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1995년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했고, 2년 뒤 5·18이 한국 민주화 발전에 기여한 의미를 인정해 5월 18일을 법정 기념일로 지정했다. 하지만 5·18이 '북괴의 준동'이라는 허위주장으로 '오월, 광주'를 퇴색시키려는 시도들은 현재진행형이다.
북한군 침투설을 앞장서 주장해온 극우인사 지만원씨는 지난해 2월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네 달 후 같은 주장을 담은 '북조선 5·18 아리랑 무등산의 진달래 475송이'란 책을 펴냈다. 최근에는 경북 경주 위덕대학교의 박훈탁 교수가 "5·18이 북한군이 저지른 범죄행위란 주장은 상당한 과학적 근거와 역사적 증언·증인을 갖고 있다"는 내용의 강의를 해 논란이 됐다.
광주지법은 지난 2월 "지씨가 5·18이 광주 시민 주도로 발생한 민주화 운동임을 부인하고 북한과 내통해 일어난 폭동으로 설명해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며 5·18단체가 신청한 출판·배포금지 가처분신청을 인용했다. 5·18기념재단은 박 교수를 5·18 역사왜곡처벌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공인(公認)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소모적 논쟁에 휩싸이는 5·18의 현주소는 역으로 그만큼 건실한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앞서 5·18의 영향권 아래 자란 광주·전남지역 교사들은 5·18기념재단과 함께 5·18을 학교현장에서 가르칠 수 있는 교과서를 만들자는 데 뜻을 모았다. 지난 2019년 교재 개발을 마친 재단과 광주시교육청은 5·18 '40주년'이었던 지난해 5월 광주 상무고, 두암중에서 해당 교과서를 시범교재로 활용했다. 지난 2월 고교용으로 발간된 인정교과서는 올 1학기부터 상무고에서 '5·18민주화운동' 교과목의 정식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화순으로 가는 버스를 집단발포해 민간인이 학살당한 바로 그 마을인데 그 중 유일한 생존자였던 분이 저희 동네에 사셨어요. 그분이 그때 그 사건으로 인해 시각장애를 가지시게 됐는데, 처음에는 어떤 사연인지 모르다가 1987년 이후 5·18 다큐멘터리가 나오면서 그분의 사연을 알게 돼 굉장히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가족 중 특별히 5·18에 직접적으로 연루된 이는 없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듣고 접했던 광주의 이야기는 성장과정의 자양분이 됐다. 박 선생님은 "5·18이 제게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역사에 관심을 갖게 하고 역사교사가 되는 데 분명히 영향을 미친 것 같다"며 "살면서 본 오월의 광주는 매우 우울하고 비통한 느낌이었다. 한두 다리를 건너면 다 얽혀있는 분들이다 보니 전야제·추모식 때 정말 상갓집에 왔다는 기분도 들었다"고 말했다.
이번 교과서에는 박 선생님을 비롯해 구희남 선생님(무진중 사회교사), 강남진 선생님(신용중 역사교사), 김영주 선생님(광주여고 역사교사), 백형대 선생님(녹동고 역사교사), 양홍석 선생님(고흥고 역사교사), 장용준 선생님(전 함평고 역사교사) 등 7명의 교사가 참여했다. 책 분량은 총 145쪽으로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이다. 인정교과서는 대단원·중단원·소단원 등의 형식을 갖춘 일반 교과서와 달리 5·18의 이해를 돕는 '22개의 질문'으로 구성됐다.
박 선생님은 "사실 저도 학교에서 5·18을 제대로 배워본 적은 없다. 대학교 가서 역사학과를 다녔기 때문에 그때 가서 선배들과 (관련)얘기를 좀 더 들을 수 있었다"며 "한신대 학생이었던 고(故) 유동운 열사와 이한열 열사가 저희 진흥고 출신이었단 점도 교사가 되고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됐다"고 밝혔다. "보수라고 하기도 뭐하지만, 5·18 관련 공세 등은 사실 교과서를 쓰면서 별로 걱정하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그들이 말하는 왜곡된 주장에 대해 우리 아이들이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어서 현장에서 우리가 어떻게 (5·18을) 얘기하고 전달할 것인가, 가 가장 큰 고민이었죠."
