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부터 가상화폐 투자를 해온 이모(39) 씨는 최근 비트코인 시장에서 엑시트(자금 회수) 한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거래소들이 연이어 '잡코인'(부실 코인) 청소에 나서 투자자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게 됐기 때문이다.
업비트가 지난 11일 돌연 5개 코인의 원화 거래를 정지하고 25개 코인을 투자 유의 종목으로 정한 데 이어 코인빗도 지난 15일 한밤중에 기습적으로 코인 8종을 상장 폐지하고 28종을 유의 종목으로 지정했다.
문제는 거래소들이 기습적으로 상장 폐지를 결정하면서 개인 투자자들이 직격타를 맞는다는 것이다.
이 씨는 "상장 폐지나 유의 종목이라고 뜨는 순간 폭락해 투자자들만 피해를 본다"며 "결과적으로 거래소는 개인 투자자들이 코인을 팔면서 또 한 번 거래세로 수수료를 벌어들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거래소가 코인 상장과 상장폐지를 결정하는 절차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전에도 국내 4대 거래소에 상장된 가상화폐는 한 곳당 평균 140개로, 50개 안팎인 미국이나 유럽 등에 비해 과도하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권모(27) 씨는 "2017년에는 빗썸 가상화폐 종류가 애플리케이션(앱)상으로 2페이지를 넘지 않았는데, 지금은 어떤 가치가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코인이 많아졌다"며 "거래소는 이득만 보고 책임은 전혀 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투자한 코인이 언제 유의 종목으로 지정될지, 상장 폐지될지 몰라 불안하다"고 덧붙였다.
손모(25) 씨는 "내부 결정을 통해 상장한 코인에 대해 이제 와서 이 같은 조치를 하는 건 거래소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거래소 측이 유의 종목 지정 사유를 공지했지만, 사실상 명확한 기준이 없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업비트는 유의 종목 지정 사유로 '△팀 역량 및 사업 △정보 공개 및 커뮤니케이션 △기술 역량 △글로벌 유동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내부 기준에 미달해 투자자 보호를 위한 조치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했다'며 구체성이 결여된 모호한 입장만 밝혔다.
홍익대 경영학과 홍기훈 교수는 "소비자들에게 미리 정보를 공유하지 않아 신의성실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짚었다. 이어 "기습적인 상장 폐지는 다수의 피해자만 양산해 오히려 역효과를 낼 확률이 높다"며 "금융당국이 원하는 건 소비자 보호인데 정확히 역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대 경제학과 김소영 교수도 "상장을 폐지하는 경우, 보다 명확한 기준을 공지할 필요가 있다"며 "관련 정책이 더 일찍, 점진적으로 시행됐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안 하다가 갑자기 이뤄져 속도 면에서 아쉽다"고 말했다.
거래소들은 오는 9월 24일까지 사업자 신고를 해야 하는데, 상장된 코인 종류가 많으면 위험 요소로 작용해 거래 코인 수를 계속 줄여나갈 것으로 보인다. 혼란이 예상되지만, 당국은 미온적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금감원 등 금융당국은 거래소들로부터 폐지되거나 유의 종목으로 지정된 가상화폐 목록을 보고받는 한편, 현장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지만 이번 사태에 대한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동국대 블록체인연구센터 박성준 교수는 "중간 과정에 대한 정보, 암호화폐 거래소 신고 수리의 기준 등을 투명하게 공개해 투자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