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 ①멈추지 않는 한국타이어 사고…기계에 머리 끼고 가스 흡입 ②"이틀에 한 명씩 다쳐"…한국타이어 6년간 1190명 산재 ③정부 감독 중에도 2.6일마다 사고…감독, 하나마나 ④노동자들이 말하는 사고 이후…복귀하니 사라진 '내 자리' ⑤'생산성'에 밀린 한국타이어 노동자들의 '안전' (계속) |
한국타이어 내부 평가 항목에서 가장 비중이 적은 것은 '안전'이었다. 노동자들 역시 생산성에 쫓겨 위험을 감수하며 일하고 있다고 말한다. 반복된 산업재해의 뒤에는 생산성을 강조하는 조직문화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내부평가 살펴보니 '안전'보단 '생산성'
대전CBS는 당시 노동청이 특별감독을 마친 뒤 감독을 총괄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한 강평 자료를 통해 한국타이어의 안전보건 수준을 살펴봤다.
한국타이어는 기업과 공장, 또 팀별로 안전에 대한 목표를 수립하고 전 구성원이 평가를 받고 있다. 노동청은 한국타이어가 목표 달성을 위해 자체적으로 나눈 평가 항목을 분석했다.
우선, 안전보건관리책임자인 공장장에 대한 생산본부 내부 평가 항목을 보면 재해가 얼마나 자주 일어나고 심한지 등을 고려한 '종합재해지수' 지표는 10%만 반영됐다. 이 지수는 재해 빈도와 상해 정도를 종합해 나타내는 것으로 사업장의 위험도를 보여준다. 하지만 안전과 관련된 이 지수는 생산성(40%), 수익성(30%) 등과 비교해 현저히 낮은 비율을 차지했다.
안전환경팀의 평가 항목에서도 종합재해지수의 비중은 20%에 불과했다. '흡연율 감소' 항목과 같은 수준이다. '안전'환경팀이었지만 '안전'의 비중은 흡연율 감소, 제조원가, 사원건강유지, 환경지표 유지 등과 다르지 않았다.
해당 자료에서 노동청 측은 "'안전'환경팀인데도 불구하고 안전과 관련된 항목의 비율이 매우 낮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팀별 종합재해지수를 정하고 목표 관리는 하지만, 산재로 인한 휴업일수가 발생하지 않은 사고는 누락한다"고 했다. 노동자가 일하다 다쳤지만, 쉬는 날이 발생하지 않은 가벼운 사고는 빼버렸다는 의미다. 또 사고 후 조치는 형식적 원인조사로 피상적인 대책을 수립한다고 비판했다.
고용노동청은 그러면서 "사고의 중대성 여부와 관계없이 근본적으로 산재를 줄이는 목표 관리가 필요하고 가벼운 재해를 관리 대상에서 제외할 게 아니라 위험성 발견에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산재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부서에 대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며 "장기간 휴업 일수를 동반한 산재가 발생할 경우 인사팀에서 대체근로 기준을 마련해 인력 충원 등 필요한 조치를 강구해야한다"고 했다.
게다가 대전공장의 경우, 협력업체 직원을 포함해 상시 근로자가 약 3200명에 달했지만, 선임된 안전관리자는 2명에 불과했다.
또 위험성 평가에 대한 한국타이어 노동자들의 참여도는 높지만, 의미 있는 대책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고도 고용노동청은 평가했다.
이와 관련해 노동·산재 전문 손익찬 변호사는 "위험성 평가는 노동자 스스로 자신의 작업에서 무엇이 위험한지 평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노동자들이 위험성 평가를 하려면 무엇이 위험한지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이 시행돼야 하는데 위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해도 정작 위험성 평가의 퀄리티가 낮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한국타이어 측은 "작업환경 관리를 위해 년 2회 전문업체를 통해 공장 전체의 작업환경을 측정하고 있으며, 법 기준치 보다 현저히 낮은 결과를 나타내고 있다"고 밝혔다. 또 "특히 법 기준치보다 현저히 낮게 설정해 관리하고 있으며, 이를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생산'에 쫓겨 위험에 노출된 노동자들
공장에서는 초 단위로 설비가 돌아가는지 아닌지 모니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노동자들은 관리자들이 모니터로 가동 현황을 지켜보면서 설비가 서면 바로바로 지적한다고 말한다. 노동자 한모씨는 "가류공정에서는 설비가 서면 관리자가 마이크를 잡고 방송을 한다"며 "몇 호기 왜 세웠냐는 내용인데, 어떨 때는 뛰어가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150~180도가량의 고온과 고압으로 타이어를 찌는 공정이지만, 생산량에 대한 압박으로 가류 공정의 작업자들은 대부분 뛰어다닌다고 했다. 미끄러지면서 팔꿈치 등에 화상을 입은 작업자도 많았다. 고무끼리 달라붙지 않도록 하는 코팅 작업을 할 때도 속도를 높이라는 주문이 들려왔다고 한씨는 말했다.
한씨는 "관리자들도 코팅을 제대로 하고 말리는 시간까지 어느 정도가 걸리는지 알면서도 빨리빨리 하라고 다그친다"며 "한 명의 작업자가 맡는 가류기가 많을수록 시간이 걸리고 코팅을 제대로 안 하면 어차피 불량이 나는데도 왜 빨리빨리 설비를 안 돌리냐고 지적한다"고 토로했다.
조별로 비교에 시달리는 것도 늘 있는 일이었다. 노동자 전모씨는 "성형과에서는 A조 작업자가 300개를 하는데 왜 너는 250개밖에 못하냐는 이야기를 한다"며 "조마다 비교하면서 실적을 맞춰오라 요구한다"고 말했다.
노동자 변모씨 역시 "매년 조금씩 생산량이 늘고 있다"며 "설비가 개선된 것도 이유 중 하나겠지만, 조별 평균의 생산량을 잡는 게 아니라 생산을 월등히 잘하는 조에 맞춰 생산량을 잡는다"고 꼬집었다. 늘 조마다 비교에 시달리며, 빨리빨리 생산하기 위해 일하다 보니 설비를 세우지 않은 채 위험을 감수하고 트러블 조치(설비의 이상 여부 확인 및 점검)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노동자들은 말한다.
생산성이 가장 중요한 작업 현장에서 안전은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안전교육은 하지도 않은 채 사인만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안전교육 확인서는 출근도장이 돼버렸다"는 증언도 나왔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박용철 부소장은 "기업들이 모든 것을 비용으로만 접근하고 사람으로 접근하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사람이 빠진 생산성, 비용만 추구하는 생산성이자 문제가 많은 생산성"이라고 비판했다. 박 부소장은 그러면서 "기업이 추구해야 될 가치나 방향이 생산성만 향한다면 인간이나 생명의 가치, 직장으로써 의미 등을 추구하기 어려워진다"며 "그 결과 그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안전이나 환경의 문제 등은 배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