집필에 참여한 무진중의 구희남 선생님도 특정시기의 역사를 다룬다는 부담은 오히려 상대적으로 적었다고 털어놨다. 그보다는 내부적으로 방향성에 대한 고민과 논의가 더 치열하게 이뤄졌다. 구 선생님은 "집필 과정에서 다양하게 토론과 논쟁을 했지만 크게 충돌한 지점은 거의 없었다. '최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다뤘으면 좋겠다', '양측의 의견이 있을 때 중립적으로 다루고 아이들과 얘기할 수 있게끔 하자' 등의 의견은 반영했다"고 밝혔다.
"피해자의 트라우마에 관련된 부분은 꼭 들어가야 한다고 공통적으로 의견을 모았어요. 아주 사소하지만 또 의미 있는 건 '그때 (진압에) 참여했던 군인들을 우리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같은 부분도 담겼다는 거예요. (집필진 사이) 그 사람들을 과연 가해자로 볼 수 있느냐, 에 대한 논쟁들은 있었던 게 사실이죠."
실제로 교과서가 10번째로 선정한 질문은 '상관의 부당한 명령에 저항한 군인은 없었나요?'이다. 교과서는 "군사독재 시절 군인이 상관 명령에 불복종한다는 것은 너무 두려운 일이었고, 함께 해야 한다는 동료들의 압력도 감당하기 어려웠다"며 '계엄군 전체'를 지휘부와 똑같은 가해자로 몰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표를 던진다. 당시 계엄군으로 '상관이 주남마을 민간인 사살명령을 내렸다'고 1989년 양심고백을 한 최영신씨, 군부의 강경진압 명령을 거부한 故안병하 전남경찰국장 등의 사례도 실렸다.
교과서에는 뜨거운 감자인 '역사 부정'도 하나의 장(章)으로 포함됐다. 17번째 주제인 '역사왜곡,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와 21번째 질문인 '5·18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요?' 등이다. 박 선생님은 "객관적인 데이터는 아니지만, 전국역사교사모임에서 전국적으로 100여명이 넘는 선생님들이 설문을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수도권이나 타 지역에선 실제로 아이들이 '5·18 때 북한군이 내려온 거 아니에요?', '실제 유공자도 아닌데 돈 받기 위해 유공자라고 하는 거 아니에요?' 등의 질문을 한다고 하더라"며 "심지어 학부모나 학교 선생님들 중에도 그런 얘기를 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고 부연했다.
구 선생님은 '일베'(일간베스트) 등 일부 커뮤니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그릇된 정보를 토대로 학생들이 진위 여부를 물어온 적이 있었단다. 그는 "'선생님, 이런 것도 사실 아니에요?'라고 물어보는 경우들이 있다. 어느 정도 그걸 사실로 믿는 듯한 상황"이라며 "그에 대해 무턱대고 아니라고 하기보다는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사실은 이렇다'고 학생들에게 자료를 찾아 공유해주었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회고록에서 헬기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故조비오 신부를 가리켜 '신부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해(사자명예훼손 혐의) 항소심 재판 중인 전두환 전 대통령 등에 대한 이야기도 적극 나누고 싶다고 했다. 구 선생님은 "판결은 재판부의 몫이니 '옳다, 그르다'를 말하긴 어려울 것 같지만 전씨의 회고록에 나온 표현이 과연 올바른지 등에 대한 부분"이라며 "개인의 주장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친구들도 있겠지만 언론의 자유가 있다 해서 모든 말들을 다 보호해줄 수 있는지 등 5·18 왜곡내용도 (수업시간에) 언급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박 선생님은 "물론 왜곡과 혐오가 심해지고 있기 때문에 제재 방안도 필요하지만 결국 교육의 영역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법적 처벌이 과연 그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당장의 (단기적) 효과가 있을 수는 있지만 궁극적으로 사회가 이런 사람들의 문제가 나올 때마다 모든 사안을 법으로 처벌할 순 없지 않나"라며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인권, 평화, 민주주의에 대한 얘기를 자주 나누고 경험한다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학교의 책임이 크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5·18 인정교과서가 21세기에도 유효한 가치를 공유하는 주춧돌이 되기를 바란다. 박 선생님은 "제가 농담처럼 아이들이나 선생님과 하는 얘기 중 하나가 제가 4·19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우리 아이들이 5·18에 느끼는 감정과 비슷할 거라는 것"이라며 "물론 민주주의의 중요한 사건이긴 하지만 제게도 마치 책에서나 보던 저 옛날 얘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5·18과 현재, 미래의 '접점'을 찾아주는 작업이 더 절실했다.
