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육군의 '소통'은 어디서부터 꼬였을까

지난해 화제 됐던 군 내부 폭로, 페이스북 통해 현재진행형
부실 급식-과잉방역 등 공론화되자 국방장관·육군참모총장 공식 사과
소통하겠다면서 참모총장은 '연인' 관련 황당 훈시

스마트이미지 제공
최근 육군에서는 코로나19 관련 격리 장병에 대한 부실급식과 열악한 격리시설,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의 '과잉 방역' 논란, 22보병사단의 '운동경기 중 부사관의 병사 폭행', 육군참모총장의 황당 훈시 등이 하루가 멀다하고 구설수에 오르고 있습니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서라지만 입소 10일 뒤에야 샤워를 허용하고 세면·양치·용변조차 비상식적으로 통제한데다, 운동경기 중 중사가 병사를 폭행했다는 등의 제보가 페이스북의 한 페이지를 통해 폭로되면서였죠.

그런데 이런 상황,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지 않으신가요. 약 1년 전인 2020년 6월에도 공군 방공유도탄사령부 3여단의 '황제 복무 의혹' 등을 둘러싸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통해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상황은 '데자뷰'인 셈입니다.
[관련기사 : CBS노컷뉴스 2020년 6월 28일자 [뒤끝작렬]병사들이 군기가 빠져 '국민청원' 한다구요?]

◇페이스북 페이지로 옮겨간 '폭로', 폐쇄적인 군 문제 외부 통해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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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와 지금의 상황에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폭로가 어디서 이루어지느냐일 것입니다. 최근 여러 제보들이 올라오고 있는 페이스북의 한 페이지는 본래 큰 주목을 받던 페이지까지는 아니었는데, 5월 4일 시점에서 '좋아요' 8만 4천여건과 팔로워 14만 6천여명을 기록하는 등 점점 규모가 커지는 모양샙니다.

지난달 18일 51보병사단 예하 여단 소속의 휴가 복귀자라며 격리자에 대한 부실 급식이 이뤄지고 있다는 폭로도, 같은 달 21일 육군훈련소의 '세면, 샤워 통제' 폭로도, 22보병사단에서 중사가 운동경기 중 병사를 폭행했다는 폭로도 모두 이 페이지에서 이뤄졌죠.

지난해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통해 폭로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였는데 이러한 수단이 왜 갑자기 페이스북으로 바뀌었는지에 대해 명확히 답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이유를 어느 정도 추측해 볼 수는 있겠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정부와 언론 등의 이목이 집중되는 '핫플레이스'이긴 하지만, 동시에 일정한 요건이 존재하고 100명 이상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게시판에 공개됩니다. 청와대라는 '관'이 운영하는 시스템이라는 것도, 병사들 입장에서는 한 번쯤 망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지난달 24일 페이스북에 25사단 예하 모 포병부대 소속이라고 밝힌 게시자가 "처음 격리 건물에서 생활했을 때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적었다.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 페이스북 캡처
고전적인 형태의 게시판이라는 특성상, 다른 SNS에 비해 직관성이나 접근성이 조금 떨어지며 사진 첨부를 할 수 없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요. 반면 페이스북은 본래 널리 쓰이던 SNS 플랫폼이기 때문에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직관적으로 접근할 수 있으며, 증거로 사진 등을 첨부하기에도 좋은 시스템입니다.

어쨌든 페이스북을 통한 폭로가 일파만파로 커진 결과 서욱 국방부 장관과 남영신 육군참모총장이 직접 국민들에게 사과했으며, 김인건 육군훈련소장 또한 사과문을 내고 '과잉 방역' 조치를 철회하기로 했습니다. 육군은 오는 9일까지 방역관리체계를 재정립하기로 했고요.

그전에는 군 내부 외에 딱히 신고할 방법도 없었으며 신고를 하더라도 조용히 은폐되기 일쑤였던 일들을 외부에 폭로하기 시작하니 바로 해결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국방부 "은폐되는 것보다 낫다"…"긍정적 효과 극대화, 역기능은 최소화"

휴대전화 사용하는 병사. 연합뉴스
물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과 마찬가지로 휴대전화를 이용해 장병들이 외부에 제보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검증과 재차 확인이 필요합니다.

모든 제보가 그 자체만으로는 신빙성을 담보할 수 없으며, 어떤 부대에서 어떻게 벌어진 일인지 파악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는 지극히 단순한 이유 때문입니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7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 병 휴대전화 사용을 문제삼기도 한다는데요, 이것 또한 지난해 비슷한 일이 있었을 때와 똑 닮은 반응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음해할 목적 등으로 검증 없는 투서 등이 빗발칠 수 있다는 어느 정도 합리적인 비판은 차치하고라도, 휴대전화 사용이 부대의 단결력을 해치거나 군기를 빠지게 한다는 황당한 주장은 여러 군 인권 관련 사건을 취재했던 기자의 고개를 다시금 갸우뚱하게 합니다.

