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해야 할 역사 광주5.18 그리고 제주4.3

[이인의 특별한 제주이야기-73화]반복된 역사 제주4.3과 광주5.18
41년전 발생한 광주5.18, 신군부에 맞선 민주주의 회복 운동
올해로 73주년 제주4.3, 군경이 제주도민 빨갱이로 몰아 몰살
제주4.3 희생자 1만4천여 명 결정…3만명 넘을 것으로 추정
광주5.18 사망자 218명·행방불명자 363명·부상자 5천여명
제주4.3과 광주5.18, 어린아이와 임산부도 희생돼
이념논쟁 끌어들여 끊임없이 광주5.18과 제주4.3 폄훼
광주5.18, 최초 발포명령자 규명 과제…제주4.3, 미군정 책임규명 과제
국경넘어 미얀마에서도 제주4.3과 광주5.18의 아픈 역사 되풀이돼

18일 광주 5·18민주묘지에서 한 시민이 참배를 하고 있다. 김한영 기자
■ 방송 : CBS 라디오 <시사매거진 제주-이인의 특별한 제주이야기>
■ 채널 : 표준 FM 제주시 93.3MHz, 서귀포 90.9MHz
■ 방송일시 : 2021년 5월 18일(화) 오후 5시 5분
■ 진행자 : 류도성 아나운서
■ 대담자 : 제주CBS 이인 기자

◇류도성>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전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현안들을 분석하는 이인의 특별한 제주이야기입니다. 오늘(18일) 73번째 시간에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 광주5.18과 제주4.3을 조명한다구요?

◆이인> 오늘(18일)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제41주년이죠. 우리나라 현대사의 비극이라는 점에서 제주4.3과도 너무 닮아 있습니다. 제주4.3과 광주5.18 같은 아픔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인데요. 지금의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류도성> 제주4.3과 광주5.18, 어떤 점이 가장 닮아 있을까요?

◆이인> 우리 군에 의해 무수히 많은 국민이 희생됐다는 점에서 두 역사는 끔찍한 비극입니다. 어린이는 물론 임산부까지도 총과 곤봉에 쓰러져가는 등 희생자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구요.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은 점도 비슷합니다.

◇류도성> 오늘(18일) 41주년을 맞은 광주5.18 민주화운동 어떤 사건인가요?

◆이인>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시해된 뒤 전두환 신군부 세력이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키며 전면에 나서자 전국에서는 신군부 집권저지와 민주주의 회복을 요구하는 시위가 잇따랐는데요. 특히 대규모 집회가 연일 이어진 광주에 신군부가 1980년 5월 17일부터 공수부대를 투입하면서 참극이 빚어졌고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이 전남도청을 급습해 시민군을 제압하면서 끝났습니다.


제73주년 제주4.3 추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 제주도 제공
◇류도성> 제주4.3 사건은 올해로 73주년이었어요?

◆이인> 제주4.3사건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를 기점으로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 그리고 군경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4.3진상조사보고서는 규정했습니다. 특히 좌우이념이 뭔지도 모르는 주민들을 빨갱이로 몰아 한꺼번에 몰살하거나 총칼로 끔찍하게 죽여 현대사의 최대 비극으로 불립니다.

◇류도성> 7년간 이어진 비극, 그래서 제주4.3 사건의 희생자가 너무 많아요?

◆이인> 지난 2000년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4.3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1만 4000여 명이 희생자로 결정됐는데요. 일가족이 몰살된 경우도 많고, 행방불명자도 많아 희생자 규모는 3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류도성> 광주5.18의 희생자 규모는 어떤가요?

◆이인> 계엄군의 총과 진압봉에 의해 숨진 광주시민은 218명이구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어디에 묻혔는지 모를 행방불명자도 363명이나 됩니다. 부상자는 5000여 명이 넘는 등 광주5.18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모두 7200여 명의 사상자가 나왔습니다.

18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두환 씨 자택앞에서 열린 '5.18 광주민주항쟁 41주년 서대문지역 제단체 기자회견'에서 진보당 서대문 단체 등 참석자들이 손 피켓을 들고 있다. 이한형 기자
◇류도성> 광주5.18과 제주4.3 모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희생자가 나왔어요?

