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1965년 6월 22일 한일협정 체결을 앞두고 한국 정부에 거액의 지원금을 제시하며 협정 체결을 회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기밀문서 다운로드]
'美비밀문서로 본 65년 한일협정 체결비사' 글 싣는 순서 |
①한일협정은 美작품…미군감축카드로 朴압박 ②美 한일협정 회유…韓여론용 차관 미끼 고안 ③한일협정은 2:1싸움…日총리 "생큐 미국" ④美 뒷탈많은 한일협정 밀어붙인 이유 |
CBS노컷뉴스가 미국 뉴저지 버겐(Bergen) 커뮤니티 칼리지 이길주 교수를 통해 확보한 당시 미국 정부의 기밀문서들을 살펴보면 미국 정부는 막바지에 이른 한일 간 협의에 쐐기를 박기 위한 묘수를 찾는 데 힘을 쏟았다.
협정 체결의 최대 변수인 한국 내 반발 여론을 진정시키기 위해 박정희 대통령과 존슨 대통령의 정상회담에 맞춰 거액의 한국 원조금 지불 방안을 '공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박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을 나흘을 앞둔 1965년 5월 13일 G 벨 국무장관 대행은 존슨 대통령에게 2페이지짜리 기밀결재를 올린다.
정상회담 이후 발표할 공동성명 내용에 반드시 포함시켜야 할 문구에 대한 재가를 요청한 것이다.
결재안은 "이번 방문은 박정희 대통령이 한일 간 과거사 청산에 대한 한국 국민적 수용과 국회 비준을 확보하기 위해 기울여야 할 노력에 중대하게 기여할 것"이라며 "미국이 향후 수년간 한국에 1억 5천만 달러의 개발 차관 지원 계획 문구를 공동성명에 포함시켜 주실 것을 요청 드린다"고 적고 있다.
이어 "1억 5천만 달러의 개발 차관과 계획된 다른 원조는 향후 3년간 지원할 액수를 넘지 않지만 이번 기회에 이를 공표하는 것은 한일 관계 정상화에 결정적"이라고 강조했다.
다음날 이번에는 NSC가 움직였다.
제임스 톰슨(NSC)과 맥조지 번디(국가안보특보)가 존슨 대통령에게 올린 1페이지짜리 보고서에도 같은 제안이 들어있다.
이 문건에는 1억 5천만 달러 지원 문구에 대한 노골적인 의도가 담겨있다.
NSC는 전날 국무부의 결재 서류에 대해 "한일 간의 합의가 임박했지만, 우리의 지속적인 지지를 재확인 시켜 주기 위해 고안된 일반화된 지원책의 한 부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어 "문제의 총액은 우리가 보통 향후 3년 동안 제공할 계획보다 많지 않다. 더욱이, 공동성명은 물론 그러한 자금의 제공이 '적용 가능한 법률과 책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규정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 "미국이 한국을 일본 지배하에 버리려고 한다는 한국 내 심각한 공포에 박 대통령이 성공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계량화된 약속이 시급하다"고 결론짓고 있다.
결국 1억 5천만 달러는 한일협정에 대한 한국 내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며 실제 집행 여부는 사정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조건까지 붙인 것이다. 언론플레이를 위한 위장술임을 자인한 것이다.
존슨 대통령은 국무부가 올린 해당 결재서류에 결국 서명했다.
1억 5천만 달러 지원은 정상회담이 열리기 1시간 전 NSC에서 존슨 대통령에게 올린 최종 보고서에서 다시 한번 강조된다.
보고서는 우선 "박정희 대통령은 한 가지 가장 중요한 이유로 워싱턴에 왔다. 그는 자신에 대한 우리의 호의와 지속적인 미국의 원조를 통해 우리가 한일협정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일본의 지배에 내맡길 의사가 없다는 가장 강력한 암시를 받기를 원한다. 우리가 그에게 줄 수 있는 어떤 확신이라도 그러한 합의의 비준과 수용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를 얻는 데 있어 그가 마주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들을 완화시킬 것이다"고 적고 있다.
이어 (1)'한미 협상'이라는 소제목으로 "우리는 이러한 (한일 협상의) 발전에 깊이 만족하고 있으며, 박 대통령의 결심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 협정은 두 개의 상호 보완적인 경제와 두 개의 자연스런 동맹국 사이에 새롭고 상호 생산적인 관계를 가져다 줄 것이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길주 교수는 '상호 보완적인 경제'에 대해 "당시 한국의 수출 품목은 해산물 같은 1차 상품, 일본의 주력 수출 품목은 공산품이었다. 따라서 미국으로서는 한국과 일본은 상호 보완적인 경제관계로 한일협정은 양국에 윈윈이라고 믿었다"고 설명했다.
'자연스런 동맹국'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이 교수는 "한국과 일본이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는 나라들이기 때문에 우호적인 이웃국가로 발전하는 것이 자연스런 일이라고 보고 한일협정 체결에 힘을 쏟았다"고 설명했다.
NSC 보고서는 또 (3)'한국에 대한 원조'라는 소제목에서는 "박 대통령은 우리의 지속적인 경제적 지원에 대해 그에게 줄 수 있는 모든 확신을 원할 것이다. 우리는 공동성명에 한국의 필수 수입품에 대한 자금 조달, 향후 몇 년간 1억 5천만 달러의 개발 차관 자금을 조달하고 기술 지원과 훈련을 지속하며, '평화를 위한 식량 원조'를 지속하겠다는 일반적인 원조 공약을 포함시킬 것을 제안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같은 미국 국무부와 NSC의 공조로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는 '1억 5천만 달러 개발 차관 제공'이 포함됐다.
이런 의도에 따라 한국 언론도 당시 이 금액을 제목으로 뽑으며 비중 있게 보도했다.
물론 1억 5천만 달러 지원 문구를 공동성명에 넣자는 안을 박정희 정부가 요구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어떤 경우라도 이 금액이 한국 국민들의 한일협정 반대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의도로 고안됐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로 보인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