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질 불량품' 군납 운동복에 '짝퉁' 군수품…도대체 왜?

땀 흡수 안 되는 운동복, 발수 안 되는 베레모 납품
성적서 받을 때는 제대로 된 제품…실제 납품은 저질
실무자 전문성 부족·최저가 낙찰제 등 원인으로 지적돼
방사청 "무단복제 납품 포함 종합적 대책 검토"…이번에는?

휴가 나온 병사들. 연합뉴스
병사들에게 수년간 지급돼 온 베레모와 운동복 등 피복류 수십만벌이 불량품으로 드러나면서 한국군의 고질적인 납품비리 문제가 또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현행법과 규정의 한계, 실제로는 불가능한 '싸고 좋은 물품'만을 찾는 경향, 실무자들의 전문성 부족 등이 원인으로 지적되는데 군 당국은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판단하고 있다며 해결책 마련에 착수했다.

◇땀 흡수 안 되는 운동복?…시험 볼 때만 정상 제품, 납품할 때는 저질 제품

국민의힘 윤주경 의원실에 따르면 방위사업청은 최근 군에 납품된 피복류 6개 품목·18개 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베레모와 육군 춘추운동복·여름운동복 등 3개 품목을 납품한 8개 업체가 기준 규격에 미달하는 제품을 납품했다고 판단했다.


이들 8개 업체는 지난 5년 동안 춘추운동복 19만 5천여벌, 여름운동복 30만 8천여벌, 베레모 30만 6천여벌 등 모두 182억원 규모의 피복을 납품했다.

이 가운데 한 업체가 납품한 육군 여름 운동복 바지는 평가에서 땀 흡수속도가 품질기준인 2초 이하에 한참 못 미치는 19초가 나왔다. 한 술 더 떠 땀으로 인한 변색·변형 정도를 의미하는 견뢰도 평가에서는 상·하의 모두가 규격에 미달한 제품이 있거나, 베레모의 경우 발수도가 기준 규격에 미달했다.

연합뉴스
운동복은 방사청 훈령 639호 '방위사업 품질관리 규정'의 품질보증형태 분류에서 단순품질보증형(I형)으로 분류된다. 이는 '공인된 우수품질 표시품, 대량자동화 전문생산품 등과 같이 품질이 단순하고 안정된 품목'을 의미한다. 군납 운동복이 민간 상용 운동복과 본질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 경우 방사청은 납품업체가 '제품이 기준에 부합한다'는 공인성적기관의 성적서를 제출하면 그 진위만 확인하게 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업체들이 성적서 의뢰를 할 때만 제대로 된 제품을 제출해 결과서를 받고, 실제로 군에 공급할 때는 저질 제품을 납품했다는 것이 윤 의원실의 지적이다.

방사청은 8개 업체 가운데 1곳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고 7곳에 대해서는 계약 기간이 남아 시정조치했으며, 국방기술품질원에서 추가 정밀분석을 실시해 위법성 등이 확인되면 수사 의뢰 등의 조치를 추가로 할 예정이다.

불량 제품을 납품한 업체에 대해서 즉각 이를 멈추고 수사를 의뢰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지만, 계약 기간과 앞으로 납품될 물량들이 아직 남아 있어 곧바로 납품을 중단할 경우 말 그대로 보급품이 끊기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업체에 잘못이 있지만 즉각적인 조치가 불가능한 셈이다.

방사청 관계자는 "불량 납품 재발 방지를 위해 납품업체에 대한 위험등급을 분류하고 고위험 업체에 대해서는 보다 강화된 품질보증활동 기준을 적용할 계획"이라며 "불량납품 업체를 즉각 퇴출할 수 있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 도입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국방부 부승찬 대변인은 20일 정례브리핑에서 "방위사업청, 국방기술품질원, 조사본부 등 관계기관 합동으로 피복류 납품업체에 대한 무작위 정기 불시 조사를 강화할 계획"이라며 "근본적인 제도개선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외국 군수품 불법복제, 저질 제품 납품돼도 항상 '현행법상 문제 없다' 결론

방위사업청. 연합뉴스
군과 방산업계에선 그동안 외국 군수품의 카피품이나 저질 제품이 납품되는 것을 뻔히 알고도 눈 뜨고 볼 수밖에 없었다는 반응이다. 원인으로는 실무자들의 군수품 관련 전문지식 부족과 현행법의 허점, 현행 최저가 입찰 시스템의 문제 등이 꼽힌다.

