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60만 원, 땀으로 버텼더니 하늘도 돕더라

25년 지도자 생활 첫 국가대표 사령탑, 인천시체육회 서규재 감독

한국 소프트테니스 남자 국가대표 사령탑에 오른 인천시체육회 서규재 감독이 17일 인터뷰를 마치고 환한 표정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노컷뉴스
근 40년 동안 비주류였다. 강화도 외딴 섬 소년으로 입문했던 선수 생활은 짧았고, 그나마 어렵게 시작한 지도자 생활은 길었으나 뭍에 닿지 못하는 배처럼 주류에 편입되지 못하고 표류했다.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었다.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사내는 한여름 땡볕에 살을 태워가며 젊음을 불살랐다. 까맣게 그을린 피부는 훈장처럼 쌓였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마침내 꿈에 그리던 국가대표 사령탑이라는 결실을 보게 됐다.


소프트테니스(정구) 남자 국가대표 지휘봉을 잡게 된 서규재 인천시체육회 감독(49)이다. 서 감독은 올해부터 사령탑에 올라 내년 항저우아시안게임까지 남자 대표팀을 이끌게 됐다.

우여곡절이 있었다. 당초 대표팀 사령탑은 수원시청 임교성 감독이 낙점됐다. 대한소프트테니스협회 경기력향상위원회는 최근 대표팀 감독을 공모했고, 서류 심사와 면접 등을 통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임 감독을 선임했다. 서 감독도 응모했지만 아깝게 종합 점수 2위로 선택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임 감독이 팀과 개인 사정에 따라 대표팀을 이끌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임 감독이 사임 의사를 밝혔고, 차점자인 서 감독이 사령탑에 오르게 됐다.(물론 함께 응모한 순천시청 김백수 감독의 후배를 위한 아름다운 양보도 있었다.)

25년 가까운 지도자 생활에 처음 잡게 된 국가대표 지휘봉이다. 서 감독은 코치 시절 대표팀에서 활동하고, 이런저런 친선 국제 대회 감독을 맡긴 했지만 명실상부한 국가대표 사령탑은 이번이 처음이다.

17일 인천에서 만난 서 감독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대표팀 사령탑에 도전했다"면서 "대표팀 감독에서 떨어져서 코치로라도 아시안게임에 가려고 다시 협회 공모에 응하려고 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런데 우연치 않게 운이 따라 감독이 됐다"며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올해 실업연맹전 남자 단체전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인천시체육회 선수단의 모습. 인천시체육회
서 감독에게 국가대표 사령탑은 영광 그 자체다. 그만큼 어렵게 선수와 지도자 생활을 해왔기 때문이다. 비인기 종목, 그 중에서도 소외된 강화도 출신인 서 감독의 지난했던 37년 소프트테니스 인생이었다.

강화도에서도 섬인 교동 출신인 서 감독은 초등학교 6학년 라켓을 처음 잡았고, 중학교부터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강화도였지만 당시 교육청이 장려한 소프트테니스 운동부가 있었다. 스포츠를 좋아했던 서 감독에게 유일한 섬 시골 학교의 운동부였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지방 대회라도 출전하려면 꼬박 하루가 걸렸다. 서 감독은 "울산 대회에 출전하려면 전날 새벽부터 배를 타고 육지로 나가 밤에야 도착했다"면서 "그리고 다음 날 바로 경기를 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이렇게 어려우니 대회를 자주 나갈 수도 없어 스스로를 "우물 안 개구리"라 불렀다.

그렇게 교동중고교 6년을 보냈지만 진로가 불투명했다. 육지와 달리 선배가 거의 없던 강화도 출신이라 체육 특기자로 대학 진학이 쉽지 않았다. 겨우 수원과학기술대로 진학한 서 감독은 군 제대 뒤 실업 이천시청에 입단했으나 2년 만에 선수 생활을 접었다.

25살 한창 선수로 뛸 나이에 서 감독은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1996년부터 인천 학익여고 코치를 맡아 이듬해 정식 발령을 받았다. 그러나 비인기 종목 고교 코치의 생활은 힘겨웠다. 서 감독은 "당시 월급이 60만 원 정도 됐다"면서 "그나마 시간 외 수당 등으로 근근히 버텼다"고 귀띔했다.

