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뉴스]"택시운전사 김사복, 힌츠페터 옆에 묻히지 못했다"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2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김승필 (故 김사복 씨 아들)

바로 이 노래. 4년 전에 개봉해서 1200만 명의 가슴을 울렸던 영화죠. 택시 운전사 삽입곡입니다. 이 영화는 5.18 당시 참상을 세계에 알린 두 실존인물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습니다. 독일인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 그리고 기자를 태우고 광주로 향했던 택시기사 김사복 씨. 이 영화 통해서 김사복 씨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김사복 씨도 힌츠페터 기자 옆에 5.18 묘역에 안장해야 되는 거 아니냐 하는 목소리가 굉장히 높았어요. 4년 지났습니다. 김사복 씨 묘역은 어떻게 됐을까요? 오늘 화요일의 코너, AS뉴스에서 그 뒤를 한번 따라가보겠습니다. 故 김사복 씨의 아들 김승필 씨 연결을 해보죠. 김승필 선생님 안녕하세요.

◆ 김승필> 네, 안녕하세요.

◇ 김현정> 네, 5월 18일 아침에 연결하니까 또 느낌이 더 다르네요.

◆ 김승필> 네, 그렇습니다.

◇ 김현정> 일단 제일 궁금한 것부터. 아버님 김사복 선생님의 묘소 지금 5.18 묘역으로 이장을 하셨습니까?

◆ 김승필> 아니, 아직 못 했습니다.

◇ 김현정> 못 하셨어요?

◆ 김승필> 네.

◇ 김현정> 어디 계세요, 지금은?



◆ 김승필> 이장 승인을 2년 전에 받았었는데요. 두 분을 나란히 모시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승인을 받았는데 힌츠페터 씨 묘 바로 옆에 화장실하고 정화조가 묻혀 있습니다.

◇ 김현정> 5.18 묘역 안에 화장실과 정화조 옆에 하필이면 저희가 사진 보여드리고 있는데 저 건물이 화장실이군요.

◆ 김승필> 네. 그렇습니다.

◇ 김현정> 바로 그 바로 그 옆에 힌츠페터 씨 묘소가 있어서.

◆ 김승필> 네, 그래서 저희가 아버지를 그쪽으로 모시기는 적당치 않은 장소라고 해서 그래서 화장실을 옮겨 주십사 하고 시장님께 부탁을 드렸었고요. 그런데 시장님께서 그렇게 이전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지금은 어떻게 진행이 되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 김현정> 아니, 그러면 화장실 옆이라 냄새 나고 그랬어요?

◆ 김승필> 그럼요. 여름에는 냄새가 많이 나죠.

◇ 김현정> 어쩔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 그러면 힌츠페터 씨 묘를, 힌츠페터 기자 묘를 그것을 이장을 해서 좀 안쪽으로 두 분이 같이 이렇게 모시는 방법은 없었을까요.

◆ 김승필> 있습니다. 저는 어디든 간에 저희 아버지와 힌츠페터 씨, 두 분이 나란히 모시기만 되어지면 그거는 감사할 일입니다.

◇ 김현정> 그런데 힌츠페터 씨 쪽에서 이장을 원치 않으셨던 걸까요, 아니면.

◆ 김승필> 아니, 그게 아니고 사실은 두 분이 나란히 모실 수 있는 장소가 마땅치가 않았었습니다.

◇ 김현정> 그래요?

◆ 김승필> 네.

◇ 김현정> 그래서 결국은 지금 이쪽으로 안장을 못 하신 상태. 그러면 아버님하고 힌츠페터 씨하고 따로 묻히는 방법은요? 따로 5.18 묘역에 묻히는 방법.

영화 '택시운전사' 속 독일기자와 택시기사의 실존인물인 위르겐 힌츠페터(왼쪽)와 김사복(오른쪽)을 나란히 담은 흑백사진. [김사복 씨의 아들 김승필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연합뉴스


◆ 김승필> 그거는 제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 나란히 모시고 두 분에 대한 그런 나름대로의 역할들을 국민들한테 알리고자 하는 그런 생각이 좀 있습니다.

◇ 김현정> 두 분이 그때 함께 활동하셨던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이고 그 두 분이 나란히, 나란히 안장되시기를 바라다보니까 따로 이렇게 하는 것은 글쎄다 하는 생각을 하셨던 거예요.

◆ 김승필> 네. 그렇습니다.

◇ 김현정> 알겠습니다. 이게 아마 사연들이 좀 있을 거고 고민을 하고 있는 걸로, 이장을 반대하는 상황은 아니니까 얼마든지 이장 승인은 했습니다마는 나란히 묻힐 장소가 마땅치 않다. 화장실 옆인데 화장실 치우기는 쉬운 게 아니다, 이 상태에 걸려 있는 거니까 해결책이 나왔으면 좋겠네요.

◆ 김승필> 네, 그렇습니다.

