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콘 없는 방'으로 2016년 제6회 벽산희곡상을 수상한 고영범 작가의 신작이다. 작가의 자전적 내용이 바탕이 된 이 작품은 유년 시절의 기억을 소환해 자신의 현재를 규명하는 독특한 글쓰기다. 이를 통해 작가는 우리가 잊고 싶은 기억, 잊어버린 기억을 무대 위로 소환해 관객과 만나게 한다.
50대 후반의 '진영'은 아버지로 인한 피해의식과 동생 '진수'로 인한 죄의식에 둘러싸여 자신을 제대로 된 인간으로 평가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20대 후반 조카 '도연'을 통해 어둡고 아픈 자신의 기억을 마주본다.
연출은 이성열(극단 백수광부 상임연출)이 맡았다. 고 작가와는 '에어콘 없는 방'과 '오레스테스'를 함께 작업했다. 국립극단 예술감독(2018~2020) 재임 당시 '오슬로', '화전가' 등을 섬세하게 연출해 호평받았다. 이성열 연출은 "주인공 '진영'의 어둡고 가려진 기억의 방을 거닐며 개인의 기억을 넘어 한 시대를 되짚어보려 한다"고 전했다.
박완규가 '진영'을 연기한다. 진영은 과거와 현재, 서교동과 화곡동을 누비며 이야기를 이끈다. 최근 '파우스트 엔딩', '왕서개 이야기' 등에서 강렬한 연기를 선보였다. '붉은 낙엽'으로 제42회 서울연극제 연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고 작가는 "한국 사회의 386세대는 스스로를 반성적으로 들여다보는 데 실패하고 있고, 이건 이 이야기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며 "진영은 이 시대의 가장 약한 고리인 20대 미혼 여성 도연을 통해 전 시대를 들여다보는데, 이것이 이 작품의 희망이라면 희망"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