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인권위는 신상공개 대상이 되는 강력범죄 피의자에게 의견진술 기회를 부여하는 등 방어권과 절차적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인격권 및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침해가 최소화되도록 관련 규정을 정비하라고 경찰청장에게 권고했다고 밝혔다.
앞서 경찰은 이른바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씨의 부모를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혐의로 2019년 3월 17일 김씨를 검거하고, 같은 달 25일 신상공개심의위원회를 열어 김씨의 실명과 얼굴을 공개했다.
그러자 김씨는 "신상공개 전후 과정에서 어떠한 통지도 받지 못했으며, 의견진술 등 방어권을 행사할 기회도 없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에 경찰은 인권위 조사에서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특강법)에 일부 강력범죄 피의자 신상공개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데, 결정 과정에서 대상자에게 사전고지나 의견진술, 자료 제출 등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거나 결정 내용을 통지해줘야 하는 점에 대해서는 명시하고 있지 않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신상공개위원회를 개최해 진정인의 얼굴·성명·나이 등 신상공개 여부에 대해 논의했으며, 범죄의 중대성과 공공의 이익 등을 고려해 신상공개를 결정하고 실행했다"고 덧붙였다.
인권위는 "비록 관련 법령에 구체적인 절차가 규정돼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불이익한 처분을 함에 있어서는 '행정절차법'에 따라 대상자에게 처분에 대한 사전통지 및 의견제출의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며 "대상자로 하여금 자신의 견해를 진술할 수 있도록 하는 기회를 줘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수사단계에 있는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은 시기상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할 수 있고, 한번 신상이 공개되면 피의자에게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발생한다"며 "통지나 의견진술 기회 없이 신상정보를 공개한 것은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적법절차원칙을 위반해 일반적 인격권과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인권위는 김씨의 인격권 침해를 인정하면서도 이는 경찰청 내부에서 구체적인 절차가 마련되지 않은 데서 기인한 문제라고 보고, 경찰청장에게 법적·제도적 개선을 도모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정비하라고 권고했다.
김씨는 당시 경찰 수사관이 강압적으로 수사했고, 의료조치에 소홀했다고도 주장했으나 이는 객관적인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됐다.
한편 김씨는 2019년 2월 25일 경기 안양시의 한 아파트에서 이씨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살해하고 현금 5억원과 고급 외제 승용차를 빼앗아 달아난 혐의(강도살인·사체유기·강도음모 등)로 기소돼 지난 2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