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에 대한 공감대와 지지, 명백한 수사는 필요하지만 이를 넘어 난무하는 음모론과 가짜뉴스가 사건의 본질과 진실 규명을 흐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부 유튜버들은 명확한 근거 없이 이번 사안을 '돈벌이'에 악용하고 있기도 하다.
◇유족에 대한 응원과 공감…음모론과 신상털기로 변질
"희망에 찬 22살의 아들이 꼭 이렇게 되어야 하는건지 모르겠다."
지난달 28일, 한강에서 실종된 아들을 찾는 아버지의 절절한 블로그 글은 많은 시민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손정민씨의 아버지 손현(50)씨는 "경찰 등 여러 곳에서 도움을 주고 있다"며 "이런 세상을 아들과 함께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아쉬움이 크다"고 했다.
수많은 시민들이 머무는 한강에서 벌어진 실종 사망 사건, 하나뿐인 자식을 잃은 아버지에 대한 안타까움이 겹치며 국민적 관심이 폭발했다. 일부 네티즌들은 CCTV 영상을 검토하거나 사건을 자체적으로 분석한 뒤 각종 조언과 제보 등을 내놨다. 사인을 정확히 밝혀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하루 만에 20만 명 이상이 동의하며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했다.
문제는 다음부터다. 유족에 대한 응원과 공감, 사건에 대한 관심이 각종 음모론과 신상털기로 점차 변질되기 시작했다.
일부 네티즌들은 '타살', '살인' 등을 기정사실화 하는 한편, CCTV의 흐릿한 영상을 자체 분석해 '손정민이 뒤에서 주사기에 찔렸다', '남성들이 손씨를 들어 물에 빠트렸다' 등의 주장을 폈다. '단순 실족사로 발표하면 국민봉기가 일어날 줄 알아라', '이쯤되면 친구가 자수해라' 등의 목소리도 나왔다.
친구 A씨의 아버지가 전 강남경찰서장 혹은 강남세브란스병원 교수라거나, 외삼촌이 서울경찰청 수사과장이라는 루머도 확산했다. A씨의 어머니가 대형 로펌의 변호사라는 설도 돌았다. 하지만 이는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
A씨는 '살인범'으로, A씨의 가족은 '살인마의 가족'으로 불렸다. A씨 아버지가 근무하는 병원 홈페이지는 별점 테러와 악성 댓글에 시달리다 결국 병원 문을 닫았다. A씨 사진과 이름은 무분별하게 인터넷에 노출됐다. 무분별한 음모론과 의혹 제기 속에 '방구석 코난(방구석과 명탐정 코난의 합성어), '명탐정 빙의' 등의 용어도 빈번히 오르내렸다.
이러한 음모론과 의혹 제기 배경으로 '경찰의 수사가 미흡하고, 믿을 수 없다'는 이유 등이 뒤따랐다. 경찰이 역할을 못하니 시민들이 나설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실종부터 현재까지 경찰 수사는 끊임 없이 진행됐다. 오히려 경찰 내부에서는 수사력을 지나치게 집중하고 있다는 토로도 나오는 실정이다.
지난달 28일 손씨 실종 당시 경찰은 인근 CCTV 분석과 헬기·드론 등을 통한 수상 수색을 벌였다. 사망 이후에는 강력팀 7개, 기동대, 한강순찰대 등을 동원해 목격자 16명과 당시 한강을 출입한 차량 154대, CCTV 조사, 휴대폰 수색 등을 병행했다.