군은 대부분의 물건을 구매하거나 용역을 맡길 때 방사청의 국방전자조달시스템을 통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국민들에게 공개되는 입찰 과정을 통해 모든 업체가 공정하게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러한 취지와는 다르게 양질의 물건을 만들지 못하거나 군납을 할 능력 자체가 없는 업체들이 최저가로 입찰에 참여해 낙찰을 받은 뒤, 해당 가격을 맞추기 위해 저질 제품을 납품하는 사례가 계속해서 문제가 돼 왔다.

사실 극한의 환경에서 쓰일 수 있는 군납 제품의 특성상, 이들이 요구하는 내구성과 성능을 충족시키려면 그만큼 대가를 지불해야 하지만 최저가 입찰로 진행된다면 상식적으로 이러한 일이 불가능하다. 더러 업체가 물건을 직접 제조하지 않고 구매해서 납품하는 것도 가능한 입찰의 경우에는 품질관리 문제까지 따라오게 된다.

대표적인 예로 육군은 미국 SOG사의 칼 하나를 '많이 참고해' 만든 다용도 칼 약 1만자루를 특수전사령부에 보급했는데,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이 칼은 상표 등의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기성품과 상당 부분 비슷해 불법복제로 만들어진 칼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법상 이 '특전사 칼'의 납품 과정에 법적이나 절차적인 문제가 없다는 이유로 육군과 국방부 등은 손을 놓고 있다.

육군본부 주관으로 지난해 11월 11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워리어플랫폼 국회 포럼에서 장병 개인 전투체계 개선 장비 등이 전시돼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열린 '워리어 플랫폼 포럼'에서 한국국방안보포럼 양욱 연구위원은 "물품의 입찰 공고가 하나 뜨면 응시하는 업체가 50~60개는 기본인데, 대부분은 국방에 전문성이 있는 업체가 아니라 경매나 조달 등에 특화돼 있다"며 "가격으로만 입찰하는 사람들이 들어온 경우도 많다. 입찰을 딴 뒤 제조사나 군수사령부에 연락해 물건이 무엇인지,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문의해서 연결하는 실태가 반복된다"고 비판했다.

이날 박춘식 7공수특전여단장(당시 육군군수사령부 소요조달과장)은 "현재의 최저가 입찰제가 아니라 전문성과 역량 등을 반영한 생산 능력 점수와 가격 점수를 반영한 종합심사낙찰제 도입이 필요하다"며 "사용자들의 만족도를 향상하기 위해서는 미리 이러한 제품을 잘 만드는 업체를 평가하고, 쇼핑몰에 등록해 두면 사용 부대에서 이를 신청해 계약을 체결하는 '다수공급자계약' 제도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즉 당국이 업체와 제품에 대해 사전 적격성 검증을 진행하면 된다는 얘기다.

실무자들도 무엇을 요구해야 할지 정확히 알 만큼 전문성을 갖춰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특히 개인전투장비 등은 야전의 운용 경험에서 나오는 피드백이 매우 중요하지만, 실제 사업 실무자들은 이와 크게 관계없는 다른 보직들을 거치다 해당 업무를 맡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경우가 절대다수이며 업무는 많고 인력은 부족해 자연스레 일선 전투원들의 요구사항을 세밀하고 정확하게 알기가 힘들다. 이렇게 되면 요구성능 자체가 허술해져 그만큼 수준 미달의 제품이 납품되거나, 자연스레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게 되면서 업체 등으로 자리를 옮긴 예비역 장교들의 입김이 들어가는 경우도 생긴다.

실제로 차기 특수작전용 기관단총 사업 관련 군사기밀 유출 혐의로 군사안보지원사령부의 수사를 받다가 최근 구속 기소된 한 총기 제조업체 영업 담당 임원 송모씨는 육군 중령 출신이다. 수사당국은 그가 기밀을 빼돌리는 과정에서 현역 장교들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방위사업청 서용원 대변인은 20일 정례브리핑에서 "방위사업청과 국방기술품질원 등 관련 기관들 간에 협업을 통해 종합적인 대책이 마련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대해서 공감하고 있고 신속하게 추진할 계획을 갖고 있다"며 "외국 군수품의 무단복제 납품 문제에 대해서도 포함해서 종합적으로 검토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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