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는 9일 서울 남대문경찰서장에게 1인 시위를 최대한 보장할 수 있도록 관련업무 담당 경찰들을 대상으로 직무교육을 실시할 것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앞서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소속인 진정인 A씨는 지난 2019년 10월 25~27일 방위비 분담금 인상에 반대하는 취지로 릴레이 1인 시위를 하기 위해 중구 정동 미국 대사관저를 찾았다. A씨는 당시 경찰이 이를 '미신고 불법집회'로 제지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했다고 진정을 제기했다.
A씨 근처에 있던 동석자들이 이같은 제지장면을 촬영하자 경찰이 '영상을 지우지 않으면 개인적으로라도 고소하겠다'고 협박했다며 영장 없이 반강제적으로 카메라도 압수하려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당시 대진연은 소속 회원 중 4명이 미 대사관저 담을 넘어 마당에 진입한 혐의로 구속된 상태였다. 이들은 '미국 지원금 5배 증액 요구하는 해리스는 이 땅을 떠나라' 등이 적힌 플랜카드를 들고 방위비 분담금 인상에 반대한다는 주장을 폈다.
경찰은 조사과정에서 "주변에 3명이 동행하고 있어 순수한 1인 시위로 보기 어려웠고, (해당사건) 불과 얼마 전 미 대사관저 월담사건 이후 미 국무부 등이 강한 우려를 표명하며 한국정부에 미 대사관에 대한 보호능력을 강화해달라고 촉구하기도 했다"고 해명했다.
또 '경찰관직무집행법'에 따라 범죄의 예방·제지를 위해 이들이 대사관저 정문으로 이동하는 것을 막았을 뿐이라고도 했다. 경찰은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을 들어 시위자들에게 '미 대사관저에 대한 어떠한 침입이나 손해에 대해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다'는 점도 밝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경찰은 이들을 관저 경계지점 울타리 2m 이내인 정동 분수대 방면 인도로 안내한 것으로 나타났다.
A씨 등이 주장한 카메라 압수시도에 대해선 지나가던 행인과 공무집행 중인 경찰관들을 촬영하고 있어 "초상권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며 촬영본을 비난 및 조롱 목적으로 유포할 경우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알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이들이 영상을 지웠다고 주장했지만, 고스란히 소속단체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업로드됐다고 덧붙였다.
인권위는 "일반적으로 1인 시위는 본질적으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에 규정하는 다수인이 참여하는 집회나 시위 개념에 들지 않아 그동안 표현의 자유로서 광범위하게 인정돼왔다"며 "그러나 장시간 그 의사를 피력하기 위해 여러 사람이 릴레이 형식으로 진행하기도 하고, 정보기술 발달에 따라 협조자가 사진 및 영상으로 촬영해 SNS에 올리는 등 개념과 범위에 대해 논란이 되고 있다"고 짚었다.
인권위는 "1인 시위자 옆에 다수인이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시간대에 시위현장에 머물렀더라도 그것이 시위자의 조력함에 불과하고 다중의 위력 또는 기세를 보이는 것에는 미치지 않는다면 집시법상 집회로 보기는 어렵다"며 "만일 단순히 2인 이상이 동일시간 동일장소에 있단 이유로 집시법상 집회로 간주한다면 집시법 적용을 피해 표현의 자유를 행사해온 시민의 자유는 본질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사건 당시 동영상 자료 등을 토대로 대진연 등의 시위 역시 집시법 상 집회로 보기는 어렵다고 봤다. 경찰이 이동요청 방송을 한 것을 두고 "피진정인들이 월담 사건 이후 1인 시위 여하를 불문하고 대사관저 근처에서 모든 종류의 시위를 전면 금지하려는 의도를 말해주는 것으로 적법한 공무수행이라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경찰의 대사관저 엄호가 국민의 권리 제한으로 이어져선 안 된다는 점도 지적했다.
인권위는 "비엔나 협약은 공관지역을 보호하고 공관의 안녕과 품위를 유지하기 위한 개괄적이고 일반적인 의무를 의미하는 것으로 공관지역에서의 1인 시위를 금지하는 등 헌법 상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근거로 보아선 안 된다"며 "미 대사관 측에서 각별한 경호를 요청했다는 부분 역시 이러한 개괄적이고 일반적인 공관 보호의무 강화를 요청한 것으로 볼 것이지, 공관 앞 1인 시위까지 전면 금지해달라는 요청으로 해석할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사건 1인 시위가 사실상 집회에 해당했다면, 정동 분수대 근처에서의 1인 시위도 집시법을 적용해 무신고 집회로 단속이 가능했을 것"이라며 "피진정인들이 그와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이 사건 단속이 오로지 피해자들의 1인 시위를 막기 위한 것으로 이해하기 부족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당시 1인 시위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피켓 내용이 '미국 방위비 분담금 인상'에 대한 항의성 내용으로 한미 상황에 대한 비판적 의사를 시민으로서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았던 점 △1인 시위 장소가 일반인에게 출입이 허용된 곳으로 교통방해나 불편을 주는 장소가 아니었던 점 △고성과 집단행동으로 타인의 업무를 방해하거나 공공의 안녕과 질서에 반하는 구체적 위법행위가 발생한 상황도 아니었던 점 등도 지적했다.
인권위는 "범죄행위가 목전에 행해지려 하고 있다 인정될 만한 상황 등 행정상 즉시강제의 대상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피해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며 "유사사례 재발을 막기 위해 피진정인들뿐 아니라 미 대사관저 경비업무를 수행하며 집회시위 등에 관한 질서유지를 수행하는 경비과 소속 직원 모두를 대상으로 각별한 주의를 촉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