참고인 신분인 A씨는 2회 최면수사와 프로파일러 면담 조사 등 6차례나 경찰 조사에 협조했다. A씨의 부모도 휴대전화와 차량 블랙박스 등을 임의 제출해 포렌식을 거쳤다. 경찰이 이렇게 수사를 하는데도 음모론이 횡행하는 배경으로 전문가들은 공적 기관에 대한 신뢰성 부족, 수사 상황 공표 변화, 가십에 기반한 확증 편향 등을 들고 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공적 기관에 대한 신뢰가 많이 하락하다 보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차분히 진실을 얘기해주겠지'라는 인식도 낮아진 것"이라며 "경찰의 경우 이용구 사건, 정인이 사건 등 시민들이 직간접적으로 학습을 한 것이 반영된듯 하다"고 밝혔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예전에 수사를 할 때는 국민들이 관심이 많은 것에 대해선 발표를 자주 했는데, 이제는 피의사실 공표 등으로 거의 하지 않는 추세"라며 "손씨 발견도 민간 자원봉사자가 찾는 등, 경찰이 대체 뭐하고 있는 것이냐에 대해 시민들이 공감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다만 설 교수는 "시민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 관심이 잘못 적용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며 "수사 발표는 잘 이뤄지지 않아도 범인에 대해서는 정말로 수사 결과를 놓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를 범인으로 몰고 가거나, 확증편향 등 오류에 빠질 수 있는데 권위 있는 판단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건강한 여론의 장이 무너지면 음모론은 더욱 창궐하기 마련하다. 특히 이번 사건에서는 일부 유튜버들의 근거 없는 과도한 주장이 여과 없이 퍼지기도 했다.
'신튜브 신혜식'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신혜식씨는 지난 18일 '손정민 영혼? 스타벅스 가방? 논란' 제목의 영상을 통해 손정민군의 영혼이 한 방송사 뉴스 영상에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그는 "누가 봐도 사람의 모습이다"며 "얼마나 억울했으면 저렇게 나타났을까라는 생각도 든다"라고 말했다. 해당 영상은 조회수 6만회를 돌파했으며, '원한에 사무친 얼굴이다', '살인자 OO는 절대로 온전한 정신으로 살지 못할 것이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김웅기자LIVE' 채널을 운영하는 김웅씨는 한 영상에서 "골든건은 리그오브레전드라는 온라인 게임과 관련된 용어였다"며 "동석자 A와 중고생 3명이 손정민씨 한명에게 린치를 가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주장했다. 해당 영상은 조회수 49만을 돌파했다.
이밖에 '손정민 피살', '손정민군 한강으로 옮기는 추정 영상 발견', 손정민군이 제 꿈에 나타났습니다' 등의 영상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손씨와 친구의 '골든건' 음성에서 '아저씨'라는 음성이 나왔다며 제3의 인물에 대한 추측도 나왔다. 아버지 손현씨조차 아저씨 음성이나 제3의 인물 등장에 대해 "당연히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유튜브 영상에는 대부분 '후원 계좌'가 찍혀 있었다. 설동훈 교수는 "유튜브가 일종의 유사 언론으로서 기능을 하고 있는데 케이스를 따져봐야겠지만 클릭수를 늘리기 위해서, 돈벌이를 하기 위해서 그랬다면 심한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유튜브가 방송의 형태로 나오면서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말하는 내용이 사실로 인식될 수 있는 위험성이 충분히 있다"며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유포하는 것은 문제다. 언론사 역시 자극적인 클릭 수 유도로 경제적 이득을 얻으려는 의도도 잘못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경찰은 사건 수사와 동시에 각종 음모론 해명에도 힘을 쏟고 있다. 갖가지 설이 난무했던 '골든건'은 힙합 가수 이름이며, 사건 당일 CCTV에 포착된 다른 남성 3명은 실종 사건과 관련이 없는 인물이라고 밝혔다.
사건의 윤곽을 밝히는 데도 속도가 붙고 있다. 경찰은 손씨 실종 당일인 지난달 25일 새벽 4시 40분쯤, 불상의 남성이 한강으로 걸어 들어갔다는 목격자들의 진술을 확보했다. 다만 입수자의 신원은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불상의 남성이 누구인지 수사 결과는 예단할 수 없다. 아울러 친구 A씨 역시 타살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은 참고인 신분일 뿐이다. A씨 측은 최근 세간에 퍼진 각종 의혹들에 대해 해명에 나서기도 했다.
경찰은 수사를 믿고 지켜봐달라고 재차 강조했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 초기부터 인터넷 등을 통해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퍼지고 있어 수사에 불필요한 혼선이 발생하거나 수사력이 분산되는 등 다소 어려움이 있는 실정"이라며 "사망 전 행적을 확인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경찰 수사를 믿고 결과를 지켜봐 주시기를 당부드린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