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터뷰]김명민 '연기 본좌' 말고 '그냥 배우'

JTBC '로스쿨'서 양종훈 교수 역으로 열연
"강마에와 비슷? 내가 극복해야 할 기시감이었다"
"'연기 본좌' 수식어 그만…배우만으로도 몫 다했다"
"연기 원칙은 대사 숙지, 일찍 출근 그리고 캐릭터 서사 쓰기"
"자극적 드라마는 많아…진정성 넘치는 작품 제작됐으면"

JTBC 수목드라마 '로스쿨'의 양종훈 교수 역을 연기한 배우 김명민. 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김명민의 연기는 의심할 것 없이 독보적이다. 누군가는 JTBC 수목드라마 '로스쿨'의 양종훈 교수가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와 다를 게 없다고 했지만 사실상 이런 캐릭터를 김명민만큼 소화 가능한 배우들이 많지는 않다.


'로스쿨' 양종훈 교수는 법정에서 최후 변론을 한다. "예비 법조인들에게 공정한 저울질에 의한 정의로운 판결이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확고한 원칙이 있으면서도 진정으로 학생들을 위할 줄 아는, 늘 법과 정의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는, 때로는 낙담하고 또 다시 일어서는 인간적인.

양종훈이 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그의 시간을 쌓아온 김명민이 아니었더라면 이처럼 촘촘하면서도 복합적인 매력이 나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어떤 캐릭터든 김명민은 뚜렷한 큰 줄기 뒤에 감춰진 이면을 찾아 나선다. 연기 생활 내내 그렇게 캐릭터를 구축해왔다. '로스쿨'이 지극히 현실적 드라마였음에도 따분하지 않았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연기 본좌' 수식어를 사양하는 김명민의 얼굴은 쑥스럽기만 하다. 그저 '배우'면 충분하단다. 김명민에게 배우란 듣기 달콤한 칭찬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내려놓는 혹독한 과정인 동시에 증명이었다. 그러니 '배우'라는 호칭만으로 이미 뿌듯할 수밖에 없다. 다음은 CBS노컷뉴스가 김명민과 가진 인터뷰 일문일답.

JTBC 수목드라마 '로스쿨'의 양종훈 교수 역을 연기한 배우 김명민. 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 '양크라테스' 입장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학생은 누구였나

- 모두가 하나 같이 애착이 갔다. '조선명탐정3'에서 처음 봤던 (김)범이 같은 경우 굉장히 가까워졌다. 재회해서 다시 보게 됐고, 성실하게 자기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너무 예뻤다. 무엇보다 고민을 많이 하더라. 정말 멋진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고, 학생 배우들의 리더로서 후배들을 다독여가면서 현장을 이끌어갔다. 인간적으로도 매력이 넘친다. 이번에 형동생을 제대로 먹었다.

(류)혜영이는 본인과 조금 다른 강솔A 역을 맡으면서 고생을 많이 했다. 마음이 아팠는데 그걸 다 이겨낸 게 정말 사랑스럽고 예뻤다. 왜 양 교수가 그렇게 독설을 난무하면서도 강솔A를 자기 제자로 길러내려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 외에 (이)다윗이 등 그들이 같이 모여 있는 모습만 봐도 연기에 대한 영감을 줬다. 후배 배우들에게도 정말 감사하다.

▷ 로스쿨 교수에 법조인이었기 때문에 강의나 법정에서 상당히 많은 법률 용어가 담긴 대사량을 소화해야 했다. 자칫하면 처질 수도 있는데 극을 지루하지 않게 이끌어 가기 위해 노력한 지점이 있다면

- 일단 제가 200% 그 내용을 이해하고 잠꼬대 할 정도로 외우는 방법밖에는 없다. 양 교수처럼 이야기 할 수 있도록 정말 술술술 입에 붙게. 저조차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 투성이었는데 1년 동안 계속 모르는 걸 찾아보고 판례를 익혀왔다. 그렇다면 관객들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거다. 작가님도 양 교수란 대리인을 세워 관객들이 이해하기 쉽게 돕는 역할을 준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내 앞에서도 대사를 치면서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냐고 물어보고, 좀 더 알아듣기 쉽게 전하려고 노력했다. 한 번에 이해 시키는데 제 몫이 중요하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 '베토벤 바이러스'나 '하얀 거탑'에서도 그랬지만 천재에 가까운 전문직, 그리고 독설 캐릭터가 유독 대표 필모그래피에 많은 것 같다. 실제로 이런 작품 제안이 많이 들어오는지 아니면 본인이 선호해서 그런 건가

- 선호하는 건 아닌데 주기적으로 이런 캐릭터 의뢰가 들어오는 거 같다. 솔직히 처음에 약간 고사하려고 했던 이유 중 하나는 어려웠고, 양 교수 캐릭터가 '강마에'와 비슷해서였다. 어미 처리나 인토네이션이 너무 흡사해서 어떻게든 다른 쪽으로 바꿔보려고 해도 오히려 어색해지더라. 후에 김석윤 감독님이 참여하게 되면서 캐릭터를 바꿔서 가면 안되냐고 제안도 해봤다. 역으로 감독님이 '10년이 지난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너의 그런 모습을 다시 보길 원한다'라고 하는 말씀에 수긍을 했다. 그러나 기시감 극복은 저만의 과제였기에 노력했다. '강마에 아니냐' 이런 평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결과론적으로 작품 자체가 호평을 받아서 만족한다. 굳이 찾아서 하진 않겠지만 누군가 원하신다면 또 한 번 이런 캐릭터를 할 의향은 있다.

