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
①한강 대학생 사건, 경찰 향한 '불신' 어디서 왔나" ②타진요부터 반진사까지…"내가 틀릴 리 없어" ③'손정민 사건' 가짜뉴스로 돈 쓸어 담는 유튜버들, '몰수' 가능할까 ④"숨기는 자가 범인?"…'손정민 사건'에서 본 음모론 현상 (끝) |
"상식적으로 친구랑 같이 술을 먹고 잠들었는데, 자고 일어나 친구가 없다고 집에 간다?", "상식적으로 아들 친구가 술 먹고 잠이 들었다는데, 새벽에 부모가 다 같이 달려간다?", "상식적으로 친구가 실종됐는데, 최면 수사에 변호사를 대동한다?", "상식적으로 친구가 실종됐는데 다음 날 티셔츠와 신발을 버린다?", "상식적으로…."
'상식'. 서울 한강공원에서 술을 마신 뒤 실종됐다가 숨진 채 발견된 대학생 손정민(22)씨 사건을 두고 '진실'과 함께 많이 언급되는 단어 중 하나다. 사건 초기 친구 A씨와 그 가족이 보인 약간의 의문스러운 행동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뒤바뀐 휴대전화, 늦은 실종신고, A씨의 변호인 선임 등 '상식' 선에서 이해하기 힘든 지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처음 상식 수준의 의혹제기는 주로 유족에 의해 이뤄졌다. 손정민씨 아버지 손현씨는 본인의 블로그나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아들의 사망 경위에 얽힌 여러 의문스러운 점을 밝혀달라고 촉구했다. 손씨가 평소 물을 무서워하는데 입수한 경위가 어떻게 되는지, 마지막까지 함께 있던 A씨 가족의 행동이 부자연스러운데 왜 그랬는지 등이다.
이 같은 의혹제기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으면서 폭발력을 가졌다. 손씨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글이 공개가 되기도 전에 답변 요건을 훌쩍 넘어 40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았다. 결국 경찰의 대대적인 수사로까지 이어졌다.
경찰은 이례적으로 강력 7개 팀을 전원 투입하고, A씨와 가족을 수차례 불러 조사했으며, 가택 수색까지 진행했다. 참고인 신분을 대상으로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모든 수사를 진행했다. 그럼에도 의혹이 풀리지 않자 경찰은 중간 수사 결과까지 발표하면서 공개적으로 목격자 등 제보를 받았다.
그렇게 사건 발생 후 한 달 넘게 수사가 진행됐지만, 손씨 사망과 관련한 '범죄 혐의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친구 A씨 측이 오랜 침묵을 깨고 두 차례 입장을 밝혔고, 여러 의문스러운 행동들에 대해서 조목조목 해명했다. 다만 A씨는 당일 '블랙아웃'이 됐다며 사건의 본질인 '손씨의 사망 경위' 또는 '입수 경위'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는 입장이었다.
대표적으로 'A씨의 가족 중에 이재훈 전 강남서장이나 최종혁 서울청 수사과장, 법무부 이용구 차관이 있다'는 이야기다. 당사자가 직접 해명하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또 '사건 당일 경찰차 6대가 현장에 와서 사건 조작에 동참했다'는 등의 음모론도 만들어졌다.
이외에도 손씨의 대학 동기 중 장하연 서울청장의 아들 장첸이라는 인물이 있는데, 손씨가 장씨의 마약 사건에 대해 폭로하려고 하자 A씨에게 사주해 살해했다는 식의 음모론도 퍼졌다. 경찰의 낚시꾼 매수설, CCTV·목격자 조작설 등은 물론 손씨의 아버지 손현씨가 오랫동안 반정부적인 주장을 해와, 이에 대한 반감으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는 음모론도 있다.
왜 유독 손씨 사건에서 음모론이 이렇게 횡행했을까.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20대 청년'과 '한강'에 주목했다. '내 일 또는 내 가족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곽 교수는 "젊은 청년이 실종되고 5일 동안 찾을 수 없었던 안타까운 사건이어서 사람들이 부모 입장에서 공감을 하며 안타깝게 생각했기 때문에 관심이 많았다고 본다"면서 "'한강에서 범죄가 생길 수도 있겠구나'라는 우려도 작용했다"고 말했다.
