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이어 마트 배송기사도 '과로사'…'개인사업자' 맞나 논란

홈플러스 강서점 40대 배송노동자, 출근 준비 중 쓰러져 숨져
"지병 없어 과로사 추정…일 시킨 홈플러스가 책임져야"
홈플러스 "법적 책임은 없어…도의적 책임 따라 유족 지원 제안"
숨진 배송기사 계약서 '홈플러스 배차 지시 응하지 않으면 해고 가능'
"'개인사업자'라면서 기사 소유 차량 도색 등까지 감독"
중노위 "CJ대한통운, 하청노동자 단체교섭 책임 일부 있다" 결정 주목

한 택배 기사가 아파트 단지 앞에 택배상자를 내려놓고 있다. 자료사진
일하다가 스러지는 마트 배송 노동자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홈플러스 강서점 배송 노동자 최은호(48)씨가 출근을 준비하던 중 쓰러져 끝내 숨졌다. 그에 앞서 이마트의 새벽배송 노동자, 롯데마트 온라인몰 배송 노동자가 일하다가 죽음에 이르렀다.

유족들과 현장 노동자들은 이들의 죽음이 '과로사'라고 주장하지만, 원청인 대형마트 측은 이들과 직접 계약을 맺지 않았다며 법적 책임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원청의 주장대로 마트 배송기사들은 진정 '개인사업자'일까. 4일 CBS노컷뉴스가 마트 배송 노동자들의 계약서를 입수해 살펴봤다.

◇ 숨진 배송기사 계약서에는 "마트 배차지시 거부하면 해고 가능"

고 최은호씨는 지난 2019년 3월부터 홈플러스 강서점에서 배송 기사로 일해왔다. 최씨는 지난달 11일 출근 준비 중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뇌사 상태에 빠졌고 2주 만인 25일 숨졌다.

마트 배송 노동자들은 마트의 위탁업체인 운송사와 명목상 '개인사업자'로 계약한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되지만, 현장에서는 사실상 마트의 지휘·감독을 받는다고 한다. 이들은 매일 1·2·3차수에 걸쳐 물품을 배송한다. 배송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7시로, 기사들은 보통 오전 9시~9시 30분쯤 출근해 오후 8시 이후 퇴근한다. 코로나19로 배송 물량이 증가하면서 하루 평균 37~40가구를 방문한다.

지난 3월 홈플러스 측은 요일휴무제로 배송기사들의 근무 일정을 변경했다. 노조에 따르면 주중 배송 물량이 다소 줄어들고 주말 물량이 늘면서, 사측은 배송기사들 절반가량씩은 주말에 근무하고 평일에는 돌아가면서 쉬도록 했다. 현장 기사들은 "평일 배송차량이 20대에서 16대로 줄면서 노동강도가 더 세졌다"고 전했다.

4월 1일에는 배송권역이 조정되면서 "최씨가 일방적으로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 등 힘들고 생소한 지역을 맡게 됐다"는 게 유족과 노조 측의 설명이다. 최씨는 4월 15~23일에는 9일 연속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노조 측은 "어떤 사람은 이틀 쉬고 9일 일하고, 하루 쉬고 8일 일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고 했다.


CBS노컷뉴스는 최씨가 계약한 물류업체인 이편한물류(위탁자)와 홈플러스(화주사) 간의 계약서를 확보했다.

지난달 출근을 준비하던 중 쓰러져 숨진 홈플러스 강서점 배송기사 고(故) 최은호씨가 계약한 물류업체와 홈플러스 간의 계약서. '수탁자가 고의적으로 위탁자나 화주사의 배차 지시에 응하지 않아 위탁자의 업무를 방해하거나 지연시킨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노조 제공
전국택배노동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택배 노동자 처우 개선을 위한 법 제정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자료사진
계약서 6조(계약의 해지 사유)는 위탁자가 수탁자(배송기사)를 해고할 수 있는 사유로 '수탁자(배송기사)가 고의적으로 위탁자(이편한물류)나 화주사(홈플러스)의 배차 지시에 응하지 않음으로써 위탁자의 업무를 방해 또는 지연시켰을 경우'를 명시했다. 5조(차량관리 및 운영)에는 '수탁자가 위탁자와 운송계약을 체결한 화주사 및 위탁자의 관리직원의 정당한 업무 지시에 불응하거나, 개인 사유 등으로 (차량을) 운행하지 않아 발생한 위탁자의 모든 손해에 대해 전적으로 수탁자가 부담한다'고 돼 있다.

이에 대해 직장갑질119 최혜인 노무사는 "화주사가 배차를 지시한다는 것 자체가 업무 지시 등 일정한 지휘 감독을 한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라며 "기사는 화주사와는 계약상 관계가 없는데, 화주사 관리직원이 업무를 지시하고 지시에 불응한 경우 위탁자가 손해를 부담해야 한다는 내용 또한 지휘·감독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계약관계에 있는 운송사에 물류 서비스를 요청했고, 운송사 측에서 운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맞춰 제공한 것"이라며 "업계의 표준적인 계약서를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추가 배송 물량이 발생하는 기사들에게는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있다"며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은 아니지만, 도의적 차원에서 유족들이 안정적인 경제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회사 정규직 근무, 기사 치료비·장례비 전액 지원 등을 제안했다"고 했다.

◇ "마트 노동자 아닌데, 평가는 마트가?"

