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간을 넘나들며 촘촘하게 전개되는 이야기 덕분에 연극은 한 편의 여성 대서사시를 보는 듯하다. 1889년, 춥고 어두운 '싱거 농장'을 배경으로 한 첫 장면부터 눈길을 잡아끈다.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던 임산부 '메이'는 낯선 방문객이 가지고 온 석유램프에서 기회를 발견하고 안락한 삶을 일구기 위해 홀로서기에 나선다.
1970년 햄스테드. 악착같이 일한 덕분에 메이는 다국적 석유회사의 대표 자리까지 오르며 싱거 농장을 떠나올 때 꿈꿨던 안락한 삶을 누린다. 그러나 일과 탐욕에 사로잡힌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에이미와 갈등한다. 극의 배경은 50년을 뛰어넘어 2021년 바그다드 사막으로 바뀐다. 메이는, 사막에서 비혼주의자로 살아가는 에이미에게 '엄마처럼 외롭게 살지 말라'고 애걸하지만 결국 결혼보다 자유를 원하는 에이미의 뜻을 존중한다.
마지막 장면은 2051년 춥고 어두운 '싱거 농장'이 배경이다. 어느새 늙은 메이와 에이미. 모녀가 함께 사는 농장에 미래의 에너지원을 판매하는 중국인 세일즈우먼 '팬 왕'이 찾아오는데, 메이는 이를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반면 에이미의 가슴은 희망으로 부푼다. 극은 이 물음으로 끝맺는다. "통제였을까, 사랑이었을까." 모녀 관계를 뼈대 삼아 계급주의, 여성주의, 제국주의, 환경문제 등 디양한 문제의식을 채워 넣은 덕분에 생각할거리가 많다.
'메이' 역은 소리꾼 이자람, '에이미' 역은 박정원이 연기했다. 실제 모녀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두 배우의 호흡이 좋다. 극단 '풍경'이 영국 극작가 엘라 힉슨의 원작을 무대화했다. '작가, 작품이되다1-장 주네'(2019)와 '작가'(2020)에 이은 3개년 프로젝트 '작가 展'의 마지막 작품이다. 석유와 여성.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가지 재료를 맛있게 버무린 연극 '더 오일'은 더줌아트센터에서 9일까지 공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