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울경 등 영남 지역 5개 광역단체장은 지난 17일 “지방을 대상으로 이건희 미술관의 입지 선정을 해달라”는 공동건의문을 발표했다.
이건희 미술관을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 건립해달라는 요청이다.
지난해 10월 별세한 고 이건희 회장은 미술품과 문화재 2만3천여 점을 기증했다.
가치를 따질 수 없는 국내외 귀중작품들이 수두룩하다.
이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월 이건희 회장의 뜻을 기릴 수 있도록 “별도 전시관 설치를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후, 전국에서 30곳이 넘는 지자체가 미술관 유치를 희망하면서 과열 양상을 빚고 있다.
대구시가 “이건희 회장의 출생지이자 삼성그룹의 모태”라는 점을 내세우자 수원시는 “삼성전자 본사와 이 회장 묘소가 있는 곳”이라고 나섰다.
용인시는 “고인의 선친인 이병철 회장이 호암미술관을 건립한 곳”이라는 점을, 평택시는 “세계 최대 규모의 삼성반도체 공장이 들어설 곳”이라고 강조했다.
의령은 “이병철 창업주의 고향” 진주시는 “이병철 회장이 다닌 초등학교가 있는 곳”이라는 인연까지 내세웠다.
특히, 이건희 미술관이 송현동에 건립될 가능성이 언급되면서 지역에서는 "문화시설의 36% 이상, 미술관의 50% 이상이 수도권에 편중돼 지역주민들의 문화적 소외가 심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황희 문체부 장관은 21일 국회에서 “(이건희 미술관 부지와 관련해) 7월 초에 방향성에 대해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런 갑론을박에 가장 중요한 것이 없다. 정작 문화가 없다는 것이다.
이건희 회장이 기증한 예술품들은 고미술부터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시기와 장르별로 그 폭이 넓다.
정말 이건희 회장의 뜻을 기린다면 이를 어떻게 존중할지 박물관학적(museology)인 검토가 우선이다.
해당 작가와 작품이 지역에 깃든 저마다의 사연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이 회장과 유족들의 이같은 소중한 배려와 인식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이건희 미술관 건립을 한낱 토목사업처럼 접근하는 것은 몰지각한 일이다.
삼성 가문이 돈이 없어서 새로운 미술관을 짓지 않은 것이 아닐 것이다. 삼성가에는 이미 리움미술관과 호암미술관 등 훌륭한 전시관들이 있다.
유족들이 국가에 작품을 기증한 것은 모두의 예술품으로 남고 싶어 하는 뜻일 것이다.
이건희 미술관은 가덕도 신공항처럼 정치공학적으로 또는 지역논리로 접근할 일이 아니다.
따라서, 각 지자체들이 우스꽝스러운 인연을 동원하며 저마다 이건희 미술관을 유치하겠다는 것은 밥숟가락 얹기밖에 안된다.
아마도, 미술관 건립논의 중지를 요청하거나 삼성가 소유 미술관 자체 전시를 선택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건희 회장의 기증작품들을 앞뒤 사정 살피지 않고 무조건 한데 모아 전시하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도 유감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