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김양호 부장판사)는 7일 강제징용 노동자와 유족 80여명이 일본제철·닛산화학·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측의 소송을 각하한다며 패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법정에서는 "판결문이 길어 결론만 말씀드린다"며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의해서 바로 소멸되거나 포기됐다고는 할 수 없지만 소송으로 이를 행사할 수는 없다"고 판결 근거를 설명했다. 아울러 원고가 소송에서 졌다고 판결하며 소송 비용 또한, 원고 측이 부담하라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추후 배포한 설명자료에서 이 판결은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소수의견과 결론적으로 동일하다"고 밝혔다. 당시 대법 전합은 다른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일본제철(옛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다수 의견으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원심을 확정했다.
반면 권순일·조재연 대법관의 경우 당시 소수의견으로 "청구권협정에 따라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이 제한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전합 결정과 반대의견을 낸 바 있다.
이러한 판결에 대해 피해자 및 유족 측은 선고 직후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피해자들의 소송을 대리해 온 강길 변호사는 "자세한 내용은 판결문을 봐야 하지만 오늘 판결은 기존 대법원 판례에 정반대로 배치돼 매우 부당하다"며 "재판부가 양국 간 예민한 사안이라 다르게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강제징용 피해자의 유족인 임철호(86)씨는 "한국 판사와 한국 법원이 맞느냐. 참으로 통탄할 일이고 입을 열어 말을 할 수가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1심 선고기일이 당일 변경된 점에 대해서도 당사자들은 서울이 아닌 지역에 살고 있고 참석할 기회를 제대로 부여 받지 못했다는 취지로 항의했다.
이 소송은 일제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국내 법원의 소송 중 최대 규모로 알려졌다. 피해자와 유족을 합친 인원이 80명을 넘고 원고소가(재판 승소시 얻고자 하는 금액)은 86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지난 2015년 5월 사건이 법원에 접수된 후 일본 기업들이 소송에 응하지 않아 장기간 실질적인 심리는 진행되지 않았고 올해 3월에서야 재판부가 공시송달을 진행하며 재판 진행에 속도가 붙었다. 이와 함께 재판부가 선고기일을 지정하자 일본 기업들이 뒤늦게 변호사를 선임해 소송에 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