JTBC 수목드라마 '로스쿨'의 양종훈 교수 역을 연기한 배우 김명민. 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 다크 히어로를 앞세운 통쾌한 장르물이 넘쳐나는 시기다. 그 사이 '로스쿨'이 6%25가 넘는 시청률로 종영했다. '사이다' 보다는 오히려 법의 현실적인 양면성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던 것 같다. 양 교수를 연기한 배우로서 어떤 매력이 시청자들에게 통했다고 생각하나

- 피해사실공표죄 등 현실 사법 이슈를 과감하게 드라마에 투영했다. 민감한 소재임에도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이를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들고 참여한 배우들조차도 답답하지만 현실인 부분을 과장되지 않게 그러나 공감되게 표현한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사건으로 16회를 끌고 가는 게 힘들다. 또 요즘처럼 급변하는 시기에 굉장히 공부해가면서 봐야 하는 드라마임에도 그 진정성이 어필이 된 것 같아 기쁘다. 아직 그런 목마름이 있는 관객들이 계시다는 것을 크게 받아들이고 있다.

▷ 아무래도 긴 시간 법조인 양 교수의 모습을 연기하다보니 국내 사법 체계나 법조인들에 대해 가진 생각이 바뀐 게 있을까

- 의사 연기를 하면 의사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는 것처럼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부작용 아닌 부작용이 있다. 이 드라마는 '법은 과연 정의로운가'라는 질문을 계속 던진다. 법은 정의의 편에 서면 한없이 정의롭지만 꼭 그렇지 않기도 하지 않나. 법조인들에 대한 존경심이 느껴지면서도 그 고충과 딜레마가 이해되는 부분이 있었다. '정의'는 단순히 소신을 가지고 진실만을 추구한다고 해서 가능한 게 아니다. 한편으로는 양 교수와 같은 참스승이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성적이 돼야 가능하겠지만 20년 전 양 교수가 있었다면 나도 '로스쿨'에 갈 의향이 있다.

▷ 양 교수는 자신만의 '원칙'이 확고한 사람이다. 배우 김명민으로서 포기할 수 없는 원칙이 있다면

- 완벽한 대사 숙지와 아무리 늦어도 기본 30분 전 촬영장 도착. 빠르면 한 시간도 가능하다. 왜 그렇게 빨리 오냐고 하는데 연기의 50%는 대사 숙지, 그리고 나머지는 현장의 공기다. 그 공기는 저와 함께 호흡을 맞출 배우들과 스태프들, 감독님을 모두 포함한다. 이 50%가 급박하게 돌아가면 아무리 대사를 숙지해가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게 안되면 완전히 망하는 날이다. 그리고 캐릭터 서사를 좀 많이 적는 편이다. 손글씨로 공책에 양 교수의 과거를 거슬러가서 고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상상 속 서사를 보여준다. 대본에는 나오지 않지만 큰 텍스트 사이 서브 텍스트를 찾아 나가는 게 큰 원칙이다. 그런 서사를 쓰는 과정이 있어야 좀 더 양 교수에게 다가가고 감정이입을 온전히 할 수 있다.

JTBC 수목드라마 '로스쿨'의 양종훈 교수 역을 연기한 배우 김명민. 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 '연기 본좌'라는 수식어를 오래 전부터 갖고 있다. 이 수식어가 마음에 드는지, 아니면 혹시 탐나는 다른 수식어가 있을까

- 그 말 안해주셨으면 좋겠다. (웃음) 그냥 '배우' 김명민이 제일 좋은 것 같다. 이미 그 말에 많은 의미가 포함돼 있다. '배우'라는 말이 제게 주는 의미는 굉장히 크다. 처음 제가 연극을 할 때 교수님이 첫 강의에 써주신 '배우'라는 의미가 기억에 남는다. 배우의 '배(俳)'는 사람 인(人)에 아닐 비(非)를 붙였다.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컵 역할을 하면 컵처럼, 고양이 역할을 하면 고양이처럼 움직여야 한다. 내 이름 앞에 '배우'라는 말이 붙는 것 자체가 내 할 몫을 다한 영광스러운 호칭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진정한 '배우'가 되고 싶은 사람이다.

▷ 현실적이고 진정성 있는 작품이라 '로스쿨'에 더 애착이 많았던 것 같다. 그래도 시청자들은 요즘 유행하는 장르물 속 김명민의 모습을 보고 싶어할 수도 있지 않을까

- 사회적 악재 속에 장르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콘텐츠 트렌드가 5~6년 더 빨라진 것 같다. 그 안에서도 저는 '로스쿨'처럼 정통성과 진정성을 추구하는 드라마가 간절하다. 이왕이면 이런 작품들이 많이 제작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미 장르물이나 여타 자극적인 드라마들은 많지 않나. 나도 시류를 거스를 수는 없기 때문에 그런 장르물 또한 받아서 보고 있고, 도전을 해 볼 생각이다. 또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매력이 있다고 하더라. 어쨌든 '로스쿨' 같은 드라마는 계속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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