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박초롱 기자 (CBS 심층취재팀)
◆ 박초롱> 네, 생후 4개월 아이의 귀를 틔워준다며 영어 전집을 사는가 하면, 4살짜리 아이를 걸상에 앉혀 영어로 수학과 과학을 가르치는 학원, 이 학원도 대기 줄이 100번을 훌쩍 넘어섰다고 하네요.
◇ 김현정> 아니 4개월이면 너무 어린 나이라서 공부와 연관 짓기 쉽지 않은데, 박초롱 기자가 직접 찾아가 봤다고요?
◆ 박초롱> 제가 직접 서울의 한 영어 학원을 찾아가 상담을 받아 봤습니다. 이 곳은 영어책 전집을 산 아이에 한해 일정 수업료를 받고 영어 강습을 해주고 있었는데요. 이 곳에서 가장 어린 아이가 갓 두 돌 넘은, 25개월 된 아이라고 하네요. 이 학원에서는 무려 4개월 된 아이도 귀를 먼저 틔워 주기 위해 영어 전집을 산다면서 불안감을 자극했습니다. 한눈에 봐도 너댓살 된 어린 아이들이 엄마 손을 잡고 영어를 공부하러 오더라고요. 들어보시죠.
[E영어교재 업체 관계자]
"그니까 어머님들이 자꾸 친구 소개할 때 4개월, 10개월 이런 친구들을 데리고 오시는 게 하려면 빨리 해야 돼요. 왜냐면 어차피 뽕 뽑는 거잖아요. 어머님이 세 살 때 시작하시면 5년 볼 건데 애기 때부터 시작한 친구들은 7년, 8년을 저랑 만나거든요, 그러면 한 1, 2년은 노출, 리스닝, 한국말도 두 돌 될 때까진 리스닝만 하지 말을 하지 않잖아요. 그러다가 이제 스피킹, 발화 하는 시간이 오고, 그러다가 이제 리딩 들어가고 라이팅 들어간다고 보시면 돼요."
◇ 김현정> 아니 4개월 된 아이한테 어떻게 영어책으로 교육을 한다는 거예요? 누워 있을 텐데.
◆ 박초롱> 사실 4개월된 아이한테는 수업을 하지 않는데요. 문제가 비싼 영어 전집을 팔면서 이게 4개월부터 해야 나중에 학습의 효과가 있다고 홍보를 하고 있는 부분이에요. 아이 옆에서 전집에 포함된 CD 음악을 계속 틀어준다는 거에요. 영어로 책을 읽어줘라 이렇게 지도를 하고요. 그럼 영어가 귀에 익숙해져서 나중에 훨씬 더 수월하게 영어 발화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 박초롱> 네, 스텝별로, 종류별로 전집을 판매한 뒤 수업까지 유도했는데요. 가장 싼 패키지가 312만원, 제일 비싼 패키지가 731만원이었습니다. 수업료는 한 달에 10만원 초반대로 또 따로 내야 해요. 제가 영어를 일찍 시작하게 되면 한국어 습득이 방해받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했더니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E영어교재 업체 관계자]
"근데 그 정도로 어머님이 아무리 열심히 하셔도 영어 노출을 한국말 노출만큼 못 하시거든요, 대부분의 어머님들이 영어 환경을 많이 만들어 주셔도 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 하루 종일 살잖아요, 그러면 집에 와서 흘려듣기를 많이 해도 세, 네 시간. 그래서 그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이게 방해가 되려면 50프로 50프로여야 돼요."
◇ 김현정> 사실은 어린 시절부터 귀를 트이면 다른 외국어들이 잘 들린다는 건 학문적으로도 있죠. 있는데 지금 이 경우는 4개월, 10개월 그것도 아주 고가의 전집 이런 게 문제가 되는 거 같아요? 아예 귀를 트여준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아예 '공부'를 열심히 시켜드립니다'라고 말하는 곳도 있다면서요?
◆ 박초롱> 강남 압구정의 한 유명 어학원에 전화해 봤어요. 3세 수업부터 있다고 해서 문의하니까 이미 대기가 100명이 넘어가서 순번을 올리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내년에 오라고 하더라고요. 들어보겠습니다.
