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따라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 재추진 과정에서 한국의 역할이 커지고 남북관계에서의 자율성도 확보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22일 외교부에 따르면 노규덕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성 김 미국 국무무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전날 북핵수석대표 협의에서 워킹그룹을 종료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기로 합의했다.
한미 양측은 그 대안으로 기존 북핵수석 협의 외에 국장급 협의를 강화하기로 했고 구체적 방안은 계속 논의하기로 했다. 국장급에선 현재 임갑수 외교부 평화외교기획단장과 미측에선 한국계인 정 박 대북특별부대표가 실무를 맡고 있다.
한미 워킹그룹은 지난 2018년 11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로 만들어진 일종의 태스크포스(TF)로 대북정책을 사전 조율해왔다.
남북협력 과정에서 대북제재 위반 가능성을 일괄적으로 사전 점검한다는 순기능과 함께 미국의 과도한 간섭이라는 역기능이 동시에 거론돼왔다.
2019년 초에는 타미플루(독감 치료제) 대북 지원조차 트럭 등 운반수단에 대한 미국의 문제 제기로 무산되기도 하는 등 남북관계의 '족쇄'라는 비판이 따라붙었다.
이와 관련,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해 언론 인터뷰에서 2018년 당시 스티븐 비건 대북특별대표가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설치 등 협의 과정에서 부당한 압박을 가한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여권을 중심으로 워킹그룹에 대한 해체나 보완 필요성이 거듭 제기됐지만, 미국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왔다.
다만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한미정상회담에서 남북협력과 대화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데 이어 이번 한미 북핵 협의에서도 이를 재확인한 점은 의미가 있다.
이는 북한과의 대화·협상은 물론 남북관계의 고유 영역에조차 개입하려 했던 전임 트럼프 행정부와 다른 모습이다.
성 김 대북특별대표는 전날 협의에서 한미 정상 공동성명에는 없던 '의미 있는'(meaningfull)이라는 수식어를 추가한 남북협력과 대화 지지를 표명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성 김 대표가 22일 이인영 통일부 장관을 예방하고 최영준 차관과는 고위급 양자협의를 갖기로 한 것도 이전과는 달라진 기류를 반영한다.
미국 측 고위 인사가 면담이나 예방 차원에서 통일부를 찾기는 했지만 '양자협의' 형식의 만남은 전례가 드물다.
통일부는 이인영 장관 취임 이후 '물물교환식 남북교역' 등 다양한 남북협력 재개 방안을 적극 모색해왔다. 워킹그룹이라는 걸림돌이 제거되는 만큼 코로나19 백신 지원 등 남북협력에 대한 협의가 보다 활발히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이런 기류 변화는 북미 양측이 서로 양보를 요구하며 팽팽한 기 싸움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더 주목된다.
성 김 대표는 전날 협의에서 북한의 대화 복귀를 거듭 촉구하면서도 북한의 관심사인 적대시 정책 철회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에 공을 다시 넘긴 셈이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북한과 한미일 간 핑퐁게임이 시작됐다"며 "그 과정에서 한미일이 어떤 선물 보따리 꺼내느냐에 따라 북한이 움직일 수 있고, 한미일도 북한의 진정성 있는 행동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북미가 서로 급할 것이 없다며 신경전만 지속하는 상황에서 남북협력의 공간 확대를 배경으로 한국의 중재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