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당신의 가족은 '과로'로부터 안전한가요?

[5.1 노동절 특집]지난해 10월, 쿠팡 야간근로 직후 숨진 20대 청년 장덕준씨
근무 환경 개선 위해 계속 노력 중인 장씨 부모
노동자뿐 아니라 소비자가 움직여야만 개선될 문제

※4월 28일은 세계 산재 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 5월 1일은 근로자의 날이다. CBS노컷뉴스는 두 기념일을 맞아 과로, 차별, 안전사고 등으로 인해 위험천만한 우리나라의 노동 환경에 대해 분석하고 시대적 과제를 독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3편의 기획 기사를 준비했다. [편집자 주]
5.1 노동절
①당신은, 당신의 가족은 '과로'로부터 안전한가요?
(계속)


쿠팡에서 야간근무 후 숨져 과로사를 인정받은 고 장덕준씨 빈소. 유족 제공
"우리 부부는 경상도의 50대다. 가진 게 많진 않지만 지금껏 우리가 기득권, 보수라 착각하고 살아왔다. 세월호 사건 지나고 몇 년 뒤에 '이제 이 얘기 그만 할 때가 됐는데'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내 일이 되기 전까진 몰랐다. 그때 나는 방관자였다. 근데 상상도 못했던 일이 내 일이 되어버렸다. 언젠가 당신의 일이 될 수도 있다. 그 때 움직이면 너무 늦는다."

지난해 10월, 과도한 업무량의 야간 근무를 버티다 숨진 20대 청년 장덕준씨.

애통하게 아들을 잃은 그의 부모님은 그날 이후 쉬지 않고 움직였다.

아들을 먼저 보낸 슬픔이 밀려오는 것을 억누르며 과로사 문제를 알리기 위해 곳곳을 누볐다.

그게 아들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아들을 명예롭게 보내주는 일, 부모로서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손수 산업재해로 인정받기 위해 증빙 자료와 증인을 모으고 수차례 국회에 드나 들었으며 문제를 알리기 위해 기자회견도 계속 진행했다.

몸과 마음 모두 힘들었지만 그의 아들이 너무도 '평범한' 대한민국의 한 청년이었기에 동력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고 했다.

또다시 어느 부모가, 이렇게 허망하게 자식을 잃는 상황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 그래서 자신을 더 채찍질했다.

덕준씨는 자립심이 강했다. 부모님의 벌이가 나쁘지 않았지만 손을 벌리지 않으려 한 청년이었다.

대학 때부터 용돈벌이로 아르바이트를 했고, 번 돈을 모아 어린 여동생과 해외 여행을 가 넓은 세상을 보여주려 했다.

졸업 직후엔 쿠팡이 나름 '유망 업종'이라며 기대에 부풀어 일을 시작했다.

이한형 기자
열심히 하면 무기계약직으로 쿠팡에 안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매일 수십kg, 많게는 100kg이 넘는 물건 더미를 수차례씩 나르며 4개월 만에 무릎에 문제가 생겼지만 '원래 사회는 녹록지 않다'고들 하니 묵묵히 견뎠다.

그러던 어느날, 야간 근무 직후 집에 돌아와 씻으러 들어간 욕조에서 덕준씨는 눈을 감았다.

어머니는 가슴을 치며 후회했다. '항상 착하게 살아라, 조금 손해를 보고 살아도 된다' 가르친 것이 잘못일까 자신을 자책했다.

덕준씨는 가끔 일이 힘들다고 부모님께 털어놓으면서도 "내가 주어진 만큼 해내지 못하면, 같은 팀원들이 고생한다"는 말을 늘 덧붙였었다.

그의 사례는 과로사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개인의 탓으로 치부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무기계약직을 꿈꿨다는 이유로, 단지 열심히 일했다는 것만으로, 지병도 없이 건강했던 20대 청년의 죽음을 납득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특히 최근 과로 재해가 늘고 있다는 점은, 문제의 원인이 개인이 아닌 '구조'에 있음을 뒷받침한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유족이 산업재해를 신청한 사례 중 과로사로 인정된 건수는 2016년 150건에서 2020년 273건으로 급증했다.