◇ 김현정> 그건 그렇고 연결된 김에 앞서서 제가 미스 미얀마 연결을 했거든요. 혹시 들으셨어요, 선생님?

◆ 김승필> 네, 들었습니다.

◇ 김현정> 들으셨죠? 선생님께서 그 미얀마와 관련된 지금 뭔가 활동을 하고 계시다 제가 들어서요.

◆ 김승필> 네. 제가 5.18 서울기념사업회 홍보대사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미얀마 국민들을 돕는 그런 행사도 하고요. 그리고 또 소규모 단체들이 모여서 미얀마 돕기 운동도 하고.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암암리에 독립자금 식으로 이렇게 전하고 하고 있는 중입니다.

미스 미얀마 타-텟텟 (Htar Htet Htet)


◇ 김현정> 아까 미스 미얀마 타 텟텟 씨가 그랬거든요. 펜으로든 총으로든 돈으로든 어떤 식으로 도울 수 있는 것을 도와야 한다. 도와주십시오. 그런데 돈으로 돕고 계시는군요.

◆ 김승필> 그리고 저는 아버지로 인해서 국민들에게 조금 알려진 사람이다 보니 미얀마의 실체를 좀 또 알리고 다니고 그러고 있습니다.


◇ 김현정> 그러시군요. 그 당시 영화 개봉하고 나서 저랑도 인터뷰를 여러 번 하셨어요. 김승필 씨가. 그 기억이 납니다. 그래요. 그나저나 제가 4년 전 인터뷰할 때 김 선생님이 굉장히 괴로워하셨던 게 5.18에 대해서 막말하는 사람들, 또 아버지에 대해서도 막 안 좋은 말 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 때문에 괴롭다 그러셨거든요.

◆ 김승필> 네.

◇ 김현정> 4년 지난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습니까? 어떻습니까?

◆ 김승필> 네, 4년 전보다는 좀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실질적으로 5.18에 대해서 인식하는 그런 의식들은 사실은 좀 많이 아직도 바뀌지 않지 않았느냐, 그런 생각을 좀 많이 합니다.

◇ 김현정> 막말하는 사람은 사라졌는데 인식은 아직도 멀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 김승필> 그러니까 사실은 5.18은 소수의 욕망이 가득 찬 사람들이 그렇게 일으킨 큰 사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사실은 그거는 빨갱이도 폭도도 어떤 불손 세력이 주도한 사건이 아니거든요.

◇ 김현정> 물론이죠.

◆ 김승필> 그야말로 살기 위해서, 지키기 위해서 그 어떤 몸부림을 친 저항이었습니다.

◇ 김현정> 민주화를 위한 저항.

◆ 김승필> 그렇죠. 그런데 간간히 5.18이 정치라고 얘기도 하고요. 그런 얘기를 들을 때는 정말 가슴이 참 많이 아픕니다.



◇ 김현정> 게다가 그런 분들 그때 계셨던 게 제가 기억이 나요. 뭐냐 하면 김사복 씨가 택시운전 한 거 정도 가지고 뭐 5.18 민주화운동에 기여한 것처럼 5.18 묘역에까지 이분을 안장시켜드리고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 힌츠페터 기자한테 교통편의 제공한 정도 아니냐, 이런 목소리도 사실 있었는데 뭐라고 답하시겠습니까?

◆ 김승필> 사실은 아버지의 행적, 역할이 힌츠페터 씨 저서에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 김현정> 그렇죠.

◆ 김승필> 그야말로 20, 21일 날 광주로 들어가시기 전에 광주를 들어가기 위한 두 분의 충분한 상의들이 있었고요. 그리고 20, 21일날 전쟁터와 같은 곳을 들어가시는 그 일들은 전쟁터의 작전과 같은 방식으로 들어가셨거든요. 그리고 21일날 나오셔서 22일 날 힌츠페터 씨는 동경에다가 필름을 떨어뜨리시고 3시간 만에 돌아오시고. 23일 날 그 현장을 두 분이 다시 들어가셨어요. 그러니 살상 현장을 알고 두 번째 들어가신 그런 어떤 행동들은 그야말로 어떠한 소신이 있지 않으면 그런 행위를 할 수 없다라고 하는 생각을 하는 거죠.

◇ 김현정> 그래요. 그래요. AS뉴스 택시운전사의 그 분, 김사복 씨. 5.18 묘역에 안장해드리자. 그것도 힌츠페터 기자 옆에 안장해 드리자, 그거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다 해서 그 당시에 움직임이 있었는데 4년 지난 지금 과연 어떠한 변화가 있는지 오늘 한번 AS뉴스에서 따라가 봤습니다. 김 선생님, 오늘 감사드리고요. 5.18을 생각하면서 미얀마를 돕고 계시다는 그 운동, 저도 응원하겠습니다.

◆ 김승필> 감사합니다.

◇ 김현정> 고맙습니다.

◆ 김승필> 네, 감사합니다.

◇ 김현정> AS뉴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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