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 리뷰]치유를 말하는 스릴러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외화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감독 테일러 쉐리던)

외화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 스포일러 주의

사람으로 인해 고통받지만, 사람을 구하는 것 역시 결국 사람이다. 여러 의미에서 말이다. 이러한 말의 뜻을 중첩적으로, 그리고 스릴러적으로 풀어낸 것이 외화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이다.

공수소방대원 한나(안젤리나 졸리)는 화재 현장에서 세 명의 아이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런 한나는 스스로에게 고통을 주며 위안을 얻는다. 일부러 위험한 행동을 하고, 자신을 고립시킨다. 일선 현장에서 마치 유폐된 것처럼 물러나 몬태나의 울창한 삼림 한복판에 쓸쓸히 서 있는 화재감시탑으로 홀로 향한다.

거대한 몬태나 숲을 향해 홀로 오는 또 하나의 인물이 있다. 어린 소년 코너(핀 리틀)는 정부 고위 관계자의 비리를 파헤친 아버지가 킬러들에 의해 살해당하자 살기 위해 혼자 숲으로 들어온다. 자신을 죽이고자 하는 자들을 피하다 만난 이가 바로 한나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코너는 한나에게서 믿음을 발견하고, 그와 함께 킬러들의 추적을 피해 아버지가 남긴 증거를 세상에 알리고자 도망친다. 그리고 한나는 자신의 트라우마이자 모든 것을 집어삼킬 산불과 킬러로부터 코너를 지켜내야 한다.

외화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영화는 현시대 영미권 스릴러 마스터들이 격찬하고 있는, 차세대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를 이끌어 갈 가장 촉망받는 작가 마이클 코리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영화의 기본 틀은 범죄 스릴러지만, 내용은 치유물에 가깝다.


과거 산불 앞에서 자신과 동료는 물론 살려 달라 외치는 소년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한나. 그리고 아버지의 참혹한 죽음으로 인한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아버지에 이어 자신의 목숨마저 노리는 킬러들로부터 도망쳐야 하는 코너. 상처받고 홀로된 두 존재는 아픔을 가진 자들만의 믿음과 연대로 인간과 자연이 주는 거대한 공포에 맞선다.

한나가 코너를 지키려는 과정은 그가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채로 자신을 갉아먹고 있는 트라우마를 마주하는 것과도 같다. 마치 과거의 죄책감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죄책감을 놓아둔 채 도망가기만 할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바라보고 차근차근 스스로가 풀어나가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외화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자연과 인간의 폭력에 맞서는 두 존재는 결코 그들처럼 거대하거나 막대한 힘을 가진 존재가 아니다. 평범하고, 어리고, 심리적으로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는 나약한 인물들이다. 안팎의 두려움과 공포, 죽음에 대한 위협과 트라우마라는 복잡한 감정에 놓인 인물이기도 하다.

한나는 산불이라는 자연이 주는, 코너는 킬러라는 인간이 주는 두 가지 폭력적인 공포와 대면하는 존재다. 아이러니하게도 한나가 마주하는 두 번의 산불 중 후자는 코너의 목을 죄어오는 킬러들이 낸 인위적 산불이다. 산불과 킬러들은 동시에 두 사람을 압박하는데, 죽음의 속성을 지닌 두 종류의 폭력이 갖는 중층적인 구조가 긴장을 한껏 끌어올린다.

이러한 스릴 속에서 영화는 동시에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는 자들이 서로를 구원하는 과정을 그린다. 이를 통해 내외적 두려움을 극복하는 과정도 보여준다. 평범하고 나약한 존재지만 거대한 폭력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폭력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은 같은 평범한 존재, 그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과 믿고자 하는 마음의 연결이다.

이처럼 영화는 인물과 그들을 둘러싼 외부적 환경, 그리고 각 인물의 내적 상황까지 인간의 본성과 인간성, 자연의 모습 등 다양한 층위와 엮어내고 비유하려 한다. 이러한 연결과 비유, 각각이 가진 속성 등이 다른 스릴러와 다른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만의 차별점이다.

외화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다만 영화는 원작을 각색하는 과정에서 치유에 집중하면서 범죄 스릴러로서의 긴장보다는 내적 두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긴장에 집중한다. 그렇기에 치유물 속성이 강한 스릴러로 변했고, 테일러 쉐리던 감독의 전작에 대한 기대를 안고 보는 이들에게는 다소 느슨한 스릴러로 다가올 수 있다. 또한 원작에 대한 기대가 있는 이들이라면 영화는 조금 다르게 다가올지 모른다.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배우들 연기다. 특히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컴백한 안젤리나 졸리가 트라우마를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섬세한 감정 연기가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의 영화적 약점을 극복하도록 돕는다. 핀 리틀 역시 복잡한 상황과 내면에 놓인 어린 코너를 잘 그려냈다.

또한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보안관 이든(존 번탈)의 아내로 나온 메디나 생고르가 눈에 띌 것이다. 킬러들의 폭력에 맞서는 그의 모습이 안젤리나 졸리의 활약 못지않게 인상 깊게 다가오는 덕이다.

99분 상영, 5월 5일 개봉, 15세 관람가.
외화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포스터.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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