[압구정 소재 영어학원 관계자]
"대기 100번 대여서 사실상 지금 대기 있는 분들한테도 전화 오면 더 이상 입학 어렵다고 안내 드리거든요 (중략) 책상이랑 의자에서 생활을 하고요. (4세가 되면요?) 예, 그 다음에 교재 사용하고. 3세 때는 교재를 많이 사용하진 않는데 4세만 돼도 교재 사용하고 교재도 거의 열 권 정도 돼 가지고 공부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 김현정> 저희가 사진을, 교재 사진을 보여드리고 있는데요. 이게 지금 3, 4세가 하는 거에요?
◇ 김현정> 그 아이들은 한국어로도 한국어로도 잘 모를 것 같은데…
◆ 박초롱> 네 그렇죠. 지금 말씀드린 사례들만 봐도 요즘 사교육이 굉장히 저연령까지 내려가고 있는 걸 알 수 있죠. 뇌가 말랑말랑할 때 배워야 한다, 이런 말 많이 들으실 것 같은데요, 부모로서는 투자하고 싶게 만드는, 듣기 좋은 말이죠. 목동의 한 수학 학원은 21개월부터 수업이 가능하다, 수학 교구를 이용해서 개념을 자연스럽게 가르친다, 이런 곳도 있었거든요.
◇ 김현정> 박초롱 기자, 사실 코로나 유행이 길어지면서 이런 저연령 영유아 사교육이 더 다양화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 박초롱> 네, 코로나 때문에 기관 이용률은 약간 주춤하는 추세라고 하는데요. 하지만 코로나 이후 교사가 방문하는 형식의 사교육이 성행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1:1로 진행할 수 있다 보니 코로나 위험이 적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한 방문미술 업체는 코로나 감염을 막기 위해 철저하게 방역 지침을 지키고 있다며 은근한 마케팅 포인트로 사용하기도 하더라고요.
◇ 김현정> 여기도 아주 저연령 대상이에요?
◆ 박초롱> 생후 6개월부터 수업을 들을 수 있다고 하는데요. 그것도 6개월 이상 기다려야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한 방문 미술 업체입니다.
[방문 미술업체 관계자]
"서울은 6개월 이상 대기라고 보시면 되세요. (생후) 6개월부터 접수가 가능해요. 아이들 신체발달, 오감발달 위주로 진행이 되고 아이들 미술재료, 식재료, 생태재료 등을 이용한 퍼포먼스 놀이수업이라고 보시면 돼요"
◆ 박초롱>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집단생활을 해야 하는 기관에 보내지 않고 엄마가 가르치는, 이른바 '엄마표 사교육'이란 것도 유행하고 있는데요, 이 역시 교재를 이용하거나 엄마가 제시하는 것을 아이가 따르는 방식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어 사교육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 김현정> 지금 청취자들이 많이 신기해 하세요. 이렇게 어린 나이까지 사교육이 성행하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 박초롱> 물론 초등 사교육에 비하면 적은 숫자지만, 문제는 단기간에 상당히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에요. 2009년에 유아대상 영어학원은 서울에 66개, 전국 181개였는데, 10년 뒤 서울에 몇 개가 되었는지 아세요? 288개입니다. 이런 현상이 만연하고, 특별한 것이 아님을 취재를 하면 할수록 느낄 수가 있었는데요. 제가 비밀번호가 있어야 참여할 수 있는, 영유아 엄마들이 모여 교육 정보를 주고받는 오픈 채팅방에 들어가 봤거든요.
◇ 김현정> 아니, 영유아 때부터 교육 정보를 주고받아요?
◆ 박초롱> 네, 제일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가는 연령대는 4~6세였습니다. 한 학부모는 '6세 아이 학원 스케줄 좀 봐주세요.' 라면서, 발레, 피아노, 수영, 수학, 과학, 놀이터 시간까지 정해져 있는 시간표를 올리며 의견을 구하기도 했고요. 36개월 아이가 학습이 가능할지, 연필을 잘 잡도록 하려면 어떻게 할지 묻기도 했습니다.
