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해고'에 채용사기까지…노동절에도 못 웃는 직장인들

직장갑질119, '하청 설움' 등 '10대 직장풍경' 사례 선정 공개
'실직' 경험 비정규직이 정규직 5배·여성이 남성보다 10%p 이상↑
"30인 미만 등 영세사업장 노조 조직률 턱없이 낮아" 원인 분석

스마트이미지 제공
#1. "고속버스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회사와 노조가 고용안정협약을 맺었습니다. 회사는 정부로부터 고용유지지원금을 받고 있고, 지자체와도 협약을 통해 지원금을 받아 고용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계약을 갱신해주던 계약직 사원에 대해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하고 사직서까지 강요해 받아내고 있습니다. 힘없는 계약직 기사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쫓겨나고 있습니다."

#2. "정규직 채용에 합격해 1년간 수습으로 근무하던 중, 수습기간 종료 일주일 전에 정규직 전환 불가통보를 받았습니다. 채용공고에는 '시용(試用)'이라 했지만 내규상 존재하지 않고 '수습직원'에 대한 정의만 있어 수습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수습기간이 1년이나 되고, 근무 내내 '정규직이나 마찬가지' 식의 말을 많이들 했기에 당연히 큰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이상 정규직이 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너무나 황당합니다. 이런 경우는 해고예고수당이 적용되지 않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다음 달 1일 131주년 '노동자의 날'(노동절)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국내 직장인들은 코로나19를 핑계삼은 부당해고부터 채용사기에 이르기까지 근로자의 권리를 온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9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올 1월부터 4월까지 신원이 확인된 이메일 제보를 분석한 결과, 직장인들의 '10대 직장 풍경'으로 △코로나 해고 △하청 설움 △프리랜서 △폭행·폭언 △성희롱 △모욕 △육아휴직 불이익 △채용사기 △청년내일채움공제 △실업급여 등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우선 직장갑질119가 바라본 노동절의 핵심 키워드는 '비정규직'이었다. 이 단체가 지난달 17~23일 직장인 1천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코로나19가 발생한 지난해 1월 이후 18.6%가 실직을 경험했다고 답변했다. 특히 비정규직은 35.8%가 직장을 잃었다고 응답해 정규직(7.2%)의 5배에 달했다.

고용이 보장되지 않은 비정규직이 겪는 '갑질'과 설움은 다양했다. 일용직 노동자들을 상대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된 마켓컬리의 일용직 근무자는 "올 1월 인력업체를 통해 블랙리스트 명단에 제 이름이 있는 걸 확인했고 서면통보 없이 해고를 당했다"고 밝혔다. 그는 "마켓컬리가 하청업체에 'OOO 블랙 처리하세요'라고 요구하면 업체는 어쩔 수 없이 시키는 대로 해당 근로자를 해고시켜 더 이상 근무에 투입하지 않는다"며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작업반장 마음에 안 들면 사유를 만들어 자른다"고 토로했다.

수영강사로 일했던 한 프리랜서 노동자는 평일·주말 구분 없이 4년 넘게 정직원과 같이 일했지만, 지난 1년간 800만 원이 넘는 급여를 받지 못했다. 그는 "4대 보험을 안 들어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구분이 안 된다는 게 너무 답답하다. (보험에 가입된) 다른 직원들과 같이 일하고 같이 퇴근했는데 프리랜서로 일하는 사람이 약자인 것 같다"고 털어놨다.

코로나19의 여파는 여성들에게 더 가혹했다. 직장갑질119 조사에 따르면, 여성 노동자들의 실직경험이 24.8%로 남성(14.1%)보다 10%p 이상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아울러 올 1월과 비교했을 때 소득 변화에 대해서도 '벌이가 줄었다'고 답변한 여성이 43.4%로 남성(28.5%)에 비해 1.5배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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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고용 절벽' 속 취업의 기쁨도 잠시, '사실 비정규직이었다'며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당한 청년들도 적잖았다. 심지어 정부에서 지원하는 '청년내일채움공제'를 신청했다는 이유로 괴롭힘과 모욕을 당하거나 정부보조금을 받는 회사임에도 고의적으로 퇴사를 종용해 실업급여조차 못 받게 하는 사례들도 있었다.

올해 1분기 직장갑질119의 설문조사에서 지난 1년간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는 응답은 20대(35.3%)가 50대(28.5%)보다 6.8%p 가량 높았다.

직장갑질119는 최근 사내 갑질과 부당해고가 더욱 늘어나는 이유로 '낮은' 노동조합 조직률을 들었다.

실제로 현재 고용상태에 대해 노조원은 19%가 불안을 느낀다고 답한 데 반해 비노조원은 절반 가량인 49.5%가 실직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는 것으로 파악됐다. 실직 경험 또한 비노조원이 20.4%로 노조원(6.3%)의 3배를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2019년 전국 노조 조직현황'에 따르면 전체 노조 조직률은 12.5%로 파악됐다. 다만, 공공부문(70.5%)·공무원(86.2%)·300인 이상 대기업(54.8%)에 비해 100인 미만 사업장(1.7%)·30인 미만 사업장(0.1%)은 조직률이 턱없이 낮았다.

직장갑질119는 "문재인 정부는 현재 10%에 불과한 노조 가입율과 단체협상 적용률을 높이기 위해 법·제도 개선 추진을 공약했지만 어떤 법 개정도 이뤄지지 않았다"며 "비정규직의 남용을 막기 위한 '사용사유 제한제도' 도입, 비정규직을 과다하게 고용하는 대기업에 대한 '비정규직 고용 부담금제' 도입, '비정규직 차별금지 특별법 제정' 등의 공약도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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