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KCC의 간판 센터 라건아는 프로농구의 터줏대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2년 울산 현대모비스 소속으로 KBL 무대를 밟은 라건아는 최정상급 빅맨으로 군림해왔다. 최우수 외국선수상을 세 차례 수상했고 챔피언결정전 우승 반지도 4개나 보유했다.
압도적인 실력을 인정받은 라건아는 특별 귀화 과정을 통해 현재 한국 남자농구 국가대표로도 활동 중이다.
하지만 라건아는 2020-2021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정규리그에 들어 KBL 정상급 빅맨으로 발돋움한 이후 가장 부진한 성적을 남겼다.
평균 출전시간에 21분에 불과했고 경기당 14.3득점, 9.1리바운드를 올렸다. 득점과 리바운드 모두 프로 2년차였던 2013-2014시즌 이후 가장 저조하다.
기량 하락 때문이 아니었다. KCC가 외국선수를 워낙 잘 뽑았기 때문이었다. 라건아는 시즌 중반까지 타일러 데이비스와 출전시간을 나눴다.
하지만 데이비스가 부상으로 팀을 떠나자 라건아는 전력의 중심으로 돌아왔다. 낯선 벤치행은 라건아의 책임감과 리더십을 향상시켰다. 그는 눈부신 골밑 장악력을 선보여 KCC의 정규리그 우승을 견인했다.
오는 21일 정규리그 챔피언 KCC와 6강 플레이오프를 통과한 인천 전자랜드의 맞대결로 막을 올리는 4강 플레이오프(5전3선승제)에서 주목해야 할 관전 포인트가 있다.
오직 하나 뿐인 챔피언 자리에 오르기 위한 특급 센터들의 경쟁 구도를 주목해야 한다.
KBL의 간판으로 자리잡은 라건아를 향해 미국프로농구(NBA) 출신 센터들이 도전장을 던지는 그림이다.
전자랜드의 빅맨 조나단 모트리가 선봉에 선다.
전자랜드는 시즌 도중 외국인선수 2명을 모두 교체하는 강수를 뒀다. 그 중심에는 지난 시즌까지 3시즌 동안 NBA 무대에서 뛰었던 센터 모트리가 있다.
모트리는 대체선수 합류 이후 15경기에서 평균 22분 남짓 출전해 18.1득점, 야투 성공률 54.6%를 올리며 주축 스코어러로 활약했다. 출전시간을 감안하면 놀라운 득점력이다.
전자랜드는 득점 해결 능력을 갖춘 빅맨을 간절히 원했고 모트리가 그 바람을 충족시켰다.
모트리는 림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공격을 펼치는 페이스업에 능하다. 상대 빅맨을 외곽으로 끌어낸 다음 스피드와 풋워크를 이용해 득점을 노린다.
농구가 1대1 스포츠는 아니지만 센터 대결이 이번 시리즈의 주요 매치업이라고 봤을 때 외곽 수비가 익숙하지 않은 라건아의 대응법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울산 현대모비스와 안양 KGC인삼공사의 정규리그 2-3위 맞대결이 펼쳐지는 4강전에서는 NBA 출신 센터들의 대결이 치열할 전망이다.
현대모비스는 이번 시즌 평균 27분 동안 21.3득점, 10.8리바운드, 야투 성공률 53.3%를 올리며 최우수 외국선수상을 수상한 빅맨 숀 롱을 보유했다.
현대모비스는 시즌 개막을 앞두고 우승권 전력이라는 평가를 받지 못했다. 양동근의 은퇴 공백을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유재학 감독은 시즌 초반 "숀 롱이 정상궤도에 진입한다면 충분하 상위권으로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고 이는 현실이 됐다.
NBA 출전 경력이 있는 숀 롱은 파워가 좋은 정통 빅맨에 가깝다. 이번 시즌 페인트존 득점이 평균 7.7점으로 리그 전체 1위다.
숀 롱의 맞수는 정규리그 6라운드 MVP이자 최근 KBL에서 가장 뜨거운 선수인 '설교수' 제러드 설린저다.
보스턴 셀틱스 출신의 설린저는 2005년 안양 프랜차이즈의 위상을 드높였던 단테 존스 신드롬을 떠올리게 한다. 단테 존스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팀에 끼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설린저는 KBL 무대 입성 후 10경기에서 평균 30분 동안 출전해 26.3득점, 11.7리바운드를 올렸다.
야투 성공률은 49.7%로 4강 무대에 오른 특급 빅맨 4명 중 가장 낮지만 이는 3점슛 시도 비율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효율은 뛰어나다. 경기당 3점슛 5.5개를 던져 2.5개를 성공했다. 적중률은 무려 45.5%다.
설린저는 6강 플레이오프 3경기에서 28.0득점, 10.3리바운드, 4.0어시스트를 올리며 부산 KT를 상대로 화끈한 농구 강의를 했다.
외곽에서부터 경기를 풀어나가는 능력이 뛰어나다. 출전경기수가 많지 않아 표본은 적지만 페인트존 득점 성공률 66.7%는 리그 최고 수준이다. 수비를 읽고 대응하는 능력 역시 탁월해 슈터 전성현을 비롯한 동료들이 상승 효과를 누리고 있다.
현대모비스와 KGC인삼공사의 4강 대결에는 수많은 변수가 있다. 무엇보다 이재도와 변준형을 앞세운 KGC인삼공사의 강력한 가드진과 압박 수비를 현대모비스가 어떻게 대응할 지가 관심하다.
그래도 숀 롱과 설린저의 자존심이 걸린 매치업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한 축이 일방적으로 무너진다면 시리즈 향방의 윤곽이 쉽게 드러날 수 있다.
오랫동안 KBL의 간판으로 활약한 라건아와 NBA 출신 센터 3인방은 4강 플레이오프의 키플레이어다. 그 중 어떤 선수들이 마지막 결승 무대에서 만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누가 올라가도 최종 무대에 걸맞는 볼거리를 풍성하게 채울 것이다.