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리뷰]사드 이어 쿼드…美中 양자택일은 숙명인가

공식 요청 없었다지만 잇단 쿼드 공론화…내달 한미정상회담이 1차 분수령
"선택 불가피하다면 미루지 말자" 일각서 中 위협에 맞설 쿼드 효용성 주장
"양자택일은 무모한 선택"…일본도 대만문제 건드렸다 중국의 보복 걱정
쿼드 성격 여전히 모호하고 구조적 한계…아세안은 美中 모두 불신하며 관망
선택 불가피하다면 타이밍이 중요…새 바이든 대중전략도 능동적 활용해야
美, 중국 배제 대신 규범·질서 전면에…정부 "쿼드와 사안별 협력은 가능"

지난달 12일 쿼드 화상정상회의. 연합뉴스
중국 견제를 위한 4개국 협의체인 쿼드(Quad)가 뜨거운 외교안보 쟁점으로 떠올랐다. 한국도 여기에 참여하라는 미국의 압박이 가해지는 가운데 다음 달 한미정상회담 결과가 1차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미국 바이든 정부 출범 후 미·중 전략경쟁이 더욱 격화되면서 한국의 딜레마는 더욱 깊어졌다. 쿼드는 5년 전 한중관계를 흔들었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보다도 훨씬 민감한 문제라는 점에서 우리 외교가 또다시 시험대에 서게 됐다.

◇ 쿼드 가입 제안 정말 없었나

정부는 쿼드 논란에 대해 공식적인 참여 요청이 없다고 여러 차례 확인했다. 지난 11일 청와대는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이달 초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면담 시 쿼드 참여를 강하게 요구했다고 한 일본 요미우리신문 보도를 "매우 부정확하다"고 일축했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지도 24일 중국 측이 한국에 쿼드 참여 여부에 대한 입장을 여러 차례 문의했다고 보도했고 국방부는 마찬가지로 관련 사실을 부인했다. 정부 설명이 일관되고 미국도 별 반응이 없는 점으로 미뤄 적어도 공식 요청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 공식 요청 안 하는 이유는 뭘까

미국이 인도·태평양전략은 물론 쿼드나 '쿼드 플러스'에도 한국의 참여를 바란다는 것은 정설에 가깝다. 미국 조야의 다양한 채널을 통해 쿼드가 계속 언급되는 것이 그 방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 부러진 요청이 없는 이유는 복합적 고려가 깔려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한국에 직접적 방식으로 요구했다가 거절당할 경우 동맹관계에 손상을 입게 되고 중국에 잘못된 신호를 줄 위험이 있다고 풀이한다. 이런 분석이 맞다면 쿼드 문제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수면 아래 잠겨있을 공산이 크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미국은 (한미정상회담 때) 우리 대통령을 불러놓고 쿼드에 가입할 거냐 이런 식으로 묻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미국은 한국이 자신들의 대중국 전략을 이해하고 나름 독자적 역할을 해주길 바라고 있다"면서 "그 '독자적 역할'은 결국 쿼드 가입을 미국의 희망 리스트 중 하나로 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서욱 국방부 장관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외교·국방장관회의에 앞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그렇다면 선제적 참여가 나은 것 아닌가

기존의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식 전략적 모호성 유지가 더 어려워졌다는 것에는 별 이견이 없다. 따라서 어차피 미·중 간 선택이 불가피하다면 결정을 미룰 이유가 없고, 당연히 결론은 우리의 유일 동맹국인 미국이 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양자택일 상황을 전제한다면, 경제도 중요하지만 안보는 생존의 문제이기에 미국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 미·중 사이에서 계속 눈치만 볼 경우 모두로부터 버림받는 외톨이가 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유튜브 방송에서 "문재인 정부가 그간 중국을 대하는 자세를 보면 미국은 과연 한국이 동맹국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 것"이라며 쿼드 참여가 우리의 사활적 국익을 지키는 길이라고 말했다.

그는 쿼드가 중국의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보험 및 지렛대(레버리지) 역할을 할 수 있고, 쿼드 초기 단계에 조기 가입함으로써 우리 국익을 적극 반영하고 미중의 과도한 대립을 완화하는 역할도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 하지만 양자택일은 너무 무모하지 않나


미·중 대립에서 우리의 원칙과 기준을 보다 확고히 할 필요는 있지만 섣불리 한쪽에 서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신중론이 여전히 우세하다.

최근 저서에서 현 정부 외교를 '3무(인재·절차·정책) 1유(코드)'라고 비판한 한승주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전 외무부 장관)도 쿼드 참여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했다.