"(교과서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5·18 단체들이 세월호 유가족을 왜 격려했을까, 라는 파트에요. 집필진이 굉장히 인상 깊었던 게 5월 어머니회에서 진도 팽목항에 '당신 원통함을 내가 아오. 힘내소, 쓰러지지 마시오'라고 현수막을 걸고, 세월호 유가족을 찾아 위로했던 일이에요. 나의 문제, 우리 가족의 문제만 중요한 게 아니라 다른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연대할 수 있는 5월 어머니들의 모습이 정말 5·18 정신 아닌가, 우리 아이들이 그 모습을 배워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죠."
보다 적극적인 '액션'이 수업의 종착지로 설정된 경우도 있다. 사회 수업시간 중 10시수를 '5·18 프로젝트 수업'으로 진행 중인 구 선생님은 학기가 마무리될 즈음 5·18 민주화운동을 헌법 전문에 넣자는 취지의 청와대 국민청원 글을 올릴 계획이다. 5·18 수업을 함께한 학생들이 각각 작성한 청원글을 토대로 법률 자문을 받아 최종 게시글에 반영하고, 국회의원들에게 개별적으로 메일도 보낼 방침이다. 물론 이에 반대하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학생들의 의견도 충분히 수렴할 예정이다.
"사회시간에 기본적으로 참정권 수업을 해요. 그럼 사실 이론적으로 배운 것에 멈추지 않고 학생들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실습을 하는 게 맞잖아요. 아이들이 가장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부분이 청와대 국민청원이라고 생각했어요. 5·18 민주화운동의 결과로 6월 민주항쟁이 촉발됐고, 유월 항쟁에 의해 헌법이 개헌됐잖아요. 현재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고, 아이들이 그 정도 활동은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5·18 인정교과서가 다양한 역사교과의 개설로 확장됐으면 하는 바람도 내비쳤다. 박 선생님은 "고등학교의 경우 2025년 '고교학점제'를 전면시행키로 했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원하면 선택교과를 개설할 수 있도록 해 상무고에서도 5·18을 인정교과로 할 수 있었다"며 "교육과정의 변화를 보면 각 지역별로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아울러 "제주는 4·3사건, 부산은 당연히 부마항쟁 등 5·18과 같이 (교과서를) 개발해 아이들과 같이 나누는 것"이라며 "5·18만 (수업을) 하자는 게 아니라 근·현대 민주주의 역사를 지역별로 개발, 발굴해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5·18을 얘기할 때 2017년까지는 '분노'라는 감정이 굉장히 컸어요. 아이들에게 신군부나 계엄군이 보여줬던 만행을 얘기하며 분노했던 게 이전 제 모습이었다면 최근에는 5·18을 통해 미래를 이야기해요.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라는…. 그래서 분명히 이뤄져야 할 진상규명과 별개로 나눔, 배려, 연대와 같은 5·18의 정신을 더 얘기하고 싶어요. 총을 들지 않아도 주먹밥을 만들고 나눈 사람들, 헌혈하기 위해 병원에 줄지어 서있던 시민들 등 학교 현장에서 수업하실 때 저희 교과서가 많이 쓰였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