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 1기 원구성 당시 법사위가 '상임위 위의 상임위'로 부각되면서 그 위상이 더욱 커진 데다 후보군을 둘러싼 파열음이 예고됐기 때문이었다.
선수(選數)와 나이를 우선적으로 고려해 상임위원장을 배치하는 국회 관례상 후임은 이광재 의원이지만, 대선 출마 준비 등을 이유로 거절한 상황.
이에 윤 원내대표는 선거 몇달 전부터 일부 중진의원에게 그 다음 순번인 '정청래 의원이 후임으로 어떻겠느냐'는 의사를 타진하기도 했다. 중진의원들은 정 의원의 강성 친문 성향을 우려하며 "야당에 전쟁 선포를 하는 게 아니냐"고 만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원내대표의 고심이 깊어지면서 원내대표 선거 국면에서도 차기 법사위원장은 화두가 됐다.
윤 원내대표의 경쟁 상대였던 박완주 의원은 정견발표에서 "야당은 법사위원장 자리를 달라고 더 세게 달려들 것"이라며 "국회를 또 전쟁터로 만드시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에 윤 원내대표는 "법사위원장 자리는 여의도 국회의원들의 자리일 뿐이다. 국민들이 법사위원장 자리에 누가 앉아있는 것에 무슨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냐"며 "국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야당과 부단히 만나서 소통하고 협상하고 대화하겠다"고 했는데, 이는 윤 원내대표의 기지로 즉석에서 추가된 부분이다.
차기 법사위원장으로 거론됐던 정 의원은 윤 원내대표의 당선 3일 뒤인 지난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청래는 법사위원장을 맡으면 안 된다는 국회법이라도 있습니까"라며 "손들고 '저요, 저요' 하지도 않지만 어려운 길 피하지도 않겠다"고 하며 법사위원장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4·7 재보궐 선거 참패 이후 민주당에 오만 프레임이 덧씌워진 국면에서 윤 원내대표로서는 정 의원을 법사위원장에 지명해 야당과의 관계를 굳이 경색시킬 이유가 없던 상황이다.
이에 원내대표를 맡는 바람에 상임위원장을 하지 못한 4선의 우상호 의원과 당 사무총장을 수행하면서 과방위원장에서 두 달 만에 내려온 3선의 박광온 의원이 차기 법사위원장 후보로 떠올랐다.
'원내대표를 했던 의원이 상임위원장을 맡는 법은 없다'며 우 의원이 고사하면서 차기 법사위원장 후보군은 박 의원과 정 의원 2명으로 압축됐다.
곧이어 지난 주말을 전후로 원내 핵심 관계자들은 "윤 원내대표의 마음 속에 박광온 의원이 있다"고 전하면서 박 의원이 차기 법사위원장으로 유력해졌다.
정 의원은 기류 변화가 가시화되자 가까운 의원에게 "분통이 터진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음 순번인 본인 대신 짧게라도 상임위원장을 했던 의원들이 거론되는 데 대한 불만을 토로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 의원의 적극적인 의사 표시에 원내대표단도 29일 본회의 직전 의원총회에서 공식화하겠다며 전날 밤까지 보안 유지에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민주당은 본회의가 예정된 이날 아침 박 의원의 법사위원장 내정 사실을 공식화했다.
당내엔 야당과 비교적 관계가 원만한 박 의원이 최종 낙점되면서 야당의 반대가 최소화될 거라는 기대감도 있다.
다만 이날도 야당이 법사위 탈환을 주장한 끝에 박병석 국회의장이 중재에 나서며 다음달 7일까지 법사위원장 선출이 미뤄졌다. 민주당은 재협상 없이 다음달 첫번째 본회의에서 표결할 방침이다.
한편, 정 의원은 이같은 당의 결정에 이날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쿨하게 받아들인다"며 "박 의원님, 개혁입법의 기관차가 되어 주라"고 섭섭함을 내비쳤다. 같은날 오후엔 "이것 또한 당의 현실이니 어쩌겠습니까"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