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보다는 '이윤'을 택하는 기업, 꼬리 자르기에 그쳐온 사법부의 처벌, 안전 사각지대를 방치해 온 정부. 지난해 산업재해로 숨진 노동자는 2062명으로 전년도보다 42명 늘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구의역 참사 이후에도 노동자들의 죽음이 이어지고 있다"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령 강화 등을 촉구했다.
◇"혼자 근무하다 쓰러져도 신고해줄 사람 없어…현장 위험 여전"
지하철 역사에서 스크린도어 점검, 전기 관련 업무 등을 하는 노동자들은 현장의 위험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구의역 김군 산재 사망 사고' 때와 마찬가지로 곳곳에서는 2인 1조 근무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서울메트로9호선지부 최기범 지부장은 "고객 안전 업무 노동자(역무원)들이 심야시간대 개·폐장 때(오후 11시~폐장 시)단독 근무를 하고 있다"며 "혼자 근무하다가 쓰러졌을 때 신고해줄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CBS노컷뉴스가 만난 다른 현장 노동자들도 "여러 직렬에서 2인 1조 근무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2인 1조로 배정돼 있어도 주·야간 근무 때 한 명씩 주기적으로 지정 휴무를 써야 해, 1명만 근무하는 상황이 생긴다"고 했다. 이들은 "특히 전기 관련 업무 등은 위험할 때가 많지만, 회사는 인력을 충원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고 짚었다.
안전한 근무 환경을 바라는 현장의 요구는 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현장 노동자들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자 서울교통공사 측은 지난 2019년 이들에게 호신용 물품으로 호루라기, 고춧가루 물총 등을 제공하는 데 그쳤다. 최기범 지부장은 "(회사도) 문제는 인식하고 있다. 서울시 돈을 받는데,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라며 "4조 2교대 근무를 할 수 있도록 인력을 충원해달라고 요구해왔다"고 말했다. 노조에 따르면 안전한 작업 환경을 위해 138명가량의 인력이 추가로 필요하다. 전유덕 지부장은 "최저가 입찰제 방식이기 때문에 인건비를 줄여나갈 뿐, 인력을 늘릴 생각은 없어 보인다"고 했다.
◇"처벌받아야 할 사람은 사업주…중대재해처벌법 강화해야"
"불평등과 위험의 외주화 속에서 죽은 청년의 가족들이 자식의 죽음을 자기의 책임이라고 여기지 않는 사회를 원합니다. (김군의) 어머니에게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건 어머니 잘못이 아니에요. 안전 비용을 이윤으로 남기고, 안전한 구조를 만들지 않은 사업주의 잘못이에요. 처벌받고 고통받아야 할 사람은 어머니가 아니라, 그 사업주'라고."
사단법인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28일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연 '구의역 김군 참사 5주기 추모 청년·청소년 기자회견'에서 청년전태일 김종민 대표가 김군에게 쓴 편지를 읊었다. 이들은 김군을 추모하며 산재 살인 기업 처벌 강화, 학교 노동 교육 제도화 등을 촉구했다.
단체들은 국회를 통과해 8개월 뒤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산재 사고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짚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고, 50명 미만 사업장에는 3년의 유예기간을 뒀다. 기업 오너 등 사업주가 책임을 회피할 길을 열어두고 벌금형 하한선 조항을 삭제한 점 등도 문제로 꼽힌다.
단체들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강화, 학교 노동 교육 제도화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보다는 기업의 비용 절감과 책임 회피를 용인해주는 정부와 국회를 국민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가"라고 되물으며 "정부와 국회는 노동자 산재 사망에 책임을 져야 하는 살인기업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노동자의 권리를 학교에서부터 배워야 한다"며 "2022년 국가 교육과정 개정 시 총론에 노동 교육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지난 24일부터 오는 29일까지를 '구의역 참사 5주기 공공운수노조 생명안전주간'으로 정하고 "후퇴한 중대재해처벌법을 제대로 된 시행령·시행규칙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공운수노조는 29일 오후 2시 구의역에서 5주기 추모제를 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