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머리를 조아리며 무마용 대책을 내놓고 나면 그 일들은 또 금세 잊혀질테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3일 산업재해로 숨진 23살 청년 고 이선호씨의 빈소를 찾았다.
이 청년노동자는 대학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평택항 부두에서 일용직으로 일을 하다가 지난달 22일 변을 당했다.
어버이 날인 지난 8일엔 현대중공업과 현대제철에서 작업을 하던 40대 가장 두 명이 유명을 달리했다.
변변한 안전장비도 없이 모두 혼자 작업을 하다 추락하거나 기계에 끼거나 깔려 세상을 떠나야 했다.
정치인들도 앞다퉈 빈소를 찾아 '재발방지책' 마련을 다짐했고 고용노동부와 사측도 '긴급점검'과 '개선방안'을 약속했다.
부산떨기에 급급한 무마용 대책일 뿐 진정성은 그 누구,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고용노동부는 최근 지난해 산업재해로 882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고 발표했다.
질병에 의한 사망자 수까지 합하면 2천 명이 넘는다는 게 노동계의 시각이다.
산재사고 사망자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나마 꾸준히 감소세를 보였지만 지난해에는 오히려 전년보다 27명이 증가했다.
코리안 드림을 꿈꿨던 외국인 노동자도 전체의 10.7%인 94명이 이역만리 타국에서 생을 안타깝게 마감해야 했다.
사고도 대부분 떨어짐, 끼임, 부딪힘, 물체에 맞음 등과 같은 막을 수 있는 것들이다.
대통령이 언급한 어처구니없는 '후진적인 산재사고'의 전형적인 모습들이다.
반복되는 산재사고를 막지 못하는 데는 정부의 허술한 관리감독 시스템이 한 몫을 하고 있다.
산재사고가 발생해 노동부가 집중점검을 했는데도 3개월 만에 다시 같은 사고가 나고, 근로감독이 종료된 지 하루 만에 노동자가 숨지기도 한다.
사측에 감독 계획을 미리 알려주고 서류만 검토하는 '수박겉핥기 식의 감독으로는 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은 뒷전으로 밀린채 입법과정부터 이미 누더기가 돼 버렸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선호씨 사고를 계기로 경영책임자의 처벌 등 삭제됐던 조항들이 개정될 움직임이 시작됐다고 하니 결과를 지켜볼 일이다.
지난 2017년 5월 노동계는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에 큰 기대를 걸었던 게 사실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에서부터 차별금지, 최저임금 1만원 달성, 위험의 외주화 금지 등 굵직한 현안들이 공약으로 걸렸기 때문이다.
'제2, 3의 김용균과 이선호'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앞으로도 제대로 쉬지도 충분한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고 별반 나아질게 없다는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옥탑방에서, 반지하 월세를 전전하며 아르바이트에 목숨을 거는 청년들도 수백 만에 이르는 현실이다.
아흔 아홉 마리의 양보다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선 예수의 가르침, 그게 문재인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일이 반복될 때만 기계적으로 제시되는 여론 무마용 상투적 대책으로는 세상은 달라질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