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핀 100배 마약, 열 달만에 10년치 모을 수 있던 이유

암환자 통증 완화용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 패치'
청소년도 "허리 아프다"며 처방전 받아…마약범죄 취약
의약품 관리 시스템 갖췄지만..."사용하지 않는 현장 있어"
전문가 "환자뿐 아니라 의료진에도 마약성 의약품 교육 필요"

모르핀보다 효능이 100배 높은 마약 펜타닐 패치. 경남경찰청 제공
지난해 A씨는 열 달 동안 병의원 10여 곳을 돌아다니며 '펜타닐 패치'를 모았다. '펜타닐 패치'는 암환자의 통증 완화를 위해 사용되는 마약성 진통제다. '모르핀'보다 100배 강한 약을 그는 한 사람이 무려 10년을 복용할 수 있는 양을 모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거의 모든 의료기관은 '의약품 안전사용 서비스(DUR)'를 통해 환자의 처방전 기록을 남긴다. DUR을 보면 환자가 어떤 약을 며칠 주기로 처방받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국내 의료기관 99.4%25가 DUR을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기관이 DUR을 통해 처방전을 발급할 의무는 없다. A씨는 이 허점을 노렸다.

17일 의료계에 따르면 펜타닐 패치는 의사 처방전 없이는 구매가 불가한 마약성 진통제다. 약국에서도 금고에 별도 보관하는 약품이다.


그러나 A씨 사례처럼 일부 병의원에서 DUR을 거치지 않고 수기로 처방전을 내주다 보니 흔적 없이 펜타닐이 유통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허리 디스크 있다"며 청소년도 펜타닐 구매…마약범죄 취약

지난 4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펜타닐 패치를 무분별하게 처방한 것으로 의심되는 의료기관 40개소를 적발했다. 한 의원은 지난해 1월부터 10개월간 한 환자에게 5년치 분량의 펜타닐 패치를 처방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청소년 사이에서도 펜타닐 패치를 투약하는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달 경남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병원이나 약국에서 펜타닐 패치를 처방받아 판매하거나 투약한 10대 수십명을 붙잡았다. 이들은 병원에서 '허리가 아프다'거나 '디스크 수술 예정이다'라고 얘기한 뒤 의사로부터 처방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펜타닐은 과다복용할 경우 호흡기능 저하로 사망할 수 있다. 지난 10일 경기 성남 미금역 화장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10대는 당시 마약성분의 진통제 패치를 지니고 있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사망 원인을 조사하고 있으나, 타살 혐의점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검찰청이 펴낸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지난 2018년 미국에서 펜타닐 오남용으로 사망한 사람들은 4만4천여 명에 달한다.

약사 B씨는 "현행법상 펜타닐은 처방전이 있어야만 내줄 수 있으며, 보관도 이중금고에 하고 있다"며 "그러나 간혹 일부 의원에서 환자가 아프다고 하면 따져보지 않고 펜타닐을 처방해주는 곳도 있는 걸로 안다"고 설명했다.

◇과다 처방 막는 시스템 있지만...현장서 이용하지 않으면 그만
'의약품 안전사용 서비스(DUR)' 운영 흐름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제공

의료 현장에선 DUR을 통해 의약품 현황을 파악한다. DUR은 의료진이 사용하는 진료용 PC에 설치돼 환자 정보와 처방 약품, 횟수 등을 모두 기록한다.

문제는 현행법상 DUR 사용에 대한 강제성이 미약하다 보니 일선 의료 현장에서 DUR을 사용하지 않는 곳도 있다는 것이다.

현행법에는 '(환자의) 의약품 정보는 DUR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명시돼있다. 하지만 일부 현장에선 이 조항을 '의사나 약사가 환자의 정보를 강제로 확인할 권한은 없다'라고 해석해 DUR을 거치지 않고 처방전을 내주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한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는 "대부분 의사들은 DUR 프로그램을 통해 의약품을 처방하지만, 일부 허술한 병원에선 DUR을 실행하지 않고 수기로 처방전을 써주기도 한다"며 "이 틈을 노리고 마약성 의약품을 과다하게 처방받는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약국에서도 DUR을 통해 환자의 의약품 처방 현황을 파악한다. 하지만 약국은 처방전에 따라 조제를 하는 입장이다 보니, 정상 절차를 거친 처방전을 거절할 수 없다. 처방전을 내준 병원 측에 연락해 처방 내역을 다시 확인하는 정도가 최선이다.

일부 구매자들은 이를 노리고 병원이 문을 닫아 연락이 불가한 시간에 약국을 찾아 마약성 약품을 구매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약사 C씨는 "약사 입장에선 처방전에 따라 조제할 의무가 있다"며 "과다 처방이 의심될 경우 병원에 연락하는데, 하필 병원이 문을 닫은 야간 시간에만 와서 마약성 약품을 사가려는 환자들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 "약품 관리 시스템 강화해야…예방교육도 필요"

펜타닐 패치는 최근 온라인상에서도 거래가 이뤄지며 음지화가 계속되는 상황이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수사 중인 사안은 없으나, 최근 온라인에서 펜타닐 패치 등 마약 의료품이 거래되고 있다는 내용은 인지하고 있다"며 "혐의 확인 시 곧바로 수사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DUR 등 현재 갖춰진 의약품 관리 시스템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기도마약퇴치운동본부 이정근 본부장은 "DUR만 제대로 이용해도 웬만한 마약성 의약품 누수를 막을 수 있다"면서도 "일부 병원에서 DUR을 사용하지 않는 곳도 있다 보니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법령을 강화해 모든 의료 현장에서 DUR을 필수 사용하게 해야 한다"며 "구매자뿐 아니라 의사와 약사에게도 마약성 의약품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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