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민성철 부장판사)는 21일 고(故) 곽예남·김복동 할머니와 이용수 할머니 등 20명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원고의 청구를 각하한다며 소송 비용 또한, 원고 측에서 부담하라고 밝혔다.
이러한 판단 근거로 재판부는 모든 주권국가가 평등하다는 전제 하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 대해 자국의 국내법을 적용해 법적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국가면제' 원칙을 들었다. 일본 정부는 해당 원칙에 따라 줄곧 이 소송이 무효라고 주장하며 재판 참석을 거부해왔다.
재판부는 유엔국제사법재판소(ICJ)와 우리 대법원의 판례를 근거로 이 사건에서 원고 측의 주장과 달리 국가면제 원칙을 적용하는 데 예외로 볼 사정이 없다고 판단했다.
원고 측의 이 소송이 사실상 마지막 권리 구제 수단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2015년 한국과 일본 양측 간 '위안부' 피해자 합의와 그 후속 조치로 나온 화해치유재단 설립 등을 통해 일부 충족됐다고 보면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같이 판결하며 "피해자는 피고(일본)에 의해 많은 고통을 받았고 국내 법원 등에서 소송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이후 2015년 한일 합의 등도 이들이 겪은 고통에 비하면 만족스러운 결과로 보기 어렵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그럼에도 국제관습법과 판례에 따라 피고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는 없다"고 결론지었다.
당시 재판부(중앙지법 민사합의 34부)는 이 사건의 경우 국가면제 원칙을 적용할 수 없는 예외적인 사건이라고 판단하며 재판권을 인정한 바 있다. 이 판결은 피고인 일본은 재판 참석을 거부했고 원고 측도 항소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한편 법정에서 이같은 선고 내용을 듣던 이용수 할머니는 판결이 끝나기 약 5분 전 법정에서 먼저 자리를 떴다. 주변에는 "더 들을 필요도 없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휠체어를 타고 한복 차림으로 법원을 찾았던 이 할머니는 눈시울을 붉히며 "결과가 좋게 나오나 나쁘게 나오나 어쨌든 국제사법재판소로 갈 것이다"며 재차 "꼭 간다. 꼭 간다. 이 말 밖에 할 말이 없다"고 강조했다.
소송을 낸 원고 측 변호인단은 "피해자의 재판 받을 권리를 제한했을 뿐 아니라 인권 중심으로 변화해가는 국제법의 흐름을 무시한 판결"이라며 "이번 판결에 굴하지 않고 항소하여 다시 한번 진실과 정의에 입각한 판단을 법원이 내려줄 것을 요청하겠다"며 항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