서 감독이 가진 것이라고는 땀뿐이었다. 서 감독은 하루 종일 어린 선수들과 부대끼며 훈련했다. 서 감독은 "당시 운동부 선수들은 오전 1교시나 아예 수업을 받지 않고 운동을 했다"면서 "아침 저녁으로 훈련을 시켰다"고 했다. 15년을 그렇게 보냈다. 서 감독은 "선수들이 종목 명문팀인 NH농협은행과 안성시청 등으로 가고 주니어 대표로 뽑힐 때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본인도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2012년 서 감독은 인천시체육회 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인천 체육의 대부 곽희상 인천시체육회 사무처장이 서 감독을 눈여겨본 것. 서 감독은 코치 시절 윤형욱(현 달성군청), 박다솜(현 문경시청) 등 국가대표들을 배출했다.

하지만 힘겨운 상황은 여전했다. 빠듯한 재정에 에이스급 선수들이 다른 팀의 러브콜을 받아 빠져나갔다. 곽 사무처장은 "키워놓으면 나가고, 또 키우면 나가는 상황이 이어졌다"고 돌아봤다.

그럼에도 서 감독은 꿋꿋하게 버텨냈고, 차츰 노력의 결실이 맺어지기 시작했다. 2018년 코치에서 감독으로 승격됐고, 팀도 꾸준히 입상했다. 인천시체육회 오정규 스포츠공정실장은 "서 감독이 점심을 먹을 때 보면 매번 얼굴에 선크림과 땀이 범벅이 돼 있다"면서 "감독이 되면 선수들과 공을 쳐주기 쉽지 않는데 항상 함께 땀을 흘린다"고 귀띔했다.

'5년 만의 인천 국가대표' 서규재 감독이 17일 인터뷰에서 5년 만에 인천시체육회 소속 국가대표로 발탁된 배환성(오른쪽), 박재규와 포즈를 취한 모습. 노컷뉴스
어려운 처지에도 후배를 챙기는 마음도 빛을 봤다. 서 감독은 지난해를 끝으로 해체된 이천시청 베테랑 배환성(36)을 영입했다. 배환성은 "감독님이 '우리 팀도 어려운 상황이지만 너만 괜찮다면 오라'고 하시더라"면서 "다시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인천으로 갔다"고 돌아봤다. 7살 아들과 5살 딸 아이 아빠였던 배환성은 갈 곳이 없었지만 인천이 인하대 출신 선수를 품에 안았다.

결국 배환성은 박재규와 함께 올해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당당히 태극마크를 달았다. 인천시체육회로서는 2015, 2016년 윤형욱 이후 5년 만의 국가대표 배출이었다. 은퇴 위기에 놓였던 배환성 개인으로도 10년 만에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다. 이를 바탕으로 서 감독도 국가대표 사령탑에 도전할 수 있었고, 마침내 사령탑에까지 오르게 된 것이다.

마침 올해는 서 감독의 결혼 10주년이다. 여기에도 사연이 있다. 서 감독은 "선수들을 가르치다 보니 결혼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결혼은 솔직히 그냥 하면 되는 줄 알았더니 아니더라"면서 "아내는 고교 시절 동료 선생님이 소개해줬는데 처음에는 시꺼먼 운동부 코치라고 싫어했다"고 돌아봤다. 그러나 진국인 서 감독과 만남이 이어지면서 가정을 꾸리게 됐다. 서 감독은 "아내가 인천시 소프테니스협회 사무국장도 맡는 등 이제는 나보다 더 감독들과 친하다"고 귀띔한다.

올해는 코로나19로 11월 예정된 아시아소프트테니스선수권대회가 취소됐다. 사실상 내년 항저우아시안게임을 대비해야 하는 상황. 한국 소프트테니스는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7개 전 종목을 석권했지만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때는 남자 단식과 단체전 금메달 2개에 머물러 자존심이 상했다.

서 감독은 "한국 소프트테니스는 그동안 국제 대회에서 메달을 많이 땄다"면서 "여기에 누를 끼치지 않도록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어 "그동안 노력해서 지금처럼 나아진 것도 고맙다"면서도 "선수 시절 따내지 못했던 금메달을 목표로 하겠다"고 다부진 출사표를 던졌다.

이제 표류를 마치고 막 뭍에 닿은 강화도 섬 소년의 소프트테니스 인생. 과연 내년 중국 대륙에서 펼쳐질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의 꿈이 이뤄질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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