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상규는 지난 1일 국립정동극장에서 개막한 1인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에 출연하고 있다.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교통사고로 뇌사한 19살 청년 '시몽 랭브루'의 심장이 50대 여성의 몸에 이식되는 24시간을 추적한다. 손상규는 해설자를 비롯 시몽의 가족, 죽음을 선고하는 의사, 장기이식 코디네이터, 장기이식 수혜자 등 극에 등장하는 16가지 캐릭터를 혼자 연기한다.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프랑스 작가 마일리스 드 케랑갈의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에마뉘엘 노블레가 각색해 2015년 프랑스에서 초연했다. 국내에서는 2019년 12월 초연 이후 1년 6개월 만의 재공연이다. 배우 손상규와 윤나무, 연출가 민새롬 등 초연 멤버가 거의 그대로 참여한다. 손상규는 "원작이 너무 좋아서 출연을 결정했다. 각 캐릭터의 삶을 존중하고 치우치지 않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며 "초연 때 놓쳤던 캐릭터의 내면을 좀 더 세심하게 들여다 볼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이 작품은 삶과 죽음을 다룬다. 심장 이식을 통해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사라지는 모습을 정교하게 그린다. 2020년 발생한 팬데믹으로 '죽음'이라는 단어가 멀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손상규에겐 팬데믹이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평소에도 삶과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편이에요. 가까운 사람들의 부음을 접할 때면 인간의 유한성을 체감하죠. 제가 무대에 서고 관객이 극장에 찾아오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어요."
관객은 배우의 에너지로 무대를 채우는 이 작품을 보면서 울컥하는 순간을 자주 경험한다. 의사가 시몽의 부모에게 '아들이 뇌사했으니 장기 이식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이야기할 때, '이식을 하더라도 눈은 안 된다'고 시몽의 아버지가 소리칠 때, '심장 공여자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넬 수 없으니 자신이 특권을 받았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수혜자가 말할 때 등이다.
작품은 조명과 배우의 손짓만으로 의사가 심장을 이식하는 모습을 섬세하게 재현한다. 손상규는 "공연이 끝나고 나면 진짜 수술을 마친 기분이 든다. '24시간을 잘 살아냈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고 했다.
손상규는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에 참여하면서 스스로 위로를 많이 받는다고 했다. 그는 "죽음이 갑자기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꼭 뭔가를 이루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덜어주는 것 같다"며 "관객들도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이 작품을 보면서 삶의 관점을 넓힐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손상규는 '양손프로젝트'를 통해 소설을 무대로 옮기는 작업을 주로 해왔다. 창작과 연기를 겸한다. 다자이 오사무, 현진건, 김동인, 모파상 등이 쓴 단편소설은 물론 최근에는 헤르만 헤세의 장편소설 '데미안'을 1인극으로 만들었다. 그는 "나를 움직이는 건 텍스트다. 텍스트에 있는 인물·상황과 상호작용하면서 자극을 받고 그것이 에너지로 작동한다"며 "텍스트를 무대 언어로 바꾸다 보면 '이거였구나' 깨달음의 순간이 있다. 그때 가장 희열을 느낀다"고 했다.
앞으로 계획을 물었다. "9월말에 예술의전당에서 양손프로젝트 공연이 올라가요. 앞서 했던 단편선들을 모아서 보여줄 예정이에요. 가장 해보고 싶은 작품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벌'이죠. 라스콜리니코프가 전당포에 들어가서 노파를 살해하고 나오는 장면까지만요. 그 곳의 공기가 너무 궁금하거든요."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하는 심장뛰는 소리, 파도치는 소리처럼 손상규의 열정도 살아 숨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