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시점에 지난 7일 책 '여섯 개의 폭력'이 세상에 나왔다. 지은이 중 다섯은 학교 폭력의 고통을 극복한 생존자다. 다른 한 명은 학교폭력으로 어른이 되지 못한 채 숨진 한 명의 어머니다. 이들은 가깝게는 10년, 멀게는 30년 전의 피해 경험을 담담한 어조로 서술한다.
사회복지사 조희정(31)씨가 회고하는 어린 날은 고통스럽다. 집에서는 알코올 의존증을 앓고 있는 엄마의 폭력에 시달렸다. 학교에서는 지적장애 3급인 연년생 오빠가 있다는 이유로 폭력에 노출됐다. 촌스럽거나 몸에 맞지 않게 작아진 옷을 입기 싫어도 선택권이 없었다. 아이들에게 '레드삭스'라 놀림을 받으면서도 매일 같이 빨간 양말을 신고 학교에 가야했던 이유도 같다.
"아무래도 외적으로 표시가 나다 보니까 친구들 사이에서 도태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자연스럽게 어울리지도 못하고. 친구들도 쉽게 놀리게 됐는데, 그렇게 폭력이 시작되면서 집과 학교 두 공간이 순식간에 지옥이 돼 있더라고요."
조씨가 기억하는 학교는 학교폭력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폭력이 없던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학교는 일종의 안식처였다. 엄마의 폭력이 없었으며 즐거운 추억을 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폭력이 시작된 초등학교 고학년부터는 오히려 학교가 도망칠 수 없는 감옥이 됐다. 처음에는 짝꿍이나 조원이 되기를 꺼리던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 야유 보내기, 옷 더럽히기, 자리에 압정 놓기 등 점점 심한 괴롭힘으로 나아갔다.
"저학년 때까지는 오빠의 장애를 잘 몰랐거든요. 그러다 고학년이 되면서 두드러지게 장애의 특징들이 나타나게 된 거예요. 선생님도 그런 부분을 인지하게 되셨고요. 부모님은 아이에 대해 관심이 조금 무딘 분들이다 보니 제가 부모님 역할을 대신하게 된 거죠."
'오빠를 돌봐야 하는 동생'이라는 역할은 오히려 괴롭힘의 빌미가 됐다. '○○이 동생'이라는 말이 별명처럼 따라붙었다. 조씨는 오빠의 반 친구들이 조씨의 신체 부위를 만지는 내기를 했던 경험을 아직 잊지 못한다. 조씨는 "오빠로 인한 이야기로 가해를 많이 받았다"며 "오빠가 장애가 있으니 너도 있을 거라는 식의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조씨는 학교폭력 문제에서는 '선생님'이라는 조력자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씨는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어린 친구들에 대한 분노나 부정적인 마음보다는 당시 상황을 안일하게 대처했던 선생님이 더 큰 가해자로 생각이 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조씨는 초등학교 6학년 시절 가정과 학교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솔직하게 일기장에 적어냈다. 하지만 당시 선생님은 별말 없이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주셨을 뿐이었다.
"제가 학교폭력을 당할 당시 선생님들이 모르지 않았어요. 수업시간에도 폭력이 이어졌고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런데도 선생님이 딱히 대처를 해주시지 않았어요. 그런 환경에 놓여있으니 친구들도 얘한테 이정도는 괜찮겠다 하는 면죄부적인 생각을 갖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오빠와 학교가 달라진 고등학생 시절부터 점차 학교폭력은 사라졌다. 그렇다고 마음의 상처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학교폭력의 경험은 조씨의 마음에 큰 상흔을 남겼다.
