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후배 성폭행' 변호사, 피해자 더 있다"

A변호사, 후배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수사 받다가 극단적 선택
이은의 변호사, 31일 기자회견 진행
피해자 "가해자 고소는 마지막 몸부림…수사기관·사법부에서 확인하고 싶었다"
"추가 피해자들 최소 2명 이상 존재…2차가해 이어져"
"'공소권 없음' 처분과 별개로 수사결과 공개하고, 변협은 피해자 보호해야"

스마트이미지 제공
같은 로펌에 근무한 후배 변호사를 상대로 상습적으로 성폭력을 가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변호사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은 이들이 더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 측은 "피의자 사망으로 수사를 중단하는 관행은 없어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피해자의 변호인인 이은의 변호사는 31일 오전 11시 자신의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사건에는 열악한 지위에서 가해자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은 추가 피해자들이 최소한 2명 이상 존재한다"며 "검찰과 경찰은 '공소권 없음' 처분되는 것과 별개로 수사 결과를 공개하고, 대한변협 등 법조계는 피해자 보호 조치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피해자 입장문 발표…"가해자, 죽음으로 지금도 위력 행사"

로펌 미투 사건 피해자의 법률대리인인 이은의 변호사가 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자의 입장 등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조계와 경찰 등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초 같은 로펌에 근무한 후배 변호사 B씨를 여러 차례 성폭행하고 추행한 혐의(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등)로 경찰 수사를 받아왔다. B씨는 A씨가 상사의 지위를 이용해 성폭력을 가했다며 지난해 12월 16일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검찰은 같은 달 22일 서울 서초경찰서에 사건을 배당했다. A씨는 지난 26일 돌연 극단적인 선택을 해 숨졌다.

경찰은 당초 A씨에 대해 기소의견을 달아 검찰에 송치할 계획이었지만, A씨의 사망으로 수사 결과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피해자는 이날 이은의 변호사가 대독한 입장문을 통해 "가해자 고소는 자기 혐오에서 저를 살리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수사기관과 사법부에서 나를 혐오할 필요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성범죄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자신의 죄를 숨기는 행동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2020년 12월 최초로 고소하고 경찰에 성폭력 순간들을 벗어나지 못한 이유들을 모두 소명했지만, 검찰 송치만을 앞두고 있던 때 가해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며 "가해자는 죽음으로 지금도 저에게 위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했다.

피해자에 따르면 A씨의 성폭력은 지난해 3월부터 6월까지 수차례 이어졌다. 피해자가 A씨에게 퇴직 의사를 통지했으나, A씨는 사과, 변명 등을 하며 퇴사를 만류했다. "나쁜 쪽으로 꼬드기는 게 아니고 본인(피해자)이 남는다면 연봉 인상도 바로 할 생각이었다"며 연봉 인상을 제의하기도 했다. 피해자는 A씨의 이 같은 요구를 거절했다.

A씨는 피해자에게 "회사 내에서 공개적으로 사과할까, 이건 본인이 이야기해야 하는 부분이고 그 생각도 했다. 사실 막말로 뭐 이렇게 내가 인정하고 본인이 녹음할 수 있는데 나도 상황이 무섭긴하다" 등 자신의 가해를 사실상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피해자가 출근을 중지한 이후에도 성폭력 피해가 발생했다. 피해자는 A씨의 로펌에 전화해 최종 퇴사 처리했으나, 이후에도 A씨는 피해자에게 계속 전화하면서 만남을 요구했고 피해자는 거절을 거듭했다. 현재 피해자는 정신과 치료 등을 받고 있다.

피해자는 "모든 용기를 끌어모아 정당, 적법하게 고소했지만 가해자의 극단적인 선택으로 악의에 찬 질문, 의혹 어린 시선을 받고 있다"며 "6개월간 사건을 수사한 서초경찰서의 판단과 이를 근거로 한 검찰의 입장을 알고 싶다. 피해자로서 이미 이뤄진 수사 내용을 알 정당한 권리가 있다"고 짚었다.

◇"추가 피해자 존재…피의자 사망과 별개로 수사결과 발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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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의 사망으로 당장의 고소 사건은 '종결되게 됐으나', 피해자가 짊어질 2차 피해는 언제 끝날지 모를 '현재진행형의 고통'이 됐습니다."

