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재해석한 '말레피센트'에서 디즈니는 영화 안팎으로 기존 이야기와 상식을 파괴했다. 이후 디즈니가 과연 다음 빌런을 어떻게 새롭게 그려낼 지 기대감을 낳기에 충분했다. 이번 디즈니 라이브 액션 '크루엘라'는 그런 디즈니의 행보를 충실히 따라가면서도 더욱 더 매력적인 방식으로 크루엘라를 스크린에 살아 숨쉬게 했다.
사랑하는 엄마가 죽고 우여곡절 끝에 런던에 오게 된 에스텔라(엠마 스톤)는 운명처럼 재스퍼(조엘 프라이)와 호레이스(폴 월터 하우저)를 만난다. 에스텔라는 그들과 함께 뛰어난 패션 감각을 이용해 완벽한 변장과 빠른 손놀림으로 런던 거리를 싹쓸이한다.
그러나 에스텔라에게는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간직해 온 꿈이 있고, 재스퍼와 호레이스의 도움을 받아 꿈에 그리던 리버티 백화점에서 일하게 된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옷에는 손끝 하나 대보지 못하고 온종일 바닥 청소만 하는 신세다.
그러던 어느 날 인사불성인 상태로 쇼윈도를 마음대로 바꿔놓게 되고, 그런 에스텔라 앞에 런던 패션계를 꽉 쥐고 있는 남작 부인(엠마 톰슨)이 나타난다. 이를 기회로 패션을 향한 오랜 꿈을 실현하는가 싶지만, 남작 부인과 엄마의 죽음에 관한 비밀이 하나둘 풀리면서 에스텔라의 삶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뻗어 나간다.
그렇게 주인공 에스텔라(크루엘라)는 누군가를 괴롭히고 악행을 저지름으로써 만족감을 느끼는 전형적인 빌런의 모습에서 벗어난다. 디즈니는 앞서 '말레피센트'에서 빌런 캐릭터를 재해석하는 것은 물론 그 뒤에 숨겨진 사연을 재구성해 새롭고 매력적인 캐릭터로 재탄생시켰다. 이번에도 반은 검고 반은 하얀 머리를 가진 크루엘라에게 어떤 숨겨진 이야기가 있을지 그 상상력에서 출발해 관습과 틀을 뛰어넘는 '크루엘라'를 보여준다.
에스텔라이자 크루엘라는 양면적인 캐릭터다. 이름만큼이나 에스텔라와 크루엘라는 외형적으로도 다른 모습을 보인다. 영화는 이름도, 모습도 다른 '에스텔라'에서 '크루엘라'가 되는 과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그려나간다.
즉, 에스텔라가 크루엘라가 되는 과정은 진짜 자신을, 내면을 억압하는 에스텔라를 벗어 던지고 비유적으로 에스텔라를 죽임으로써 진정한 '자신', 다시 말해 '크루엘라'를 찾는 여정이다. 남들과 다른 건 그저 다른 것일 뿐 잘못된 게 아님을 말한다. 그렇게 '크루엘라'의 진짜 마법 같은 순간은 판타지 세계가 아닌 현실에 발붙인 크루엘라가 완전한 선도 악도 아닌 진정한 '자신'을 되찾는 순간이다.
흔히 우리가 '막장'이라 부르는 그리스 비극의 요소는 크루엘라라는 인물을 더욱 극적으로 만든다. 에스텔라에서 크루엘라가 되어가는 과정 그 사이사이를 메우는 이 굵직한 서사는 그의 행동에 납득 가능한 동기를 부여하며 크루엘라를 현실에 발 디디게 만든다. 동시에 크루엘라의 행동과 그 결과를 통해 상당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에스텔라와 크루엘라라는 내면의 두 자아를 연기하는 엠마 스톤의 눈빛과 감정, 발성 등은 관객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매력적인 캐릭터만큼이나 이를 연기한 엠마 스톤의 연기 역시 매력적이다. 그만큼 엠마 스톤이 빛날 수 있게 만드는 또 하나의 요인은 바로 상대역인 남작 부인 캐릭터의 엠마 톰슨이다. 냉혈하고 자신 밖에 모르는 인물을 매우 차갑게 잘 그려내며 두 엠마 사이의 연기 대결 자체가 긴장을 자아낸다.
카메라 역시 두 인물을 서로 다른 분위기와 색으로 그려내며 그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화면뿐 아니라 의상, 연기적으로도 두 엠마는 영화 내내 대조적인 위치를 갖는다. 그리고 확실한 건 '크루엘라'를 보면 두 엠마에게 다시금 빠져들 것이라는 점이다.
또 다른 주인공인 프로덕션은 공들인 티가 나고, 그만큼 눈을 즐겁게 한다. 내년 오스카 의상상은 예약해 놨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여러모로, 그리고 여러 의미로 보는 재미가 가득한 영화다.
133분 상영, 5월 26일 개봉, 쿠키 있음, 12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