"어떻게 보면 그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해결을 보지 못했잖아요. 그 억울하고 힘들었던 감정들을 질질 끌고 오다 보니까, 평범하게 사는 것조차 힘들 때가 있더라고요. 역으로 평범한 감정을 느낄 때도, '나는 왜 웃으면서 잘 지내고 있지?'라는 죄책감이 들기도 했어요. 그때 당시 누군가가 '너가 아니라 가해자가 잘못한거야'라고 집어주고 넘어갔더라면 조금 더 편안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학교폭력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 사람들이 좀 인식을 했으면 좋겠어요"
또 다른 지은이 '이모르'(35)는 17만 구독자를 둔 유튜버다. 그는 자살자 유가족, 가정폭력 피해자, 성폭력 피해자 등 내면의 상처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그림을 그린다. 이모르 역시 중학교 시절 학교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교우관계나 이런 건 괜찮았던 편인데, 중학교 들어서면서 완전히 새로운 무리 사이에 적응을 못 했어요. 그때 친한 친구도 별로 없었고요. 의기소침해 있었는데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폭력이나 괴롭힘, 놀림을 받았었고 그게 중학교 내내 이어진 거죠."
이모르가 쓴 챕터의 제목은 '그들은 왜 하필 나를 괴롭히기로 했을까?'다. 그는 "내가 왜 그 아이들한테 괴롭힘을 당했는지 되돌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무리 안에서 어떻게 위계가 설정되는지 등에 집중해 돌이켜봤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글을 쓰면서 아직 상처에서 100% 회복하지 못한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다. "학교폭력을 당한 게 제 문제 때문이 아니잖아요. 그렇게 괴롭힘을 한 가해자들이 이상한 거고 걔네 탓을 해야 하는 거죠. 복기하면서 글을 쓰는데 아직도 제가 저 자신을 탓하는 방식으로 서술을 하고 있더라고요. 오히려 쓰면서 '아직 자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자괴감도 들었어요."
이모르는 자해, 폭음, 우울증 등으로 점철된 20대를 보냈다. 그는 분노의 화살이 '자기 자신'에게 향하는 이면에는 학교폭력의 영향이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학교폭력 피해자는 가해자에 대해 쉬이 분노를 표출할 수 없다. 표출될 기회를 잃은 분노는 삼키고 삼켜지다 결국 스스로라는 쉬운 타깃을 찾게 된다.
"저 같은 경우에는 '내 탓'이라는 생각이 컸어요. '내가 모자랐고 바보 같았다. 나 스스로 벌을 내려야 한다'는 생각이 컸고 그래서 자해를 시작한 거죠. 그런데 한번 시작하고 나면 쉽게 그만둘 수가 없어요. 다른 사람에게 분노하는 정서적, 물리적 에너지보다 스스로 해를 끼치는 게 가장 쉬운 수단이라는 걸 알아버리는 거죠."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시작한 게 유튜브였다. 처음에는 스스로의 힘듦을 극복하는 독백 영상이 주 콘텐츠였다. 생각지 못하게 많은 위로를 받았고 '다른 사람들의 사연도 들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다양한 폭력의 피해자를 만난 그는 최근 한가지 유사점을 발견했다. 아무리 오래전의 일이라 해도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가 기억력이 좋은 편이 아니거든요? 재미있는 영화나 책을 보면 그 순간의 잔상이 남아도 시간이 지나면 잊히고 내용도 잊어버리는데, 피해 상황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당시의 상황이나 공간, 가해자의 인상착의와 이름 등등… 잊고 싶어도 잊히지 않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그는 유명인 '학폭 미투'에 대해서 아쉬운 점이 있다고 말했다. 유명인과 이슈 중심으로만 소비되는 것 같아서다. 그 또한 '폭투' 이후 과거의 가해자 이름을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해 본적이 있다. 가해자들이 잘 살고 있는지, 명예는 얼마나 갖고 있는지 등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모르는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저를 괴롭혔던 가해자들은 유명하지 않더라"며 "가해자가 유명하지 않다면, 내가 아무리 학교폭력 이슈를 터뜨려도 관심을 두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학폭(미투)이라는 것에도 조건이 필요한가?'라는 씁쓸함도 들었다"며 "가해자도 여러 유형이 있을 텐데 너무 유명인 가해자에게만 관심이 쏠리는 것 같기도 하다"고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