피해자 측은 '실체적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경찰·검찰이 수사 결과를 발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은의 변호사는 "'공소권 없음' 처분은 수사 금지나 중단을 하라는 의미가 아니다"라며 "피의자의 사망 등으로 기소나 처벌이 어렵더라도 실체적 진실 규명을 위한 수사와 판단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피해자가 피의자가 선택한 사망으로 떠안을 2차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도, 피의자의 극단적 선택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했다.

피해자 측은 A씨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은 이들이 추가로 드러났고, 이 같은 피해를 막고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 고소에 나섰다고 밝혔다.

피해자 측은 "이 사건에는 수습변호사 또는 초임변호사 등 열악한 지위에서 가해자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은 추가 피해자들이 최소한 2명 이상 존재한다"며 "피해자는 추가 피해자들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더 이상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생겨선 안 된다는 생각으로 깊이 고민했고 고소에 나서게 됐다"고 했다.

피해자에 따르면 A씨 스스로 피해자에게 직접 언급한 피해자만 2명이다. 이은의 변호사는 "이후 피해자는 이들(피해자)에게 직간접적으로 물었는데, 피해자 외에 추가 피해자가 적어도 5인 이상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사건 가해자에 대해 피해자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피해자들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았다"며 "피해자 측은 수사기관에 추가 피해자들에 대한 수사 확대를 촉구하고, 피해자가 알지 못하는 다른 피해자들이 용기내어 연락할 수 있도록, 이런 피해 사례가 비단 이 사건 가해자와 관련해서만 국한된 것이 아닐 것인 바, 법조계 내부에 경종을 울리고자 언론 보도를 통해 자신이 입은 끔찍한 피해사실을 가감 없이 공개하고 공유했다"고 했다.

피해자 측은 "가해자가 로펌 대표이자 중견 변호사인 이유로 업무상 위력 관계에서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가해자의 우월적인 지위가 혹시라도 수사와 판단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피해자에 따르면 A씨는 피해자에게 '한 다리만 건너면 서초동 대표들을 다 안다'며 유력 법조계 인사와의 친분을 과시했다.

◇"법조계도 자성해야…2차가해 멈춰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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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측은 대한변협 등 법조계에 피해자 보호 조치에 적극 나서고, 실무수습 변호사 제도를 개선해달라고 촉구했다.

이 변호사는 "피해자의 문제 제기는 엄연히 존재하지만 외면해온 법조계 내부의 성폭력 피해 사례를 보여준다"며 "피해자는 피의자의 사망으로 법조계 안팎에서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사건의 당사자처럼 됐고, 비실명 사이트에서는 물론 SNS상에서도 피해자의 성폭행 공론화가 피의자를 사망하게 했다는 오명을 뒤집어 쓰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한변협에 '피해자에 대한 가장 기본적이고 적극적인 보호 조치'를 할 것을 요구했다. △수사기관이 수사 결과를 발표하도록 촉구하고 이 사건 가해자에게 추가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에 대해 수사기관과 공조해 조사에 나설 것 △향후 수사기관에서 피의자 사망 시 공소권없음 처분을 내리는 것과 별개로 수사와 판단을 중단하지 않는 관행을 만들어가는 데 역할할 것 △피해자가 입은 피해에 대한 위로와 피해자가 낸 용기에 대한 지지를 가시적으로 표명할 것 등이다.

아울러 "새로 진입하는 청년 변호사들의 열악한 지위를 외면하고 있는 문제와 맞물려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수습변호사 제도를 운용하는 본연의 취지가 현실에서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살피고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피해자를 향한 왜곡되고 편향된 시선과 2차 가해를 멈춰달라고도 강조했다.

피해자 측은 "여러 예상되는 불이익을 감수하고 용기내어 노력했음에도 가해자의 사망으로 인해, 피해자는 피해를 정당하게 소명받고 응당한 처벌을 구할 기회마저 잃어버렸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법조계 내에서 피해자의 신상정보를 캐려고 하거나 피해자의 고소나 공론화의 동기를 왜곡하는 뒷이야기들이 무성하게 오가고, 피해자가 사건 관련 언론 보도를 해 피의자가 사망하게 했다는 등의 이야기가 전달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피해자에게 '변호사'라는 세 글자는, 피나게 노력하며 갈망해왔던 꿈이자 성폭력 피해로 인해 눈물로 얼룩졌던 자기 정체성 자체였다"며 "피해자가 변호사로서 자부심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2차 가해를 입지 않도록, 우리 법조계가 우리 사회에서 견인해온 성인지 감수성에 걸맞는 성찰과 태도로 피해자의 아픔과 용기에 화답해주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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