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이른바 '북한 특수군 침투설'과 관련해서도 실제 북에서 내려왔다고 주장한 김명국(가명)씨는 최근 "사실이 아니다"라는 취지로 진술을 뒤집은 것으로 파악됐다.
12일 조사개시 1주년을 맞은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진상조사위)는 서울 중구 저동 진상조사위 대강당에서 조사성과 등을 보고하는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같이 밝혔다. 5·18 당시 군부의 발포명령과 헬기 사격여부를 비롯해 민간인 학살과 암매장 등을 조사하고자 출범한 진상조사위는 지난 2019년 말 출범해 5개월 만인 지난해 5월 12일 조사과제 7개를 결정하면서 활동을 개시했다.
또다른 투입부대인 제11공수여단의 경우, 5월 21일 오후 1시경 전남도청 앞에서 벌어진 집단발포 직후 금남로 주요건물 옥상에 저격수를 배치하고 시위대를 향해 '조준 사격'을 한 사실을 인정하는 진술도 확보했다.
진상조사위 송선태 위원장은 "M60 기관총과 M1 소총의 조준경 부착사격은 1980년 5월 20일 광주역 일원의 총상 사망자들과 1980년 5월 22일 이후 광주교도소 일원에서 발생한 총상 사망자들의 사망원인이 일부 칼빈총 총상으로 분류된 의혹의 진실을 규명하는 데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진상조사위는 탄도학 등 관련분야 전문가들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전문기관에 이같은 진술내용을 의뢰해 추가로 정밀분석을 진행할 예정이다.
진상조사위는 현재까지 최소 총 55구의 시신을 추적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신의 사후수습을 담당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체처리반'(가칭)을 조직적으로 운용했다는 의혹도 조사 중이다. 송 위원장은 "현장에서 암(가)매장을 지시·실행, 목격했다는 계엄군 중 제3공수여단 51명의 증언과 주남마을 제11공수여단 4개 팀이 광주에 다시 내려와 사체수습에 참여했다는 증언에 기초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2013년 자신이 5·18 당시 북한군으로 광주에 침투했다고 주장해 논란이 된 탈북민 김명국(가명)씨가 "사실 광주에 간 적이 없다"는 '양심 선언'을 한 사실도 드러났다. 진상조사위는 그에 대한 조사를 통해 유의미한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송 위원장은 "김씨의 진술은 그동안 위원회가 국가정보원과 국방부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내용과 연계해 북한 특수군 침투의 가능성을 검증하는 자료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진상조사위는 그간 끊임없이 제기돼온 '북한 특수군 침투설'을 두고 군(軍)과 정보기관에서 보유한 정보자료·교범·교훈집 등과 대조해 내용을 분석하고 있다. 또 북한의 로동신문·조선중앙통신 등 관련문건과 기타 공개자료를 통해 조사를 보완하는 한편 주한 미국 대사·국무부·국방부·CIA 등 미국 정부문서를 분석해 주장의 진위를 파악 중이다.
송 위원장은 "시위대의 무기고 공격은 당시 전라남도 26개 시·군 중에서 진도군과 신안군을 제외한 24개 시·군에서 발생했다"며 "광주의 실상을 알리고 무기를 획득하기 위해 시위대가 광주 외곽으로 진출하면서 총 100개소의 무기고를 공격해 60개소에서 무기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항간에는 당시 전남도청 지하실에 '8톤 분량의 군사용 TNT가 조립돼 설치되어 있었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군사용 TNT가 아닌 민수용 다이너마이트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진상조사위는 폭발력과 폭발 가능성 등에 대해서도 그간 알려진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며 과학적 검증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진상조사위는 1980년 5월 광주에 투입됐던 2만 353명의 계엄군 중 10%인 2천명 이상으로부터 의미 있는 진술을 확보하겠다는 방침이다. 지금까지 200여 장·사병들로부터 확보한 진술로 인해 진압작전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재구성하며 '발견적(heuristic) 진실'에 다가가고 있다는 자평도 내놨다.
진상조사위가 직권조사 중인 사건은 5·18 당시 최초발포와 집단발포 책임자 및 경위조사를 포함한 12개 사건이다. 올 하반기에는 5·18민주화운동을 은폐·왜곡·조작한 사건과 △계엄군과 경찰의 피해조사 △연행·구금과정 등에서 발생한 인권침해 사건 △국가권력 등에 의한 피해자 탄압사건 등 4개 과제에 대한 직권조사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