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교육 사인하고 들어가세요" 쿠팡, 소방안전서류 허위 작성했나

전직 쿠팡 직원 A씨 "2년 동안 화재경보기 오작동 잦아…소방훈련도 받은 적 없어"
쿠팡 노조 "대피 도운 직원, 처음엔 거짓말쟁이 취급당해…트라우마에 밤에는 잠 못 자"
강한승 쿠팡 대표이사 "정기적인 비상 대피훈련 덕에 근무자 전원 안전히 대피" 자찬 무색

지난 18일 오전 경기 이천시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센터에는 에어컨 대신 24시간 선풍기가 돌아갔다. 벽에 걸린 선풍기는 멈추지 않고 먼지 쌓인 날개에서 미적지근한 바람을 내보냈다. 센터 여기저기 놓여있는 멀티탭에도 까만 먼지가 잔뜩 끼어 있었다.

2년 전 수도권의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했던 A씨가 기억하는 센터의 '여름 풍경'이다.

생필품을 다루는 물류센터는 시스템 에어컨 등 냉난방 시설이 되어있지 않았다. 대신 벽걸이 선풍기를 하루 종일 틀었다.

소방관이 사망한 이천 덕평 물류센터처럼 그가 일한 물류센터에서도 화재경보기 오작동이 잦았다고 했다. 하지만 경보기가 울려도 어떤 상황인지 알려주는 안내 방송은 없었다.

1년에 두 번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소방 안전교육이나 대피훈련은 업무를 방해하는 귀찮은 일로 치부됐다. 심지어 안전교육을 받지 않고 사인을 하는 '허위 교육'도 빈번했다.


"점심 먹고 오면 관리자가 앞에 명부를 가져다놔요. 안전관리나 소방훈련 교육 받았다는 내용인데, 관리자가 '일 시작 전에 사인하고 들어가세요'라고 안내하고 그랬어요."

쿠팡 전현직 직원들은 쿠팡의 안전불감증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 17일 당시 화재를 처음 발견한 쿠팡 직원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당일 새벽 5시 26분쯤 퇴근 체크를 하고 1층 입구에서 연기가 나고 화재 경보가 작동하는 것을 보고 보안요원에게 조치를 취해달라고 요청했다"며 "하지만 관계자가 원래 오작동이 잦아서 불났다고 하면 양치기 소년돼요 라고 웃으며 답했다"고 폭로했다.

이에 대해 쿠팡 측은 정기적으로 대피 훈련을 시행했으며 덕분에 인명 피해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강한승 쿠팡 대표이사는 "덕평물류센터의 경우 지난 2월부터 4개월 동안 전문 소방업체에 의뢰해 상반기 정밀점검을 완료했다"며 "비상 대피훈련 덕분에 화재 발생 직후 근무자 280명 전원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신속하고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쿠팡 건물 사진. 박종민 기자
하지만 이미 화재 발생 4개월 전 물류센터가 진행한 자체 소방시설 점검에서 화재경보기 등 270여 건의 결함이 발견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의힘 김용판 의원실이 소방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월 22일 이천소방서는 쿠팡 덕평 물류센터로부터 '소방시설 등 종합정밀점검 실시결과 보고서'를 받았다.

당시 점검에서 지적된 결함은 고정 지지대 탈락 등 스프링클러 관련이 60건으로 가장 많았고 방화셔터 불량도 26건 지적됐다.

이에 대해 쿠팡 노조는 "화재를 맨 처음 인지한 직원이 소리를 지르며 직원들 대피를 도왔고, 그 일이 있고 나서는 밤에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공공운수노조 쿠팡물류센터지회는 "덕평 물류센터 화재 사고 당시 책임지고 화재를 막아내려고 고군분투했던 건 우리 노동자였다"며 물류센터 소방법 점검 전수조사와 전 직원 화재대응 훈련 등 대응책 마련을 요구했다.

한편 덕평물류센터 화재 발생 당시 쿠팡 측이 대피를 지연시켰다는 의혹과 관련해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이천경찰서와 경기남부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등 25명으로 구성된 전담팀은 물류센터 지하 2층 CCTV 분석을 통해 화재가 발생한 정확한 시점을 확인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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