앞서 언급한 22보병사단의 폭행 사건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운동경기 중 중사가 병사를 폭행한 뒤 "남자답게 따로 해결하자"며 신고를 막고, 해당 병사는 슬개골 골절 진단을 받는 일이 일어난 상황에서 어느 쪽이 '단결력을 해치'거나 '군기를 빠지게 하는' 일인지는 분명합니다.

국방부 제공
군 관련 정책을 총괄하는 국방부도 이런 점을 알기에 휴대전화 사용 관련 정책을 크게 바꿀 생각은 없어 보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한 격리가 너무나도 흔한 일이 되어 버린 와중에 휴대전화까지 사용하지 못한다면 더 큰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했을 것입니다.

박재민 국방부 차관은 지난 1일 연합뉴스TV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문제가 과거처럼 은폐되거나 숨겨져 곪아가는 것보다 조속히 문제가 해결되도록 하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군에 왔다고 휴대전화를 못 쓰게 통제하는 것보다,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여건을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조성해 나가려고 한다"고 밝혔습니다.

국방부 부승찬 대변인도 4일 정례브리핑에서 "휴대전화가 열린 병영을 만들어가는 도구이자 장병 개개인의 복지와 기본권을 보장하는 도구가 되도록 지속해서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며, "긍정적 효과를 극대화하고 역기능은 최소화해 새로운 병영문화를 만드는 데 노력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습니다.

◇육군은 소통한다는데…참모총장 황당 훈시는 야전에서 냉소만

육군이 소통합니다 페이스북 페이지 캡처
그런데 우리 군에서 수가 가장 많은 만큼 사건사고도 가장 많을 수밖에 없는 육군이 그런 '소통'을 잘 하고 있는지는 모를 노릇입니다. '열심히'와 '잘'은 다른 문제입니다.

한바탕 난리통을 치른 육군은 지난 2일 페이스북에 '육군이 소통합니다' 페이지를 만들고 현안에 대한 입장자료 등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육군 관련 사안에 대한 사실관계, 설명자료를 탑재해 조치 중인 사항을 국민에게 신속하게 알리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설명인데, 정작 현역 장병들이 이런 페이지를 통해 소통하려고 할지는 의문입니다.

쉽게 생각해 봐도 '관'이 만든 게시판 대신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민간 페이지로 옮겨간 장병들이 '군'이 만든 페이지로 옮기려고 할까요. 애시당초 지난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통한 제보가 빗발쳤던 이유부터가 장병들이 군의 내부 신고 시스템을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들이 군 공식 페이스북의 문을 두드릴 수 있을까요.

그 와중 육군의 최고 책임자인 남영신 참모총장은 지난달 21일 상무대에서 외출·외박도 나가지 못한 채 훈련을 받고 있는 후배 장교들에게 "못 나가고 있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한다"면서도 "여러분들이 여기서 못 나가고 있을 때 여자친구, 남자친구는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을 것"이라는 황당한 훈시를 하기도 했습니다.

남영신 육군참모총장. 윤창원 기자
이 사실이 4일 언론에 보도되자 남 총장은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사과했지만, "신임장교들을 격려하는 자리에서 경직된 마음을 다독이며, 긴장감을 풀어주기 위해 친구를 예로 든 '적절하지 못한 표현'이 언급됐다"며 "부적절한 표현을 사용한 데 대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해 '성희롱을 농담으로 취급하냐'며 태도 면에서 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남 총장은 국방부나 합동참모본부 같은 중앙 정책 부서 경험 없이 군 생활의 대부분을 야전 부대에서 보냈습니다. 그만큼 부하들의 마음을 조금 더 잘 이해할 법도 한데, '신뢰를 쌓는 데는 몇 년이 걸리지만 무너뜨리는 것은 5분이면 충분하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한 걸까요. 일선 부대에서는 "왜 폭로가 자꾸 나오는지 알 것 같다"는 냉소적인 반응만 접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의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지난달 23일 격리자 대상 도시락의 모습이 담긴 사진 두 장이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사진은 폭로를 하려는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언뜻 보기에도 푸짐해 보이는 밥과 반찬이 담긴 플라스틱 용기 사진이었죠.

너나할 것 없이 다들 소통을 강조하지만 거기에 아주 거창한 프로젝트 같은 것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아주 작은 일선 부대 간부들부터 병사들이 훈련 잘 받고 잘 먹고 잘 쉬고 있는지, 휴가는 제때 나가서 쉬고 있는지, 고민거리는 없는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한번 더 듣고 따뜻한 이야기라도 해 준다면 과연 이런 폭로들이 나왔을까요.

그 답은 그렇게 멀리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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