이어 "심리학자들은 인간이 과학자 같다고 이야기한다. 어떤 일이 있을 때 자연스럽게 그 원인을 찾게 되는데, 이때 경찰이 명확하게 그 원인을 밝혀주지 않으면 '뭔가 있는 것 같다', '뭔가 숨기는 것 같다'는 식으로 흘러가 소문을 퍼트리고 가짜뉴스를 만들고 음모론을 만든다"며 "인간은 원인을 찾으려고 하는 욕구가 있고, 그걸 빨리 끝내려는 '종결 욕구'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사회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었다. 단국대 심리학과 임명호 교수는 "음모론이 만들어지기 위한 사회적 환경이 충분히 갖춰졌다고 본다"며 "코로나 사태 등 재난의 책임은 국가나 정부가 갖고 있는데, 극복이 늦어지면서 정부에 대한 불신이 높아졌다. 이 때문에 국민들이 '사회가 안전하지 않다, 불안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불신감이 커져 있으니까 국민들이 볼때는 더 큰 단위의 국가나 정부가 어떤 음모를 꾸미고 있을 것이라고 의심하게 되는 것"이라며 "사회적·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재난이 너무 오래 지속되다 보니까 가짜뉴스에 쉽게 휘둘리고 동조하는 의존 심리가 생기게 된다. 이같은 '동조심리'는 불안할 때 더욱 생긴다"고 분석했다.
'숨기는 자가 범인', '냄새가 난다'는 등의 언어가 언론 등을 통해 대중들에게 자주 소비되는 점도 음모론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왔다. 건국대 경찰학과 이웅혁 교수는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회가 이른바 '공작적 접근' 또는 '음모론적 시각'을 지양하기 보다는 환영하는 사회로 바뀐 면이 있다"며 "확인된 사실이 아닌데 일단 다 환호를 한다. 그것과 손씨 사건은 똑같은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어 "사실에 입각하기보다는 공작적 접근을 환영하는 사회 분위기가 있다. 게다가 최근 큰 사건들에 대해 공정하고 올곧게 하지 않는 것들을 봐왔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에 사람들이 관심을 지속적으로 갖는 것"이라며 "공작에 환호하고 공공기관을 불신하는 사회 풍조가 이 사건에 딱 맞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온라인 상의 정보를 많이 취합할 수 있다. 아마추어 이면서도 동시에 프로에 육박할 수 있을 정도의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며 "이들의 주장은 공신력을 인정 받지는 못하지만, 나름대로 온라인 디지털 시대에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해석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이어 "문제는 다양한 해석 때문에 '선의의 피해'를 당하는 사람이 있다. 개인 입장에서 보면 여러 거짓 정보 등에 대해서 법적으로 방어 수단을 취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탈근대 사회에서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경찰과 검찰이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수사로 사람들을 설득한다면 자연스럽게 음모론적 해석은 쇠락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대 사회학과 서이종 교수 또한 "우리나라에서 인터넷은 일반 시민과 소수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했다. 민주적 가치와 저항을 보여주는 가치 있는 행위라는 생각이 강하게 있다"며 "이 속에는 기성언론과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손씨 사건에서도 '경찰 수사가 왜 안 됐지' 하며 합리적 의심을 갖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의심도 억압·처벌하려고 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음모론 사회'를 해결하는 대책도 다양하게 제시됐다. 임 교수는 "음모론을 퍼트리는 사람을 처벌하는 것보다는 사회가 안전하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정부가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등의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며 "이들을 배제하지 말고 전문가나 다른 시민들이 해당 공론장에 참여해서 '잘못된 의견이다', '억측이다' 등의 이야기를 꾸준히 해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해당 집단에서 전문가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제3의 인물을 활용하는 방안도 있다. 미국 정치심리학자 브렌던 나이한은 허위 주장과의 연결고리를 단절시키기 위해 '중재자'를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의 경우 음모론이 유튜브 등을 중심으로 퍼지는 만큼 유명 유튜버가 '음모론은 배제하자'는 식으로 설득하는 것을 꼽을 수 있다.
경찰이 매일 사건 내용을 공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의견도 있다. 곽 교수는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검찰이 아침 저녁으로 수사 내용을 브리핑했는데, 그때는 음모론이 별로 없었다"며 "이번 코로나19도 매일 브리핑하면서 질문을 다 받고 그러다보니 국민에 신뢰감을 줬다"고 설명했다.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심석태 교수는 "음모론이 통한다는 것은 규범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규범이란 '사실을 존중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적대국과 축구를 하더라도 '우리가 이길 때까지 한다' 이렇게 하지는 않지 않나. 모든 경기에는 항상 규칙과 심판이 있기 때문"이라며 "규칙을 어기면 심판이 벌을 주듯, 언론이 팩트를 정리해 주는 등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