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원베일리' 조합장, 수억원대 부정대출 의혹…경찰 수사

아파트 허물기 직전 돌연 조합원 집으로 전입신고
집주인 "허락 한 적 없어"…중개업자 "저의 불찰"
조합으로부터 대출 위해 임차인 있는 것처럼 꾸민 정황

신반포3차·경남아파트 재건축 현장. 연합뉴스
평당 약 5600만원으로 책정돼 '사상 최고 분양가'를 기록한 서울 서초구 '원베일리'의 재건축 조합장이 허위로 전입 신고를 하고, 이를 이용해 수억원대 대출을 받았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그는 아파트를 허물기 직전 돌연 주소지를 한 조합원의 집으로 옮겼는데, 집주인은 이를 허락해 준 적이 없었다.

'임대한 사람은 없는데 임차한 사람은 있는' 이 황당한 사연의 배경에는 '조합 대출'이 존재했다. 조합장이 조합으로부터 대출을 받기 위해 한 부동산 중개업자에 부탁해 이 같은 일을 저지른 것이다. 사문서 위조·행사,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사기 등에 해당할 수 있는 불법 행위에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집주인 '허락 없이' 세입신고…어떻게?

4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신반포3차경남아파트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원베일리 조합)의 김모(65) 조합장은 지난 2018년 8월 20일 조합원 A씨의 아파트로 전입 신고를 했다. 당시는 이미 구청으로부터 관리처분인가가 난 이후로 한창 이주가 이뤄지던 시점이었는데, 곧 철거할 집으로 이사한 셈이다. 실제 3개월 후 이주가 완료돼 철거가 시작됐다.

문제는 A씨가 김 조합장에게 집을 임대해 준 적이 없다는 점이다. 20년쯤 전부터 사업 목적으로 미국에 거주하던 A씨 측은 재건축 진행 소식에 지난해 6~7월쯤 한국에 와서 기존 세입자와의 임대차 계약을 모두 정리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A씨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이주를 하라고 해서 6~7년째 살고 있던 세입자에게 돈을 주고 내보냈다. 나머지는 늘 이용하던 부동산에 맡겨뒀다"며 "우린 그 세입자가 나간 것을 확인한 후에는 아무것도 들은 바도 없었다. 누군가 들어왔으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부동산 중개업자한테 '우리한테 한마디 말도 안 하고 맘대로 하면 어떡하냐'고 따졌더니 '죽을 죄를 지었다'고 사과하더라"고 전했다.

신반포3차·경남아파트 재건축(원베일리) 조감도. 삼성물산 제공
취재 결과 A씨의 부동산 중개를 도맡아 해 오던 중개업자 B씨가 김 조합장의 부탁을 받고 이 같은 일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임대차계약서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임대인의 서명 등이 있어야 하는데, 어떠한 허락이나 위임장 없이 이를 진행한 것이다. 원래 부동산 중개업자였던 김 조합장은 20년쯤 전부터 B씨와 친분을 쌓아 온 것으로 전해졌다.

B씨는 "모든 게 제 불찰"이라며 모든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김 조합장한테 처음 '단기로 이사할 수 있는 집이 있느냐'는 부탁을 받고 직원에게 A씨의 허락을 구해보라는 지시를 했었다"며 "시간이 좀 지난 뒤 김 조합장이 '어떻게 됐냐'고 묻길래, 직원한테 이를 지시한 지 오래됐기 때문에 당연히 A씨로부터 허락이 됐을 거라고 착각하고 진행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조합장은 당시 신분이 부조합장으로 빈집이 어디어디인지를 다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집주인 허락이 필요 없다고 한다면 저한테 부탁을 안 하고 임의대로 했을 것"이라며 "김 조합장은 당시 우리가 집주인에게 허락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사문서 위조·행사 등 불법행위의 공동정범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성민 변호사는 "중개인과 함께 임대차계약서 등 사문서를 위조하고, 그 위조한 사문서를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 또 전입 신고하는 과정에서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가 성립될 여지가 있다"며 "만약 이를 통해 조합으로부터 대출 등을 받았다면 조합에 대한 사기에도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만약 조합장이 '임대인한테 허락을 받은 것으로 알았다'고 주장하려면 중개인으로부터 위임장 등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계약을 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수억원대 대출' 받기 위해 허위 전입신고 정황

그래픽=고경민 기자
B씨가 서류까지 꾸며가며 김 조합장의 주소지를 바꿔 준 이유는 무엇일까. 조합원들은 그 이유로 '조합으로부터의 대출'을 꼽는다.

통상 재건축을 진행하면서 집을 허물 때는 종전주택을 담보로 금융기관으로부터 '이주비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집이 지어질 동안 임시로 거주할 집을 구하라는 취지다. 이 또한 주택담보대출(LTV) 제한을 받아 당시 서초구의 경우 '종전주택 감정평가액의 40%'까지가 최대였다.

그런데 주택을 담보로 추가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바로 종전주택에 '임차인'이 있는 경우다. 도시정비법에 의하면 임차인이 있는 집에서 재건축이 진행될 경우 '임차보증금'을 집주인 대신 조합(사업시행자)이 먼저 변제할 수 있고, 추후 조합이 집주인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 같은 '임차인보증금 반환을 위한 대출'은 법률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따로 조합 정관 등에 명시 돼 있지 않더라도 실행이 가능하다. 다만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의 제도이기 때문에 반드시 해당 집에 임차인이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해야만 한다.

결국 본인 집에 실거주하던 김 조합장이 조합으로부터 대출을 받기 위해 A씨 집으로 이사 간 것으로 꾸미고, 본인 집에는 다른 세입자가 들어 온 것처럼 서류를 만든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김 조합장 집에는 그의 장모가 전세 들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김 조합장의 종전주택 등기부등본을 살펴보면 금융기관으로부터 이주비대출 약 5억 3천만원을 받았고, 같은 날 조합으로부터 약 5억 5천만원을 빌렸다. 해당 아파트 유사한 평수의 당시 평균 감정평가액이 약 15억인 점을 고려하면, 총 70% 해당하는 금액을 대출받은 셈이다.

해당 의혹에 대해 김 조합장 해명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했으나 "다음에 통화하겠다"라는 말만 남기고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는 최근 해당 의혹과 관련해 변호사를 선임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재건축 조합원들 일부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는 이 같은 의혹 등을 수사해 달라며 지난 2월 경찰청에 고발했다. 사건을 배당받은 서울 방배경찰서는 3월 초 고발인 조사를 진행했다. 경찰은 조만간 김 조합장 등을 불러 사실관계를 확인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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