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정원(1957)은 최초의 한국·홍콩 합작영화이자 당시에는 매우 드물게 시도한 총천연색 영화였다. 2013년 홍콩 쇼브라더스 창고에서 기적적으로 필름을 발견했지만 화려했던 총천연색은 빛이 바랬고 소리는 유실됐다. 무대 위 연주자, 폴리아티스트, 배우들이 대사가 기록된 대본을 바탕삼아 60년 넘게 잊혀졌던 이 과묵한 영화에 소리라는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이다.
이국정원은 어린 시절 헤어진 중국인 어머니를 찾기 위해 홍콩에 온 한국인 작곡가 '김수평'과 홍콩 가수 '방음'이 예상치 못한 난관을 딛고 결혼하는 이야기다. 톱스타였던 김진규, 윤일봉, 최무룡이 출연하고 홍콩 현지에서 촬영하는 등 당시로서는 블록버스터급이라고 할 수 있는 규모로 제작했다.
뻔한 내용의 영화가 뻔하지 않게 느껴지는 건 출연진과 제작진의 창의력 덕분이다. 무대 위 배우들은 마치 성우처럼 화면 속 배우를 연기하고, 라이브 밴드는 원곡을 알 수 없는 영화 속 음악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다.
특히 폴리아티스트 박영수의 음향효과 실연을 보는 재미가 크다. 그는 밥솥, 장난감, 빈 유리병 등 생활소품을 이용해 화면 속 영상에 어울리는 다양한 효과음을 만들어낸다. 턴테이블에 올려놓은 레코드가 지지직거리는 소리, 등장인물이 쇼파에 앉을 때 나는 소리,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 천둥 치는 소리 등 못 내는 소리가 없다.
영화 '삼거리극장', '러브픽션'의 전계수 감독이 연출과 각색, 전 감독과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 온 김동기가 음악감독을 맡았다. 뮤지컬 배우 박시원, 이수안, 서현우, 손현정, 김기창 등이 출연한다.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5월 2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