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터뷰]안성기가 말하는 5·18…그리고 진정한 반성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감독 이정국) 오채근 역 배우 안성기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에서 오채근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안성기. 엣나인필름 제공
※ 스포일러 주의

"늦었지만 이제는 해야 할 일을 하려고 합니다."

오채근(안성기)은 이미 늦었지만, 더이상 늦지 않기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기로 한다. 바로 '반성'이며 '고백'이다.

대리운전 기사로 일하는 오채근은 한 손님의 호출이 있으면 다른 호출도 마다하고 달려간다. 바로 왕년의 투 스타인 박 회장, 박기준(박근형)이다. 박 회장의 호출만을 기다리는 오채근에게는 숨겨진 사연이 있다. 1980년 5월 광주에 얽힌 채근의 과거는 지금까지도 그에게 해야 할 일을 하라고 이야기한다.


"반성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오채근은 반성 없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가해자들을 향해, 반성 없는 이들로 인해 지금까지도 과거의 아픔을 안고 사는 피해자들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전한다.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에서 오채근 역을 맡은 배우 안성기는 스크린을 통해 역사와 현재의 가해자들을 향해 이러한 반성을 이야기한다. 5월의 어느 날, 화상으로 만난 안성기를 통해 그가 이 영화에 출연하고자 한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영화와 오채근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들어봤다.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 스틸컷. 엣나인필름 제공
◇ 안성기,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되어 5월 광주를 말하다

'아들의 이름으로'는 '부활의 노래'(1990)로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최초의 장편 극영화를 선보였던 이정국 감독이 다시 한 번 5월 광주에 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영화는 1980년 5월 광주에 있었던 오채근이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반성 없는 자들에게 복수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영화에 출연하게 된 이유를 묻자 안성기는 "시나리오 자체"라고 바로 답을 들려줬다. 그는 "물론 광주 이야기가 우리 근대사의 굉장히 비극적인 일이고 영화적인 소재이긴 하지만, '아들의 이름으로'라는 작품이 갖는 작품성, 이런 것이 저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말했다.

안성기는 이번 작품에 노개런티로 출연한 데 더해 투자자로까지 이름을 올렸다. 이 같은 결정을 한 이유에 관해 그는 "같이 힘을 합하자는 그런 의미로 받아들였다"라고 짧지만 많은 의미를 담은 대답을 내놓았다.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 스틸컷. 엣나인필름 제공
그가 힘을 보태고자 한 이번 영화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과거를 잊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들, 과거를 책임지지 않는 자들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반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묵직하고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질문에서 안성기가 맡은 오채근은 매우 미묘한 위치에 놓여 있다.

5·18은 아직도 피해자가 존재하고, 기억하는 이들이 많은 역사적 사건이다.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입장에서 5·18의 비극과 반성에 관해 이야기하고, 가해자를 단죄하는 인물이 바로 오채근이다. 오채근은 역사적 비극에 대한 양심과 죄책감, 피해자들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아들에 대한 개인적인 미안함이라는 복잡한 감정들 사이를 오간다.

안성기는 자신이 연기한 오채근에 관해 "1980년도에 광주에 있었던, 가해자였던 인물이다. 이 사람이 가해자이긴 하지만, 피해자이기도 하다"며 "여러 가지 감정이 혼재된 인물"이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연기하기도 쉽지는 않았다.

그는 "나중에 복수까지 가야 하는 상황이 되다 보니 오채근의 행동이나 생각이 감정적이어선 안 될 것 같았다. 영화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그런 것이 차곡차곡 쌓여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단계적으로 캐릭터가 쌓여져 나중에 복수까지 가는 데 설득력과 어떠한 감정이 관객에게 잘 전달돼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차분하고 절제된 감정도 필요했다"고 이야기했다.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에서 오채근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안성기. 엣나인필름 제공
◇ 왜 5·18을 계속 이야기해야 하는가에 안성기가 답하다

이번 영화에는 안성기를 비롯해 윤유선, 박근형, 이세은 등 베테랑 배우들이 출연한다는 점에서 반갑다. 무엇보다 광주시민들이 함께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남다르다.

광주시민들은 영화의 70% 이상이 광주 현지에서 촬영된 '아들의 이름으로' 촬영 장소들을 무상으로 제공하는가 하면, 영화 속에 평범한 시민들의 모습으로 출연을 하기도 했다.

전문 연기자가 아닌 많은 일반인과 호흡을 맞추면서도 감정의 흐름을 이어나갔다는 점에서 안성기가 선보인 연기는 더욱 특별하다. 그는 "시민들과 호흡을 잘 맞추기 위해서 내가 굉장히 편안하게 해드리려 했다"며 "그분들 덕에 사실감 있고, 진실성이 좀 더 보이는 영화가 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처럼 '아들의 이름으로'를 위해 광주시민들까지 힘을 더한 이유는 이정국 감독이 던진 '왜 여전히 1980년 5월의 광주인가'라는 질문과도 맞닿아 있다. 여전히 1980년 5월 광주를 부정하고,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한 것을 인정하기는커녕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 스틸컷. 엣나인필름 제공
안성기 역시 "이 영화의 메시지는 그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아픔과 고통은 남아 있다"며 "우리가 더 나은 미래로 가기 위해서는 지금 이 영화처럼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고 이렇게 해서 화해하는 걸로 가야 하지 않나. 이런 것이 바로 영화의 주제"라고 강조했다.

5·18 민주화 운동을 계속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에 관해서도 그는 "아직 근본적으로 해결이 안 됐기 때문에 계속 이야기하는 것"이라며 "다 반성하고 용서를 구했으면 이런 식의 이야기가 아니고 아마 다른 식의 영화가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다음에는 미래에도 이런 소재의 영화가 좀 더 나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안성기는 많은 관객이 '아들의 이름으로'를 만나고, 5월 광주를 기억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아직도 오르락내리락하는 5·18 광주 문제가 과연 어떤 것인가 하는 것도 이 영화를 통해서 아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떤 해결 방법도 조금 이렇게 제시한 것 같고요. 이 영화를 통해서 많은 사람이 반성하고 용서하고 화해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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