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불만에 경찰청장 등 지도부가 먼저 백신을 맞는 등 진화에 나섰지만, 쉽게 가라앉지 않는 모양새다. 특히 백신 접종 여부를 '자율'에 맡기겠다고 했지만, 윗선에서 접종률을 조사하는 등 사실상 '반강제'로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반드시 개인 자율 의지로 맞도록 해야 한다"면서도 대민 업무가 잦은 경찰의 특성상 집단 면역을 위해 반드시 맞아야 한다고 의견을 내놨다.
◇백신 '불안정 논란' 잠식 위해 '1호' 접종한 경찰청장…"적극 참여" 독려
김창룡 경찰청장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보건소에서 백신을 맞은 뒤 "경찰의 백신 우선 접종은 국민안전 수호자로서 경찰에 대한 배려이자 사회적 책무"라며 "평온하고 안전한 일상으로의 신속한 복귀를 위해 백신 접종에 경찰 가족 모두가 적극 참여해 달라"고 밝혔다.
장하연 서울경찰청장도 이날 오후 백신을 접종했다. 장 서울청장은 "많은 경찰관들이 참여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기저질환 등 어려움이 있는 경우도 있겠지만 다들 취지에 공감해 많은 참여를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경찰청 외사국장 등 간부들과 서울 시내 경찰서장들도 대부분 이날 백신을 접종했다.
하지만 일선 경찰관 중 일부는 "백신을 맞지 않겠다"고 거부했다. AZ 백신 안정성에 대한 논란 때문이다.
서울 지역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경찰관 A씨는 "이제 막 태어난 아기가 있어 혹시나 내가 잘못될까봐 걱정"이라며 "화이자였으면 모르겠는데, AZ는 부작용이 너무 많이 보고돼 걱정"이라고 말했다. 간부급인 B 경감은 "맞기 싫은데 맞으라니까 맞는 것"이라며 "AZ가 아니라 화이자였어도 불안하긴 매한가지"라고 덧붙였다.
지구대·파출소 등 최일선에서 근무하는 경찰들 사이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왔다. 접종 전 컨디션 관리가 중요한데, 야간 근무 등으로 컨디션 조절이 어렵다는 게 이유다.
한 지구대에 근무하는 C 경위는 "백신이 검증이 됐다면 아무 소리도 않고 맞겠다. 불신하지 않게끔 해놓고 맞으라고 하면 걱정이라도 덜 할텐데 맞아서 잘못되면 어떡하나"라며 "신청하려고 했다가 전신마비 간호사 소식을 듣고 덜컹 겁이 나서 취소했다"고 토로했다.
◇"자율 의사에 맡긴다"지만…"우리 청 접종률 낮다, 긴급 파악하라" 지시도
백신을 맞을지 여부는 경찰관 개인 선택에 달렸다. 방역당국 지침에 따라 백신 접종 여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접종을 거부했다가 코로나19에 걸릴 경우 진급 등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D 경정은 "나는 안 맞기로 결정했지만, 지금도 고민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며 "내부 분위기가 꼭 맞아야 할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는 "주변에선 대부분 '찜찜하다'고 말하면서도 울며 겨자먹기로 백신 접종을 신청하더라"고 전했다.
경찰 내부 게시판인 '폴넷'에도 불만의 목소리가 올라왔다. 인천의 한 지구대에서 근무하는 경찰관 E씨는 "경찰관에게 백신을 서둘러 맞게 하려는 의도를 알 수가 없다"며 "경찰관은 기저 질환 등 몸상태가 좋지 않아 맞지 못하는 다양한 거부 사유도 있을텐데 반드시 기한 내에 맞도록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선 접종) 기한 내 예약을 하지 않을 경우 모든 국민에게 접종한 뒤 가장 후순위로 접종이 가능하다고 한다"며 "진정 필수인력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번에는 맞지 않아도 지속적으로 예약 가능할 수 있도록 조치할테니,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경찰관은 추후 예약 가능하다'고 해야 맞지 않겠나"고 강조했다.
실제 경찰 윗선에서 시·도경찰청별로 접종률을 취합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 수도권 지역 경찰청은 '각 경찰서장님들께 긴급히 알려드린다'는 문자를 통해 "우리청 백신접종 예약률이 40%대로 다른 시도 경찰청에 비해 매우 낮은 편"이라며 "각 서장님들은 지금 바로 112실장에게 지시해 아래 양식에 따라 인원수를 긴급히 파악해달라"고 전파하기도 했다.
다만 "경찰이 더 모범적으로 맞아야 한다"며 접종을 신청한 경찰관들도 있었다. 서울지역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F 경감은 "독감도 부작용 사례가 있는 것처럼 부작용은 있을 수 있다"며 "감수하고 맞을 것이다. 경찰이 더 모범적으로 맞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무원이 정부를 불신한다면 일반 국민은 어떡하나"고 말했다.
또 다른 형사과 G 경위 또한 "자율이라고는 하지만 우리 팀원은 다 맞기로 했다. 분위기는 다들 긍정적"이라며 "가족이나 지인이 나로 인해 감염되면 안 되니까 맞으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반드시 자율 의사에 맡겨야"…"백신 접종, 안전성 문제 수백배 뛰어 넘는 이익"
경찰 내부의 불만을 접한 전문가 및 시민들은 "불만의 목소리를 이해한다"면서도 "경찰이 백신 접종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의견을 내놨다.
아이와 함께 강동경찰서 인근을 찾은 시민 이모(42)씨는 "코로나 때문에 너무 힘이든다. (우리도) 기회만 된다면 빨리 맞았으면 좋겠다"면서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는 백신 부작용이 불안하지만, 그렇다면 독감도 그렇고 아무것도 못한다. 경찰분들도 다 맞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대목동병원의 호흡기내과 천은미 교수는 "30대 이상은 다 AZ 백신을 맞기 때문에 사실 개인적 위험을 고려해야 하는 것은 맞다"면서 "희귀 혈전의 경우 초기에 치료가 안되면 (회복이)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반드시 개인 자율 의사에 맡겨야 한다. 원치 않은 경우는 다음 분기 때 본인이 맞고 싶어하는 것 위주로 맞게 해주는 등 개인의 위험을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백신은 개인의 건강이 우선이지 집단 면역을 위해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한림대 감염내과 이재갑 교수는 "경찰 본인들 안전을 위해서 맞는 것이다. 의료진들이라고 부작용에 대해서 모르고 맞았겠나"라며 "너무 걱정하지 말고 접종을 하는 게 좋다"고 권고했다.
이어 "안전에 이상이 없어서 (백신을) 맞는 게 아니다. 안전성에 문제가 되는 지점들보다 몇백배 뛰어 넘는 이득이 있기 때문에 맞는 것"이라며 "오히려 경찰이 더 적극적으로 (백신 접종에) 나서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경찰들의 코로나19 집단 감염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최근 청와대 경비를 담당하는 101 경비단 소속 경찰관 11명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으며, 서울 중랑경찰서 직원 27명도 확진됐다. 이외에도 전국 각 관서에서 산발적으로 감염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