이 불붙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난 1~4월 서울의 아파트 거래(2만 69건) 가운데 30대 매입 비율은 36.6%(7358건), 40대는 26.6%(5340건)였다. '이생집망(이번 생에서는 집 장만이 불가능)'에서 탈출하려는 3040의 영끌 빚투가 재건축 아파트 가격 상승을 이끌고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여름철 서울 아파트 입주물량도 감소할 것으로 보여 당분간 전세난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중장기적으로 서울에서 새로 공급되는 민간분양 아파트의 희소성은 계속 커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한다.

부동산114의 경우 서울 아파트 입주는 지난해(4만 9277가구)에서 올해 3만 746가구로 줄어든 후 내년에는 2만 423가구로 오히려 1만 가구 이상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2018년부터 서울 아파트 인·허가 물량이 감소함에 따라 올해는 물론이고 앞으로도 2, 3년간 서울 내 아파트 입주 물량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전세난이 구조적 문제로 고착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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