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
①멈추지 않는 한국타이어 사고…기계에 머리 끼고 가스 흡입 ②"이틀에 한 명씩 다쳐"…한국타이어 6년간 1190명 산재 ③정부 감독 중에도 2.6일마다 사고…감독, 하나마나 ④노동자들이 말하는 사고 이후…복귀하니 사라진 '내 자리' ⑤'생산성'에 밀린 한국타이어 노동자들의 '안전' ⑥노조 선거에 '투표 인증샷'…수시로 노조 보고 받은 노경팀(계속) |
이틀에 한 번꼴로 산업재해가 발생하는 한국타이어에선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노동조합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타이어에선 노조가 노동자의 동향을 사측에 수시로 보고하거나 회사가 노조 선거에 개입한 정황이 포착됐다. 현행법상 회사가 노조 활동에 개입하는 것은 부당노동행위로 불법이다. 한국타이어 측은 노조 활동에 개입하지 않았다며 이를 부인하고 있다.
◇'찬성' 찍은 투표인증샷…대의원은 회사가 원하는 사람
한국타이어에는 두 개의 노동조합이 존재한다. 한국노총 고무산업노련 산하의 '한국타이어 노조'와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의 '한국타이어지회'다.
다수노조인 '한국타이어 노조'의 위원장은 직선제가 아닌 간접선거로 뽑아왔다. 팀마다 2~3명의 대의원을 뽑고 그 대의원들이 위원장을 선출하는 방식이다.
당시 대화가 담긴 카카오톡 사진을 보면, 전 한국타이어 노조 소속 A씨는 대의원 선거 날인 2017년 3월 21일 한 대의원 후보에 대해 '찬성'으로 기표한 용지를 찍어 반장에게 보냈다.
또 임단협 투표 당시에도 노경팀 차장은 "상황송신"이라고 보냈고, 노조 관계자는 "투표종료 100%"라는 답변과 함께 '찬성'에 기표한 투표용지 사진을 올렸다.
한국타이어 노조에서 노조 대의원까지도 맡았던 A씨는 CBS와의 인터뷰에서 "원래는 그렇게까지는 안 했고, 찬성 찍을 사람인지 반대 찍을 사람인지 주기적으로 노경팀이나 주임, 반장이 체크시트를 만들어왔다"며 "근데 찬성했다고 하고 반대를 찍을 수도 있으니 확실해졌으면 좋겠다면서 명확한 인증사진을 찍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인증사진을 통해) 팀 내 조직력이 얼마나 단단하냐를 퍼센트로 따지는데 팀장 인사 평가 중 품질, 사고 등은 비슷비슷하다"며 "(이 부분이) 팀장 평가 중에서 가장 위에 있다는 것"이라고 A씨는 말했다.
대의원 후보 역시 철저히 검증된 사람만 나갈 수 있다고 했다. 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회 소속의 김두억 지회장은 "1, 2년 된 게 아니라 관행이 오래됐다"며 "거의 사측이 원하는 후보가 뽑히고, 사측이 원하는 대의원이 안 뽑히면 난리가 난다. 해당 관리자가 문책을 당하던가 연봉이 깎인다"고 말했다.
수년 전 임단협 투표를 앞두고는 한 사측 관리자가 노동자 이모씨에게 전화를 걸어 "너 30년은 더 다녀야 되잖아. 너 내가 믿는다. 찬성에다 딱 찍는 거야. 좀 도와줘"라고 말하는 녹취파일도 있었다. 이모씨는 "반협박이었다. 찬성에 투표하지 않으면 나한테 불이익이 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씨는 그러면서 "주변에도 되게 그런 걸 많이 겪었고, 지금도 그렇지만 사람들이 다 쉬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수노조와 사측의 이 같은 관계 아래 노동자들의 권익은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고 노동자들은 입을 모았다. 한국타이어 노동조합 홈페이지 위원장 인사말에는 "그동안 우리 노동조합은 회사 발전에 협력하는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했지만 회사의 협력이라는 명분 아래 조합원들의 권익을 망각한 부분이 있었음을 먼저 반성한다"고 쓰여 있다.