◆이인> 광주5.18 당시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숨진 당시 11살 전재수 군이 41년만에 얼굴을 되찾았다는 소식이 있었죠. 생전 사진이 없어 5.18 묘지에 무궁화 그림만 있었는데 최근 전 군의 아버지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사진이 발견돼 묘비에 얼굴을 새겼다고 합니다. 제주CBS가 올해 4.3 73주년 특집기획 아동학살 보도에서도 살펴봤듯 4.3 당시 희생자 10명 중 2명은 어린이였습니다. 광주5.18과 제주4.3 모두 어린 아이들의 희생자가 많았구요. 더욱이 임산부들도 뱃속 아이와 함께 참혹한 죽임을 당하는 등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스러져갔습니다.

◇류도성> 두 사건 모두 이념논쟁의 희생양이었어요?

◆이인> 제주4.3 피해자와 유족들은 반세기가 넘도록 4.3을 언급하는 것 조차 꺼려했습니다. 제주도민들의 공산폭동으로 4.3을 규정한 세력에 의해 빨갱이 낙인이 찍혀 사회활동을 하는데 제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광주5.18 역시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라거나 시민들에 의해 공권력이 희생된 사건으로 둔갑시키는 등 끊임없이 허황된 주장을 펴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이념논쟁으로 끌고가 광주5.18과 제주4.3을 폄훼하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류도성> 그나마 최근 정치권에선 이념갈등을 부추기지는 않아요?

◆이인> 오늘(18일) 광주5.18 기념식에는 여야 대표가 총출동했구요. 기념일을 전후로 민주당과 국민의힘 주요 대선주자와 정치인들이 대거 광주 5.18국립묘지를 찾아 참배했습니다. 2년전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이 5.18 진상규명 공청회를 열고 5.18폭동, 괴물집단 등의 망언을 쏟아냈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 수준입니다. 제주4.3 추념일을 전후해서도 여야 정치인들의 참배가 이어졌고 막말이 사라지는 등 최근 분위기는 달라졌습니다.

◇류도성> 진상규명 등 풀어야할 과제도 많아요. 광주5.18은 어디까지 왔나요?

◆이인> '광주민주화운동관련자보상등에관한법률'이 1990년 제정돼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보상, 기념사업이 이뤄졌습니다. 또 1995년 '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특별법'이 만들어져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등 가해자들이 처벌됐습니다. 1997년에는 광주5.18이 법정기념일로 지정됐습니다. 2018년에는 진상규명특별법이 만들어졌고, 지난해에는 5.18 특별법이 개정돼서 악의적으로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행위도 처벌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제주4.3 제73주년 주제는 동백꽃이 활짝 피었습니다는 뜻의 제주어 '돔박꼿이 활짝 피엇수다'였다.
◇류도성> 광주5.18의 과제는 뭔가요?

◆이인> 최초 발포명령 책임자 규명과 계엄군의 헬기사격 여부 등이 풀어야할 과제구요. 행방불명자들에 대한 시신을 찾는 일과 민간인 학살 규명 등의 과제도 있습니다. 그래서 당시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들의 증언이 증요합니다.

◇류도성> 제주4.3은 어떤가요?

◆이인> 지난 2000년 제주4.3 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2003년 4.3사건 진장조사보고서가 만들어졌고 같은해 노무현 대통령이 정부를 대표해 공권력에 의한 주민희생을 제주도민에게 사과했습니다. 또 2018년에는 제주4.3 추념일이 지방공휴일로 지정됐습니다.

◇류도성> 해결과제는 뭔가요?

◆이인> 아직까지 제주4.3은 희생자에 대해 배보상을 하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배보상 근거를 담은 4·3특별법 전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정부가 배보상을 위한 용역에 나섰지만 언제 시작될지는 미지숩니다. 또 4.3 당시 미군정 책임에 대한 규명도 필요합니다.

◇류도성> 미얀마에서 41년전의 광주5.18이 재현되고 있다는 얘기가 많아요?

◆이인> 군부 쿠데타 세력에 맞서 미얀마 국민들이 저항운동을 벌이고 있기 때문입니요. 더욱이 군에 의해 많은 주민들의 희생되고 있는데요. 제주4.3의 비극이 광주5.18에서 되풀이됐고, 또 국경을 넘어 다시 미얀마에서 반복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가슴아픈 역사를 기억하는게 무엇보다 중요한데, 결국 제주4.3과 광주5.18의 진상규명이 선결과제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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