◇ 김현정> 와! 저런 대화들이 하루종일 오가는 거예요? 영유아 아이들, 정말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우리 아이들은 괜찮은 건가요?
◆ 박초롱> 전문가들은 저연령화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큰 우려를 나타내고 있어요. 특히 0~7세의 기간은 감정과 인성, 사고력, 창의성을 담당하는 뇌의 부분이 자라는 시기인데, 주입식 학습을 하게 되면 이 부분이 잘 자라지 못해서 문제가 생긴다는 거예요. 노규식 소아청소년정신의학과 전문의의 말로 들어보겠습니다.
[노규식 소아청소년 정신의학과 전문의]
"틱이 생기는 친구들도 있고요 그런 곳에 가고. 전반적으로 불안하면서 기관에 가는 것을 거부하고 밤에 잠을 잘 못 자기도 하고 극단적인 예지만 너무 영어교육 너무 중시해서 집에서도 영어만 쓰고 하는데 초등학교에 막상 가서는 친구를 못 사귀기도 하는 일도 있었거든요. 과도하게 하면 어려운 거, 머리 쓰는 거 너무 싫어하는 아이 그래서 충동적이고 즉각적인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영상 이런 데만 자꾸 탐닉하게 되는..."
◇ 김현정> 진짜 새겨들으셔야 할 얘기에요. 멀리 보셔야죠. 인생 얼마나 살 건데요, 멀리 보셔야죠. 이렇게 초초초 조기 교육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정서적인 부분을 더 충족시켜줘야 한다, 이런 이야기인 거죠.
◇ 김현정> 엄마들은 "아, 놀이니까 괜찮겠다"라고 느낄 수도 있겠어요?
◆ 박초롱> 그렇죠. 2019년에 우리 교육당국에서 누리과정을 개정하면서 영유아의 '놀이'를 강조했어요. 놀이 시간이 하루에 몇 시간 이상 되어야 하고 놀 수 있는 권리, 혼자 뭔가 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줘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유엔아동권리협약도 추가적인 사교육이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하고 있거든요.
◇ 김현정> 그런데요?
◆ 박초롱> 그런데 이 놀이의 개념을 사교육 시장이 또다시 오용하고 있는 거에요. 영어나 수학, 요새 많이 하는 코딩 사교육, 이런 것들을 놀이식으로 한다, 아이가 즐겁게 할 수 있다고 홍보를 하는 겁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양신영 연구원의 말로 들어보시죠.
[양신영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연구원]
"놀이 3요소는 자기 주도성, 자발성 창의성. 이것들이 빠지면 그건 진짜 놀이가 아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놀이는 사실 빠진 상태의 가짜 놀이들이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들어가게 되는 것. 사실 놀이라는 것은 교수자의 의도가 가미되면 안 되거든요."
◇ 김현정> 우리 때 생각하면 몇 개 조약돌만 가지고도 하루 종일 놀았어요. 이런 게 진짜 놀이라는 거죠 자기 주도적인 놀이.
◆ 박초롱> 맞습니다. 학부모님들, 놀이는 아이의 주도성, 자발성이 보장돼야 합니다. 놀이식 교육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다시 한번 드립니다.
◇ 김현정> 경쟁 사회에서 어쩔 수 없다는 부모님들의 마음도 일견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겠죠. 모국어도 익히기 전인 4개월 된 아이가 영어 전집을 구입한다는 건 정상적인 사회의 모습은 아닌 것 같습니다.
◆ 박초롱> 맞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 공약을 통해 이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어요. 아동인권법이라는 것이 있었는데요. 당시 문재인 후보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2012년)]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단계까지는 아이들을 어떤 학습을 위한 사교육에서는 해방시켜줘야 되지 않을까.“
◆ 박초롱> 어린이날을 맞아서, 우리 사회가 아이들에게 진정한 행복의 기회를 주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기회였습니다.
◇ 김현정> 심층취재팀 박초롱 기자, 수고했습니다.
◆ 박초롱>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