특히 코로나19로 비대면 주문이 활성화된 지난해에는 택배업과 쿠팡 같은 물류업에서 연달아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류연정 기자
그래서 덕준씨 어머니는 쿠팡에 보상보다 과로사 대책 마련을 먼저 요구하고 있다.


심혈관 질환 예방을 위해 물류센터에 냉·난방 시설 설치 필요성을 강조하고 새벽 근무시 틈틈히 5~10분씩 휴식시간을 부여해야 몸에 무리가 덜 간다고 주장해왔다.

덕준 어머니는 "내가 입을 다물면 또 바뀌지 않을 거다. 쿠팡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겐 변화가 없을 거고 오히려 회사는 노동자들을 더 쥐어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민사소송을 제기하지 않는 이유도 금전적 보상보다 근로조건 개선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유족이 보상비를 받고 나면 쿠팡이 근로 환경 개선 요구 묵살을 더욱 정당화시킬 것 같아서다.

덕준 어머니는 보상금을 많이 받고 싶어서 계속 맞서는 것 아니냔 악성 댓글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이 죽었는데 최대 보상이 6억원이라 하고 그 마저도 다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더라. 당신 같으면 받아들이겠냐. 우리나라에서 젊은 청년이 구조적 문제로 사망했을 경우 기업이 부담해야 할 벌금이나 보상비가 너무 적기 때문에 개선이 안 되는 거다"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 때 벌금이나 보상비 등 기업이 부담해야 할 책임을 늘려야 한다. 처벌이 목적이 아니고 법을 지키게 하는 게 목적이다. 위반시 벌금이 막대하면 과연 기업이 법을 안 지킬 수 있겠냐"

지난 2월 덕준씨의 사망이 과로사로 인정되자 쿠팡풀필먼트서비스가 내놓은 입장문. 쿠팡 뉴스룸 홈페이지 화면 캡쳐
하지만 덕준씨가 숨진 지 반 년이 지났지만 쿠팡은 여전히 답하지 않고 있다.

과로사가 인정된 2월 이후, 유족에게 사과하고 지원에 적극 임하겠다던 쿠팡은 전화 한 번 걸어온 적이 없다.

덕준씨 가족들은 여전히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부부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고 생업도 중단했다.

그토록 목소리를 높였지만 아들의 죽음을 야기한 문제적 환경이 조금도 변하지 않는 것을 보며 망연자실한 삶에 갇혔다.

유상철 노무사는 "사용자(쿠팡)가 내부 결정을 통해 유족에게 일정 위로금을 지급할 수 있지만 대책 마련은 의무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하지만 웬만큼 강심장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으면 대책을 마련하는데, 이 경우엔 사용자가 계속 버티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쿠팡이 과로사 문제를 개선하려면 노동자뿐 아니라 소비자가 움직여야 한다고 보고 있다.

소비자들이 기업에 직접 문제 해결을 요구하고, 사망 사고 발생시 불매 운동을 벌이는 등 채찍질을 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하대 이은희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자들이 시민 의식을 가지고, 소비자 권리만 주장하지 말고 책임도 함께 느껴야 한다. 자신의 소비 행위로 인해 사회에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가 초래되고 있다면 소비 행위를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 교수는 "소비자들이 주도하는 불매운동은 기업에 자성의 계기가 될 수 있는 건 맞지만 불매운동이 촉발되기가 쉽지는 않다. 온라인으로 쉽게 구매하고 빨리, 저렴하게 배송받는 것을 좋아하는 소비자들이 그런 이익을 포기하기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계를 설명했다.

특히 이 교수는 "소비자들이 단체로 이 문제를 공유하고 확산시켜야 하는데 현재는 그런 주도 주체가 없다"고 지적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덕준씨 어머니는 "그동안은 묵묵히 쿠팡의 답을 기다려왔지만 이제 덕준 아빠와 직접 행동으로 싸워나가겠다. 사람이 죽어나가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이 노동 환경을 바꿔야 한다"며 다시 의지를 다지고 있다.

그는, 갈 길이 멀긴 하지만 언젠가는 법이 개정되고 기업이 성과 만큼이나 노동자의 목숨을 중요하게 여길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한편 CBS노컷뉴스는 덕준씨 사건으로 대표되는 과로사와 관련해 쿠팡 측에 대해 개선 요구나 계획 등을 물었지만 답을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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