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는 18일 최영애 위원장 명의의 성명을 통해 "인도적 체류자의 취업실태는 난민신청자의 지위일 때와 다르지 않다"며 "인도적 체류자는 우리 정부로부터 국제적 보호 필요성에 대해 인정을 받은 후에도 취업허가가 있어야 취업할 수 있는데 허가 전 근로계약 체결과 사업자등록증 제출 등 사업주의 협조가 있어야 하는 등의 상황이 취업을 어렵게 하고 있고, 이는 생계곤란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인권위는 지난 10일 상임위원회에서 이같은 문제점의 개선을 위해 법무부 장관에게 △인도적 체류자에 대한 지위와 처우가 국제규범 상 '보충적 보호' 취지에 부합되도록 난민법 등 관련 법령의 개정을 추진할 것 △관련 법령을 개정하기 전이라도 인도적 체류자의 안정적 체류기간 확보·취업 허가요건 완화 및 절차 간소화 등 관련지침을 개정할 것을 권고하기로 의결했다.
앞서 유엔(UN)은 정치적 박해 등을 피해 본국을 떠난 난민을 보호하기 위해 지난 1951년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난민협약)을 체결했고, 한국 역시 지난 1992년 협약에 가입했다.
이후 국제정세가 급변하면서 난민협약에 언급되지 않았으나 고국으로 송환될 경우 박해 및 심각한 위해를 입을 위험에 처하게 된 사람들이 늘었다. 이에 국제사회는 '고문 및 그밖의 잔혹하거나 비인도적 또는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의 방지에 관한 협약'(고문방지협약) 등 여러 인권규약들을 통해 보호망을 넓혀왔다.
실제로 다수의 국가들은 이들을 포괄할 수 있는 보충적 보호(complementary forms of protection) 제도를 마련했고, 한국도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지만 인도적 차원에서 보호가 필요한 이들을 위해 난민법에 '인도적 체류허가' 규정을 뒀다.
지난 1994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내에서 인도적 체류허가를 받은 인원은 모두 2370명이다. 총 3만 4836명이 심사를 받은 결과로 인정률은 3.1%로 다소 낮은 편이다. 지난 1994~2017년까지는 시리아 국적이 가장 많았고,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은 예멘 출신이 최다였다. 지난 2018년 4월 본국의 내전 사태로 인해 제주도에 대거 입국한 예멘 난민 신청자들은 대부분 인도적 체류허가를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인권위가 지난 2019년 실시한 '대한민국 내 인도적 체류자 처우실태 모니터링'에 따르면 인도적 체류자들은 상당 기간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불가피한 사유가 있고 국내 체류과정에서 다양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장기체류자격으로 입국한 이주노동자가 체류자격이 G-1으로 변경돼 국민건강보험 가입이 불허된 사례도 있다. 인권위는 지난달 보건복지부 장관과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에게 "지역가입자가 될 수 있는 체류자격에 '장기체류자로 일정기간 건보 자격을 유지했던 사람'이 포함되도록 관련법 시행규칙을 개선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인권위는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체류 중인 인도적 체류자 중 60% 이상이 3년 넘게 장기체류하고 있고, 인도적 체류자들이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여건은 쉽게 열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이들에게는 체류기간 상한이 1년 이내인 기타(G-1) 체류자격이 부여돼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1년마다 체류자격을 연장해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며 "이러한 임시적인 체류자격으로 인해 통신사 가입, 보험 가입, 카드 발급 등을 거절당하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난민 및 인도적 체류자의 처우와 관련해 우리 정부도 많은 부분 공감하고 개선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번 권고를 통해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인도적 체류자에 대한 개선방안이 조속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세계 난민의 날'은 인종·종교·정치적 신념·특정사회집단 구성원의 신분·정치적 의견 등을 이유로 한 박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고국을 떠난 난민들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촉구하고자 지난 2000년 12월 UN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