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최규하 대통령 역시 미국 측으로부터 ‘무기력한(helpless) 대통령’으로 평가받는 등 정부 시스템이 소수의 신군부 세력에 속수무책으로 유린당한 사실이 재확인된 것이다.
미국 정부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비밀해제된 국무부 문서(14건, 53페이지 분량)를 최근 외교부에 전달한데 이어 2일 주한미국대사관 홈페이지를 통해 일반에 공개했다.
◇최규하 대통령은 '무기력한 대통령'…美대사관, 전두환 정권찬탈 과정 기록
공군 출신인 주영복 씨는 1979년 12.12 군사반란 이후 신군부에 의해 장관 자리에 앉혀졌고 전군 지휘관들의 전폭적인 지지 성명까지 받았지만 실상은 허수아비나 다름없음을 실토한 것이다.
그는 12.12 군사반란에 따른 더 이상의 상황 악화는 없을 것이고 군이 본연의 국가방위 임무로 복귀할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미 대사관은 신군부가 합법적 정부 권한을 무시하고 학생과 정치 영역 전반을 탄압하고 있는 반면, ‘무기력한’ 최규하 대통령과 그 내각은 신군부 결정을 재가하기에 급급하다고 평가했다.
당시 최광수 대통령 비서실장은 비상계엄 확대 결정이 대통령의 의지와는 관계없는 일임을 미국 측에 시사하기도 했다
이번 공개 자료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신군부의 12.12 군사반란에도 불구하고 전두환 씨가 실세임을 한동안 확신하지 못하다가 이듬해인 1980년 3월 무렵 전 씨를 군부 실권자로 인지했다.
미 국무부는 한국 사정이 불안정할 경우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를 연기할 수 있다는 점을 공식 채널 외에 전두환 씨에게도 전달해 압력을 행사하려 했고, 윌리엄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 미국대사는 그해 3월 5일 전 씨를 면담해 의중을 탐색하기도 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12.12 직후에도 전 씨를 만나 전모 파악에 나섰지만 당시는 정권까지 찬탈할 만큼의 야심이 잘 드러나지 않던 시점이었다.
미 국무부는 글라이스틴과 전 씨의 3월 5일 면담이 자칫 미국이 전두환 신군부를 지지하는 신호로 오해받을 가능성을 우려하며 전 씨와의 접촉에 신중하라는 지침을 하달했다.
이런 사실은 미국이 10.26과 12.12 사태를 거쳐 이듬해 5.18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서 신군부의 동향에 그리 밝지 않았고, 처음부터 전 씨를 지지하는 입장도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글라이스틴 대사가 5.18 이후인 1980년 5월 23일 한국 국회의원 등과의 오찬에서 신군부의 극단적 행동을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학생과 야당세력에도 극단적 행동을 자제해야 한다고 밝힌 대목에서도 드러난다.
◇발포 책임 등 규명할 美국방부 문서는 미공개…바이든 정부의 전향적 결정 기대
한편 미국 측은 지난해에도 국무부의 관련 비밀해제 문서 43건, 143페이지 분량을 공개했고 이번에 추가로 공개했다.
다만 5.18 관련 단체와 연구자 등이 더욱 관심을 두는 미 국방부 문서는 아직도 미공개 상태다. 이들 문서에는 5.18 발포 책임과 진압군 투입 승인 등 진상 규명에 핵심적 내용들이 포함돼있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