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량감축만 강요하는 사회적 합의, 택배노동자 생계 위협"

과로사대책위, 11일 회견…"국토부, 수수료 보전책은 제외"
"근로시간 고려하면 최저임금 수준…물량감소분 보전돼야"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가 11일 서울 서대문구 서비스연맹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차 사회적 합의안을 규탄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가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감소분을 보전하는 대책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민정 수습기자
2차 '사회적 합의'가 결렬된 이후 무기한 파업에 돌입한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이 "정부가 임금감소에 대한 고려 없이 물량감축만 대책 없이 강요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대책위)는 11일 서울 서대문구 서비스연맹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8일 사회적 합의기구 최종회의에서 국토교통부(국토부)는 임금감소분에 대한 수수료보전 대책을 제외하고 물량 감축을 통한 노동시간 단축만을 담은 사회적 합의 초안을 제출했고 지금까지도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며 "이는 기존 논의를 송두리째 뒤집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책위는 국토부의 연구용역을 통해 택배노동자의 '적정 노동시간'을 산출하고 현재의 장시간 노동을 단축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당초 사회적 합의의 기본 방향임을 강조했다. 이들은 "사회적 합의기구 출범 당시 이를 위해 분류작업의 '택배사 책임'과 더불어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물량감축, 그로 인한 임금감소분을 수수료 인상으로 보전하는 방식, 소위 '적정물량·적정수수료'가 의제로 선정돼 합의 수준에서 논의돼 왔다"고 설명했다.


택배노조 진경호 위원장은 "방금 국토부의 2차 사회적 합의 초안을 전달받았는데 한마디로 '택배사들의 입장을 대거 반영'했다. 1차 합의의 기본정신을 누락·훼손한 내용으로 가득차 있다"며 "본래 사회적 합의 자체가 법적 구속력이 없는데 2차 합의문에는 '노력해야 한다'고 표현함으로써 사실상 지키든, 지키지 않든 무력화하는 상황을 초래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 60시간과 관련해서도 명절기간 주문이 폭주해 초과노동은 불가피하다고 인정했고, (노동시간의) 상한선을 규정하지 않아 설과 명절에 과로사를 조장하는 내용"이라며 "지난해 추석 전후로 택배노동자 7명이 생명을 잃었는데 추석, 명절에 상한을 정하지 않은 것은 무제한 장시간 노동을 허용한 것으로 '더 일하고 죽어도 된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택배노조는 특히 정부가 향후 근로시간으로 권고한 '주 60시간'을 넘어 일하는 택배노동자들에 대해 물량·구역 조정을 시행한다는 조항을 문제 삼았다. 진 위원장은 "일부 언론에서 택배노조가 수수료 인상을 요구해 합의가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도됐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며 "노동시간 단축방안과 물량을 축소해 배송시간을 줄이는 방향 둘 다 논의됐다"고 짚었다.

이어 "택배기사의 수익이 감소할 우려가 있기에 총 수익을 보장하는 수준에서 원칙적 합의가 이뤄져왔다는 거다. 구조적으로 29년간 택배노동자들의 건당 수수료는 지속적으로 하락해왔다"고 부연했다. 연구용역을 수행한 국토부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택배노동자의 월평균 매출액은 502만원으로 파악됐다. 이 금액에서 △부가세 10% △대리점 관리비 13~15% △보험료 등 차량관리비 △송장·테이프·식대 등 기본경비를 제하면 35% 정도가 빠져나간다는 게 노조 측 설명이다.

11일 기자회견에서 택배노동자의 수수료 지급내역을 들어보이고 있는 택배노조 진경호 위원장. 임민정 수습기자
진 위원장은 "현재 기사들의 배송 수수료는 750원인데 밥값을 제외하고 평균 30~35%가 (빠져)나가 (실제로는) 건당 500원 남짓한 수준"이라며 "월 300~350만원이 택배기사가 가져가는 실소득액이다. 70여시간을 일해 이만큼 가져가는 건 최저임금 수준에 딱 걸쳐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월평균 502만원의 매출을 내기 위해서는 1일 260개 이상, 한달 기준 6600개 이상의 택배물품을 날라야 한다고도 설명했다. '주 6일'을 일하는 택배노동자들이 일평균 10시간(물품인계 3시간·배송 5.5시간·집하 1.5시간)을 일한다고 상정하면 배송전담 노동자들은 약 10%의 임금감소가 발생한다는 게 노조 측 계산이다. 민간 택배사 기준으로 시간당 30~40개의 물량을 배송한다는 전제 아래서다.

대책위는 "택배사들은 택배요금을 인상해 과로사 대책에 필요한 모든 재원을 보장받고 막대한 이익을 누리고 있는데 택배노동자들은 물량만 그대로 줄이라고 하는 것은 제대로 된 과로사 대책이라 할 수 없다"며 "합의안 이행시기도 미정인 상황인데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강제로 물량과 구역을 줄이겠다는 것이 과연 과로사를 해결하겠단 합의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택배노조는 정부가 물량감소분에 대한 수수료보전 대책을 합의안에 포함시키지 않을 경우 당장 다음 주부터 파업 수위를 더 높이겠다고 경고했다.

진 위원장은 "(현재 진행 중인) '9시 출근, 11시 배송출발' 투쟁지침을 우체국 대상으로 넓히고 특단의 대책을 논의해 밝힐 것"이라며 "노조법에 따라 허용되는 대체배송 인력을 제외한 불법 대체배송을 철저히 통제하고 쟁의권이 없는 지회에서는 규격위반, 계약요금 위반, 중량부피 초과 등 배송의무가 없는 물품을 일체 배송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또한 "다음 주 특정일을 기해 6500명의 조합원들이 서울 상경투쟁을 할 것"이라며 "청와대와 여의도 우정사업본부를 잇는 차량시위도 포함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택배노조 김태완 수석부위원장 역시 "과로사에 책임이 있는 택배사가 '코로나 특수' 영업이익과 원가 상승분을 그대로 가져간다면 사회적 합의 초안은 재벌 특혜 합의안이 되는 것"이라며 "국민 여러분께 파업으로 불편을 드려 송구하다. 전근대적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고통이라 이해해주시길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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