배송 기사에 대한 평가에도 사실상 마트 측이 관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언급한 계약서의 별첨자료를 보면, 배송기사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항목은 △복장·용모 상태: 홈플러스 기준 준수 여부 확인 △친절: 온·오프라인 고객의 소리 내용 △배송: 홈플러스 규정 준수 여부 확인 △SDS(Smart Delivery System 모바일 앱) 사용률: 사용률 실적에 따른 배점 △점포 업무 협조도 △배송차량 관리 상태 등이다. '위탁자' 평가를 원칙으로 하며, 점포 실장의 평가도 반영한다고 명시했다.

또 다른 물류업체 B가 지난해 홈플러스와 맺은 계약서의 '업무처리 기준표'를 보면, △출자 지연, 무단 조기·지연 배송 △불친절(태도 및 언행 불량) △용모 및 복장 규정, 운전 법규 미준수, 난폭 운전 시 '운송료 5% 삭감' 조치한다고 돼 있다. 3회 이상 적발 시에는 계약을 해지하도록 했다.

지난달 출근을 준비하던 중 쓰러져 숨진 홈플러스 강서점 배송기사 고(故) 최은호씨가 계약한 물류업체와 홈플러스 간의 계약서상 별첨 자료. '차량 도색 시안은 별도 통보된 시안으로 작성한다'고 돼 있다. '배송차량 배송기사 평가 및 시상' 부문에서는 △복장/용모상태 △친절 △배송 등을 평가 기준으로 명시했다. 노조 제공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 마련 촉구 유가족 공동 기자회견에서 한 택배 노동자의 유가족이 발언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실제 대형마트들은 고객센터 등 자사의 플랫폼을 통해 배송 기사의 친절도·배송 관련 평가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트산업노조 허영호 조직국장은 "다른 대형마트들의 계약서에도 이 같은 내용이 있다. 업계의 전반적인 문제"라며 "경고장을 받거나 계약이 해지된 사례가 있다"고 짚었다.

한 배송 기사는 "고객들이 생각하는 친절에 대한 기준이 따로 없이, 물건 파손, 배송 누락 등은 다 기사들 책임"이라며 "기사가 차량 내 적정 온도를 준수하는지도 운송사와 마트 측이 웹상으로 공유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배송 기사는 "대형마트 관리자들이 기사에게 직접 경고를 하기도 한다"고 했다.

'경제적 종속성'과 관련해서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마트 측이 배송 기사를 '개인사업자'로 보는 이유는 직접적인 계약관계가 없다는 것 외에도 배송차량 등이 기사 개인 소유라는 데 있다. 하지만 기사들은 차량 도색은 물론, 차량을 이용한 작업까지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했다.

최씨가 계약한 물류업체와 홈플러스 간 계약서에는 '차량 도색 시안은 별도 통보된 시안으로 작성한다', '홈플러스가 지정하는 안전운행 스티커 등의 부착물을 제외한 어떠한 부착물도 부착돼서는 안 된다'고 적혀 있다. 또 다른 물류업체와 홈플러스 사이 계약서에는 '위치정보가 5초 단위로 수집되며 배송이 끝나면 일괄적으로 회사에 제공된다'고 돼 있다.

최 노무사는 "홈플러스와 (배송기사 간에) 직접적인 교류관계가 어느 정도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기사의 차량인데 해당 마트 배송 일 이외 다른 일은 하지 말라고 계약 조건으로 박아놓은 것은 근로자성에 가깝다는 징표"라고 밝혔다.

◇ 산재 적용 No 필수노동자 No…'사각지대' 마트배송 노동자

대형마트 배송 노동자들은 산재 적용이 되지 않고 정부가 지정한 필수노동자에서도 빠져 있다. 택배기사들은 시행령 개정으로 다음 달부터 산재보험 가입이 의무화되지만, 마트 배송기사들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가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택배노조)이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은 CJ대한통운을 상대로 제기한 부당노동행위 구제 신청 사건에서 지난 2일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한 점이 하나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중노위는 지난해 9월 대형마트 온라인 배송기사들이 노조법상 노동자성이 있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중노위는 "배송기사는 노조법상 근로자에 해당하고, 사용자는 노조의 교섭 요구를 전체 사업장에 공고하라"고 밝혔다. 다만 사측이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2020년 10월 27일 택배 노동자들이 무기한 전국 총파업을 돌입하면서 서울 송파구 서울복합물류센터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자료사진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조 온라인배송지회 이수암 지회장은 "택배 노동자와 마트 배송 노동자는 배송하는 물량, 배송 방식만 다를 뿐 계약관계는 사실상 같은 구조"라며 "하나의 판례가 더 생긴 것이니, 마트 배송 노동자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정책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번 CJ대한통운 사건을 담당한 전국서비스산업노조 법률원 김종진 노무사는 "행정위원회의 결정이라 정부의 노동 정책 등 큰 흐름 속에 같이 있어 긍정적인 신호"라면서도 "특수형태근로 종사자의 산재 적용 등 문제는 정부가 별도로 지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마트 배송 노동자의 경우, 중간에 운송사가 껴 있어 (산재 적용 등을) 판단하는 기준이 더 엄격하다"고 했다.

한편 노조는 홈플러스에 유족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보상, 재발 방지 대책 등을 요구하고 있다. 아울러 고 최은호씨의 산재를 신청하는 한편, 산재보험 적용 대상에 마트 배송 노동자들이 포함되도록 실태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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