중국은 최근 미일 정상회담에서 대만 문제가 거론되며 자신의 '핵심이익'을 건드리자 일본을 1차 표적 삼아 보복조치를 검토 중이다. 중국 항공모함 함대가 26일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에 접근하고 일본이 전투기를 발진시키는 등 이미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일본 내에서는 '루비콘강을 건넜다'거나 '미·중전쟁에 말려드는 전형적 동맹의 딜레마' 등의 우려가 제기된다. 만약 국력이나 지정학적으로 일본보다 더 '약한 고리'인 한국이 쿼드 가입을 선언할 경우 중국의 타깃은 달라질 것이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가능하면 입장 표명을 하지 말고 (미·중) 양쪽과 다 좋게 가야 한다"면서 "쿼드 가입 안 하면 큰일 나는 것처럼 하는데 그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미·중은 우리의 선택의 대상이 결코 아니다"면서 한미동맹과 한중관계의 조화로운 발전 외에 대안이 없음을 강조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연합뉴스
◇ 쿼드가 반(反) 중국 안보협의체는 아니지 않는가

쿼드는 2004년 인도양 쓰나미 재난에 공동대응하기 위해 시작됐다. 지난달 첫 쿼드 정상회담의 주요 합의도 코로나19 백신 협력이었다. 당시 미국은 쿼드가 군사동맹이나 '아시아판 나토'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정말 그게 맞다면 쿼드에 가입 못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쿼드의 성격이 모호한 데다 참여(예상)국들의 이해관계도 일정치 않은 구조적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단순 협의체로 할지 다자안보기구로 발전시킬지 미국 내에서도 혼선을 드러냈다. 지난해 10월 당시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이 쿼드의 개념 정의가 확립돼있지 않았다며 기존 입장에서 후퇴한 게 대표적 사례다.

때문에 자체적 모순도 드러내고 있다. 군사동맹이 아니라는 미국 설명과 달리 쿼드 4개국은 지난해 10월 쿼드 외교장관 회담 직후 말라바르 해상훈련을 실시했다. 자유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한다는 쿼드가 쿼드 플러스의 대상에 베트남을 거론하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다.

비동맹외교의 전통이 남아있는 인도나 한국과 비슷한 중견국 딜레마를 안고 있는 호주의 대중국 이해관계가 미국, 일본과 일치할 수는 없다. 또한 아세안 국가들은 중국뿐 아니라 미국에 대해서도 장기적 관점에서 신뢰에 의문을 품고 있다. 특히 쿼드 플러스가 인권이나 반부패 등 가치연대를 너무 강조할 경우 중국은 물론 아세안 국가들도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선 쿼드가 초기 설정 단계인 만큼 오히려 조기에 가입해 우리 입장을 반영하고 미·중 대립을 완화할 공간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객관성 없는 희망적 사고에 불과하다는 반론이 나온다.

◇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나

미국은 쿼드 플러스로의 외형 확대보다는 일단 내부 공고화에 주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각적인 가입 압박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세계 10위권 국력인 한국을 쿼드의 하위체계(플러스)에 배치하려는 것도 썩 유쾌하지 않은 부분이다.

하지만 미국이 중국 견제를 사활적 이익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언제 어떤 방식이 됐건 한국의 참여를 요구할 것이 확실시된다. 선택을 요구받지 않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게 최선이지만 불가피할 경우 출혈을 최소화하는 대책이 강구돼야 한다.

박병광 책임연구위원은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이 어쩔 수 없이 쿼드에 가입하게 되더라도 미·중 대립이 덜한 시점을 택해야 그나마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쿼드에 가입한다고 중국이 반드시 보복할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며 "중국으로서도 한국을 오히려 더 미국 쪽에 붙도록 할지 모른다는 복잡한 고민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때와 미묘하게 달라진 바이든 정부의 대중전략을 능동적으로 활용할 필요도 있다. 미국의 새 전략은 중국 배제를 위해 동맹국을 압박하는 게 아니라 동맹국들과 여러 영역에서 이익과 지분을 나누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바이든의 전략은 국제표준과 기준을 미국에 유리하게 만들어놓고 중국이 여기에 들어올지 말지 선택하게 하는 방식으로 미국의 리더십을 지키겠다는 것"이라며 "새 규범과 질서 수립에서 한국이 뒤처질 수는 없다"고 말했다.

중국에 대한 압박이 이전보다 훨씬 세련되고 교묘해지면서 '21세기 아편전쟁'마저 방불케 하는 느낌이다. 그러나 표면상으로는 '반(反) 중국'이 아니라 '규범과 질서'를 내걸기 때문에 중국의 반발을 줄일 명분이 있다.

이와 관련해 외교부 당국자는 최근 "우리 측 기여와 선도적 협력이 가능한 분야에서 쿼드 국가들과 사안별 협력은 모색해나갈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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