대전CBS는 한국타이어 노조 측에 수차례에 걸쳐 입장을 물었지만 "너무 바쁘다"며 결국 답변을 주지 않았다. 다만 "전 집행부의 일이며, 현재는 집행부와 위원장이 새로 바뀌었다. 4월부터는 첫 직선제였다"고 전했다. 전 집행부 측에도 입장을 물었지만 듣지 못했다.
이밖에도 사측에서 사원들을 조직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CBS가 입수한 한국타이어의 '현장사원 Vision 내재화 활동'이라는 문건에는 미팅 일시, 주관자, 대상자, 장소 등과 주요 내용이 담겼다.
"격려금 지급 후 00에 대한 이탈이 높다", "반장 선임에 대한 아쉬움이 있지만 000반장을 잘 돕겠다", "잠정합의안 찬반투표 배제금지 가처분 관련 정보 공유", "00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심상치 않다" 등이 특이사항 및 주요 내용으로 담겨있다.
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회 측은 "사측은 사원들 성향 분석을 위해 여러가지 조사를 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회사에서 산업재해법 위반 감시체제를 무력화하는 등 많은 문제가 있으며 이러한 문건은 여러가지 형태로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다수의 변호사는 "노동조합 관련 투표나 임단협 찬반 투표 인증샷을 보내라는 건 전형적인 노동조합 운영에 지배개입하는 부당노동행위"라고 말했다.
◇"소수노조 탄압은 곧 안전 위협"
이런 상황 속에서 지난 2014년 11월 ‘소수노조’인 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회가 설립됐다고 한다. 이후 끊임없이 사측으로부터 '노조 탄압'을 받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한국타이어지회 측은 노조 활동을 방해했다며 사측과 대표이사, 공장장, 반장 등 23명을 고소했지만, 검찰에서는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노조가 회사와 사전 협의 없이 유인물을 배포하기 시작했고, 배포 시기와 장소, 배포 매수 및 유인물 내용, 배포 중 행동 등에 비춰 회사 내 질서를 혼란할 가능성이 있어 유인물 배포 행위를 보면서 증거 수집 목적으로 촬영한 것으로 이는 정당한 시설관리권의 행사"라는 사측의 주장이 인정됐기 때문이다.
금속노조는 "유인물 배포 행위가 회사와의 사전 협의 없이 이루어졌다는 이유 등으로 위법하다는 것은 기존 대법원 판례 및 관련 법리에 명백히 어긋나는 법리적 오해"라고 반박했다. 또 "금속노조 노조원들이 한국노총 소속 노조원들과 충돌을 빚어 이를 제지하기 위해 유인물 배포 행위를 중단하도록 했다는 등은 심각한 사실 오인"이라며 항고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외에도 자리를 변경해주겠다며 금속노조 탈퇴를 요구하거나 협박하고, 노조에 가입한 뒤부터 휴식교대를 해주지 않거나 연장·휴일근무 등에서 배제되며 월급이 줄어드는 등의 사례가 있었다고 노동자들은 말한다.
한국타이어지회 측은 노동자의 안전 등 권익을 강조하며 만들어진 소수노조를 탄압하는 것은 곧 안전에 대한 위협이라고 주장한다. 양장훈 초대 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회장은 "금속 노조 설립 이전엔 현장에 안전 관련된 것들에 대해 회사가 거의 신경을 안 썼다"며 "산업재해가 하루에 한 번씩 매일같이 일어났고, 안전 관련된 것들이 거의 제대로 운영되고 있지 않은 점도 노조를 설립한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장 안전을 확보하고 안전 인식을 고취하려고 노조를 설립했지만, 탄압으로 인해 조합원들이 계속 가입을 못 하고 노조가 안전 영역에서 활동할 수 있는 것이 좁아지고 있다. 결국, 회사의 노조 탄압이 노동자의 안전에도 상당한 악영향을 끼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전CBS는 ‘투표 인증샷’과 조합원 동향에 대한 수시 보고 정황, ‘현장사원 Vision 내재화 활동’ 문건 등에 대해 한국타이어에 물었다. 이에 대해 한국타이어 측은 "복수노조 허용과 함께 공정대표 의무를 준수하고 있으며, 금속노조에 대한 차별적인 대우를 한 사실이 없다"며 "특히 사측은 노동조합 활동에 개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개입할 수도 없다"고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